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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묘 '나리'와 만난 날
게시물ID : animal_121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이워니
추천 : 19
조회수 : 1387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5/04/02 14:19:10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가만히 비를 맞고 있었다. 비를 피하지도 않는 모습이 이상해 다가가 "왜 비를 맞고 있니?"하고 묻고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이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이거 때문에 못 가요"하고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그곳에는 갓 피어난 개나리가 있었고, 그 밑에는 비에 젖어 색이 검게 변한 종이 박스가 있었고, 그 속에는 먹다 남은 생선 구이와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네가 데리고 가지 그러냐?"하고 물었다. 아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엄마가 싫어해요."
"그러면 어서 집에 들어가."
"불쌍해서 못 가요. 비라도 막아줘야죠"
"그럼 형이 우산 씌워줄게"
아이는 내 우산 밑으로 들어왔고, 나는 우산을 기울이며 앉았다. 우리는 고양이를 보며 한참을 쭈그려 앉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형은 먼저 갈게."하고 일어섰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형"하고 불렀다. 나는 "비 오잖아. 비 맞지 말고 어서 집에 가자"하고 귀찮았지만 "근처라면 집에 데려다 줄게"하고 말했다. 

나를 쳐다보는 아이는 한참을 다시 머뭇거리다가 "형이 데리고 가면 안돼요?"하고 물었다. 나는 "형도 안돼"하고 대답했다. 실망한 아이는 나를 무시하듯 다시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봤고, 나도 역시 아이를 무시하듯 집으로 향했다. 한참을 걷다 뒤돌아보니 아이는 여전히 쭈그려 앉아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아이에게 다가가 "내가 데리고 갈게"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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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한 시간 2일, 케이지 안에 있는 나리

물을 먹어 검게 변해버린 박스는 버리고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새끼라서 그런지 한 손에 쏙 들어왔다. 함께 버려진 생선 냄새가 몸에 베여 비린내가 났다.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털이 난 생선 한 마리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집 가는 길에 동물 병원이 있어 들렸는데, 의사는 고양이의 냄새를 맡더니 물수건 등을 꺼내 몸을 쓱쓱 닦아주었다. 비록 동물이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는 무거운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넌지시 "입양이 가능할까요?"하고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한참을 생각하다 나에게 대답했다.

"얘는 장애가 있어서, 입양은 힘들 것 같네요. 안락사를 시켜야 할지도 몰라요."

나는 고양이를 기르기로 결심했다.


to be continue... 

=== 
Vingle에 올렸던 것인데, 오유에도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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