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뚱해보이고 화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였다.
아래턱이 돌출되어 아랫니가 윗니를 덮고 오른쪽으로 돌아가
딱딱한 음식이건 부드러운 음식이건 윗니와 혀로 잘라야했다.
때문에 내 혀는 매일매일 윗니와 닿아야했고
혀는 매일 부르튼 상태로 따가움을 느껴야했다.
내 첫 교정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치아에 붙이는 교정기가 아닌 틀니처럼 생긴
고형물을 물고 있어야했는데
밥 먹을 땐 물에 담가 두었다가 다 먹고 양치질을 한 후에
다시 물고 있어야했다.
한번은 발표수업이 있었는데
교정기를 끼고 말을 하다보니 어눌하게 들렸는지
같은 조 친구들이 노인역할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속이 상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부터 난 교정기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 뒤로 성인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치아, 턱, 얼굴라인에 컴플렉스를 느꼈고
사진을 찍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멈춰진 상태의 얼굴은 부정교합이 더욱 부각된다)
잘 웃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그나마 웃을 땐 입을 손으로 가리는 습관이 생겼지만)
2007년 나는 대학병원에서 교정을 시작했다.
처음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교정을 하기전 윗쪽 작은어금니 두개를 발치하게 되었다.
아구가 작아서 그대로 교정을 하게 되면 돌출입이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발치라고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흔쾌히 발치했다.
전에 없었던 이물질이 입에 들어와 여린 입안 살갗을 할퀴고
가운데 끼워지는 철심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져 내 이를 점점 힘들게 했다.
철심을 바꾸는 날부터 삼일정도는 치아가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밥조차 제대로 씹지 못하고 고통을 느꼈다.
물론 그 후에는 적응해서 괜찮아졌지만.
가장 짜증났던 건 교정기에 끼이는 음식물들이었다.
언젠가 가족들과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았는데
끝나고 나오니 교정기에 팝콘 껍데기들이 빈틈없이 끼어있는 것을 보고는
교정기를 제거한 지금까지도 팝콘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2년이 지난 2009년 가을
나는 양악수술을 하게 된다.
사실 수술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내 턱은 교정을 시작할 때부터
치아교정이 아닌 턱교정으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수술하기 전 나는 교정과와 악안면외과를 번갈아 방문하며 컨디션을 체크했다.
악안면외과 교수님이 나의 두개골이 찍힌 파노라마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얼굴이 작은 게 대세니까 하는 김에 한가인처럼 작은 얼굴을 만들어보자구! 허허!"
...주변 선생님들과 간호사님들께 미안했다.
나 때문에 불가능한 퀘스트를 받으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술전 아직 나지도 않은 아래쪽 사랑니 두개를 잇몸을 헤집어가며 발치했다.
발치하지 않으면 턱을 지나는 신경을 건드려 위험하다고 하셨다.
한쪽 한쪽 2주의 텀을 두고 뽑았는데 이를 봅고 나면 붓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무튼 차근차근 수술준비는 진행되어가고 있었고
드디어 수술날짜가 잡혔다.
수술하기 한달전부터 나는 2주에 한번씩 2번 헌혈을 했다.
자가수혈을 위한 헌혈이었지만 그냥 조금 겁이 났다.
수술 전날 6인실이 없어 2인실에 입원한 나는
옆 베드에 환자가 없어 오롯이 혼자 밤을 보내게 된다.
사실 나는 수술 전날 밤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면 바로 입을 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저녁을 대충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 첫 수술이었다.
6시 30분쯤 일어나서 7시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를 했다.
시간이 되자 간호사분께서 휠체어를 가져와 나를 태우고
수술장으로 향했다.
수술대에 누워서 처음 느낀 것은 '차갑다'였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마취선생님이 오셔서 내 얼굴에
산소호흡기 같은 것을 대고는 "이제 마취시작합니다~" 라고 하셨다.
나는 영화에서 처럼 10부터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10...9...8...
마침내 0까지 셌을 때 아직 나는 정신이 멀쩡했다.
당황해서 선생님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선생님! 이상해요! 라고 말하려는 찰나
내 눈커풀은 내 통제를 벗어났고 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TV에서는 선덕여왕이 하고 있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회복실에 들어서고 내 친구가 날 보러왔는데
내가 가만히 눈을 감고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상악에 충격이 가면 코피가 나는 모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가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고 계셨다.
내가 자가수혈을 하기 위해 뽑아놓은 피중에 두번째 팩이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열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해 당장 수혈을 중단하고 열을 내리는 중이었다.
수술 전 교육 받은대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했다.
계속 졸리고 춥고 숨은 잘 안 쉬어지고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시간정도를 버티고 나는 간호사에게 자도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날 깨어보니 내 입술이 평소의 5배정도는 부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술을 하느라 무리하게 입을 벌려 부르트고 찢어진 것이다.
코에 삽관을 해 준 선생님은 약간 서툴렀는지 내 코에 피멍을 남겼다.
나는 얼음을 감싼 길쭉한 비닐을 턱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감싸고
정수리에서 예쁘게 매듭을 지었다.
사실 나도 놀라고 의사선생님들도 놀란 것은 내가 그리 많이 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술 전 여기저기 사진을 봤지만 모두 얼굴 전체가 부어있었는데
나는 입술과 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거의 붓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이 수술체질이라고 말했다 -_-)
점심 먹을 때 즈음 나는 입을 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교정기 앞부분은 고무줄로, 어금니부분은 철사로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저 상태로 2주를 버틴다.
커다란 주사기에 카테터(고무관?)을 끼워 덩어리가 없는
미음이나 음료수를 먹으며 살았다.
2주동안 50키로였던 몸무게는 46키로가 되었고 빈혈이 찾아왔다.
마침내 입을 벌릴 수 있게 되는 날 내 입에서는 똥내가 났다.
2주동안 바깥쪽 치아밖에 닦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튼 그 후로 입벌리는 연습을 하고
초등학생 때 썼던 교정기와 비슷한 유지장치를 하게 된다.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3개월에 한 번 점점 치과 방문 텀이 길어졌다.
내가 가장 원했던 교정기를 떼는 날이 찾아오고 나는 매끈한 이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치아 뒷면에 유지장치를 붙여야했지만. (지금도 붙어있다)
나는 부작용이 없는 성공적인 양악수술을 마쳤다.
가끔 오른쪽 볼근육이 뭉친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비정상적으로 자랐던 턱을
잘라냈으니 근육이 뭉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 상악을 건드리게 되면 약간 코가 들창코가 된다. 광대도 살짝 볼록해졌다.
나는 동안효과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턱이 뒤로 들어간 만큼 살짝 두턱이 되지만 (46키로였을 때도 두턱이 생겼음 엉엉)
그래도 전체적인 얼굴발란스가 잡혀서 행복하다.
이젠 마음껏 웃을 수 있고 옆모습에 컴플렉스도 많이 사라졌다.
여기 쓴 얘기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너무 길어져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악안면외과 주치의선생님이 말하셨던 한가인같은 미인이 되진 않았지만 (본판불변..크흑)
그래도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