제가 즐겨가는 어느 블로그에서 본 문구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진은 두 종류가 있다. 추억의 시간을 담는 사진, 그리고 내 욕망을 담은 사진'
1. 저는 추억을 담는 사진을 찍습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전자입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가 오늘 친구들과 어디 간 기념으로, 비싼 뭘 먹어서 자랑할겸 SNS에 올리기 위해, 지금 내 앞에 하품하는 고양이가 미칠듯이 귀여워서, 어디 갔는데 여기 풍경이 이쁘길래 한 장 찍어두고 싶어서 등등.
이 범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찍은 사진'은 안흔들린 사진입니다.(더 나가면 보통 선예도가 좋다 말하는 '쨍한 사진') 만약 당신이 이쪽 범주에 속한다면 그냥 폰카를 쓰는게 가장 좋고, 좀 어두운데나 실내에서 폰카로는 좀 힘들다 싶으면 하이엔드 디카 정도 사는게 최선입니다. 미러리스요? 이 범주의 사람에게는 굳이 미러리스는 필요하지 않아요. 렌즈교환식 카메라는 말 그대로 렌즈 교환이 가능할 때, 즉 렌즈가 적어도 둘 있어야 의미가 있지 번들렌즈 하나만 있는 상황에서는 하이엔드에 비해 갖는 우위는 거의 없습니다. 들고 다니기도 하이엔드가 낫고, 어두운데서 찍는거도 비록 미러리스가 보통 판형의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심지어 니콘, 펜탁스 미러리스는 그거도 거의 없...) 하이엔드는 1점대 조리개로 그걸 상쇄시킵니다.
하이엔드로도 못찍는 것들이 있다고요? 그 정도로 어두운 환경에서 성공시키려면 밝은 조리개나 손떨방렌즈, 혹은 삼각대가 있어야는데 이걸 갖춘 순간 당신은 더이상 1번 부류가 아닙니다. 어두운건 아닌데 줌이 아쉽다거나 (이런분들은 니콘서 나올 P900사세요. 환산화각 2000mm(200아님)잼) 혹은 좀 더 화각이 넓으면 좋겠다거나..이런분들도 이제 '목표 의식'이 생긴 순간 더 이상 1번 부류가 아닙니다.
2. 저는 내 욕망을 담은 사진을 찍습니다.
이 부류의 사람이 말하는 '잘 찍은 사진'은 1번 부류의 사람과 다른 개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1번 부류는 흔들리지 않은 사진=잘찍은 사진입니다만, 이 부류는 그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사항이고 그 이상의 무언가 -화질, 색감, 구도, 사진사의 의도 등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2번 부류 사람이 '에이 망했네'하는 사진을 보면 1번 부류 사람들은 어리둥절... 저 새X 지금 답정너인가? 고민에 빠지는 거죠.
아무튼 일단 이 부류의 사람들이 말하는 잘찍는 사진은 '사진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1) 의도를 담기 위해서
이걸로 인해 사진을 진짜 잘찍는 사람, 즉 고수들은 폰카로도 예술사진을 찍는 그런 (우리 기준)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그런거 볼때마다 열등감 폭발하면서 나는 손목 자르고 싶고 막... 보통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죠.
이건 현질. 즉 장비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순전히 이건 개인의 미적 실력에 담긴거에요. 저도 이게 형편없어서.OTL...이건 사실 타고 나는게 절반 이상인듯 싶다만...저도 이건 노답인지라 이래라 저래라 조언할 처지가 아니다만... 500px같은 사이트 가서 잘 찍은 사진을 봅니다. 계속 봅니다. 그거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거보다는 좀 나아집니다. 그리고 후보정을 익힙니다. 후보정에 대한 논쟁은 뭐 아직도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후보정 반대파들이 언급하는 필름시절에서도 후보정은 존재했어요. 자신이 의도한 100%를 촬영만 가지고를 담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셔터 누르는 순간 80%를, 나머지 20%를 후보정으로 다듬어준다 생각해야합니다.
그런데요, 사실 제가 사진입문한 초창기에 누가 폰카로 찍은 사진인데 우와 소리 절로 나오는 사진 이런거 볼 때 꼭 빠지지 않던 말이 앞서 말한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인데요. 희한하게 정작 명필은 다 좋은 붓을 쓰고, 고수들도 다 좋은 장비들 갖고 있더란 말이죠. 그들은 분명 300원짜리 모나미 볼펜이나 02년에 제가 산 IXUS V2 이런거 던져줘도 잘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일텐데 왜 굳이 비싼 돈 줘가며 좋은 장비를 따로 보유하고 있을까요?
2) 장비는 표현의 한계를 넓혀준다.
그 이유는 대부분 장비는 표현의 한계를 높여줍니다. 즉 앞서 말한 고수들이 찍은 폰카로 찍은 사진을 보고 우리는 '우와~'하고 감탄사를 내뱉지만, 그건 그 고수가 표현하고자하는 점이 그 폰카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폰카로 불가능한 표현력, 저 멀리 떨어진 웅장한 화산섬을 한 화각에 담고 싶다거나, 혹은 저기 200m 앞에 있는 수리부엉이를 찍고 싶다거나, 혹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들꽃 위에 꿀벌에 딱 시선이 모이게 주위를 확 날려버리게 찍고 싶다거나, 혹은 베일거 같은 미친 선예도를 가진 사진을 찍고 싶다거나 등등등...을 위해서는 그 표현을 위한 장비가 나와야합니다. 그런 장비로는 크게 렌즈, 필터, 조명, 삼각대, 등등이 있습니다. 의외로 바디는 여기에 큰 영향을 못줍니다. 센서의 판형 정도?
즉, 당신이 위에 말한 2번 타입의 사람이라면,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건가요?' 이걸 알아야 이에 맞는 렌즈 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나비가 꽃에 앉아있는 모습을 부각시키고 주위를 싹 날려버리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 마크로렌즈+원형스트로보+뒷배경 검은 천이 필요합니다. 사람 가까이 가면 달아다는 길고양이 식빵 굽는 모습을 찍고 싶어요 -> 초점거리 긴 렌즈가 필요합니다. 우리 아들이 레고 가지고 놀면서 해맑게 웃는 모습을 찍고 싶어요 -> 준광각 혹은 표준 단렌즈 + 스트로보 해서 천장 바운스 시켜서 찍으세요 외국 갔더니 지평선이 보일만한 대평원에 별 뜬걸 찍고 싶어요 -> 광각렌즈 + 삼각대 + ISO 높여서 10초 미만. 혹은 스카이 트래커 같은 추적기 장착. 쨍한 햇볕이 내리는 여름날 여친이(부들부들) 야외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이쁘게 담고 싶어요. -> 안알랴줌.
등등
3) 바디는 성공확률을 높여준다.
앞서 정작 카메라 바디는 판형 정도 제외하면 표현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판형이 클 수록 비싸긴 하지만, 같은 판형에서도 고급기, 중급기, 보급기로 나뉘는데 그러면 굳이 비싼 카메라는 왜 필요한걸까요?
그 이유는 비싸고 신형인 카메라로 갈 수록 초점을 정확하게 맞춘다거나, 빨리 맞춘다거나, 노이즈가 적다거나, 센서의 후보정 관용도가 높다거나 등등 님이 원하는 사진을 '건져줄' 확률이 높아집니다. 특히 극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그래서 케이스바이 케이스인데, 당신이 주로 정적인 것, 밝은 빛 아래에서 찍을 일이 많다면 사실 보급기, 혹은 오래된 구형바디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피사체가 미쳐 날뛰는 캣초딩이라거나, 혹은 어두운 실내 혹은 레알 어두운 야생의 밤에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손흥민 선수 뛰는걸 연사 때린다거나 등등 아무튼 좀 카메라를 혹사시킬 일이 있을 수록 고급기, 신형바디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즉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장비를 바꾸고 싶으신 분들은 1)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먼저 파악하세요.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안흔들린 사진인가요? 아니면 그 이상인가요? 2) 그 이상이라면 당신이 찍고 싶은 사진은 뭔가요? 3)사실 이게 레알 중요한건데 돈은 있나요? 에 대한 대답을 꼭 내려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