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심장-봄날의 이별 열고 들어간다 그 시간은 내게 처음부터 오지도 않았었다 오지도 않았던 당신이 떠나간다 /지난 여름 여닫이문中, 성기완
가끔 나는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떠나보낼 때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별은 내게 있어 사랑의 절정이었다. 가장 사랑하던 그 순간, 나는 너를 놓았다. 내 사랑이 가장 부풀어 오르던 그 순간이, 나는 외려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잘 가라. 나는 이제 그만 살게.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 절정이 지난 다음엔 모든 게 다 내리막이었다. 내 삶도, 나의 인생도. /절정, 이정하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너와 나, 김춘수
결국 내 소심함이 내 사랑을 망쳤다. 자업자득이다. 소심한 것도 나다. 각자 기질이 있으니까 거기에 따라 운명을 결정하면 될 일이다. 나는 손목시계가 아닌데 세상의 시계탑과 시간을 맞출 필요가 있는가. 내 사랑은 거기서 끝났다. /왕을 찾아서 中, 성석제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왔다 가는 걸까 어느 순간 기척 없이 빠져나간 손바닥의 온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의 그늘처럼,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 /한순간 中, 이향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 집, 기형도
예쁘장한 계단 어디에선가 사랑을 부풀리기도 했고, 사랑이 떠나면 체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온다고 믿었던 사랑은 없었다. 떠나면 그뿐, 사랑은 늘 황혼처럼 멀었다. /지층의 황혼 中, 허연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 후 中, 정일근
습관적으로 들이켰던 블랙커피처럼 쓰디쓴 추억을 빛바랜 사진 들여다보듯 다시 설탕 찍어 오물대진 않겠다 미안하다 죽도록 그리워도 나는 결코 네 마음 근처를 서성이지 않을 것이다 /이별식, 공석진
사랑이 어려운 것은, 떠난 후에 오롯이 남은 추억 때문이다. 이별은 당신만을 데리고 갔지 추억까지 달고가진 않았다. /지구 반대편 당신 中, 정영
징검다릴 건넜을 뿐인데 햇발 부신 물결이 잠들던 가요 백사장의 포말은 하염없는데 이미 지워져 버린 건 아니겠지요 그리도 짙은 향기가 그냥 사라질 리가 있나요 /이별, 그 여름의, 임영준 글귀 11편 어제 올렸다가 글에 이상이 있어서 재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