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주독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임시정부가 공들인 독립군이 한반도로 진군하기 직전에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외세에 의한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전승국의 전리품이 되었고 남북으로 다른체제를 가진 신탁통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에게 철저하게 교육받은 김일성이 주도권을 잡아 신탁통치를 찬성하게 되고 김일성식 숙청과 매국노청산이 이루어집니다.
초기 우리나라의 대부분 정치인들은 반탁을 외치며 단일국가를 내세웠지만 공산화 된 북한이 신탁통치에 찬성하고, 미군정의 공산주의 혐오에 의해 반탁운동은 반공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해방초기 이승만, 김구등이 주도한 임시정부는 미군정의 반대로 인정받지 못하고(소련에 의한 적화통일 될까봐 임정을 인정하지 않음.) 신탁통치의 편의를 위해 기존 공직자들(일제부역자들)을 그대로 기용하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첫번째 반민족행위자 청산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해방이후 바로 미군정이 들어와 신탁통치를 했기 때문에 부역자들을 처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민족자주독립(단일국가)을 외치던 정치가들은(김구선생님같은) 미군의 눈밖에 나게 되었고, 같이 반탁운동을 하던 이승만은 반공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미군정에 힘입어 대한민국 정권을 잡게 됩니다.
반공을 기치로 정권을 잡은 이승만은 정국의 불안을 이유로 미군정하의 관리체계를 계승하게 되고 그들과 결탁하여 장기집권(독재)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그리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소극적이게 되고 많은 방해활동을 하며, 급기야 단 한명의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하게 됩니다.
일제부역자 청산이 안된 이유 위주라 이승만의 치부는 안적었어요. 대신 임정시절 탄핵된 사건이 있습니다.
이승만은 1919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을 역임하는데 대통령직을 할 당시 미국에서 나오지도 않던놈이 국제연맹에 위임통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자금횡령등의 계기로 탄핵당하게 됩니다.
민족계몽주의자이신 신채호 선생이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놈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하와이에서 독립운동할 당시에도 암살, 자금횡령, 유흥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많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알려지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