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리 귀찮게 여기신다면 저는 경찰을 부르는 수밖에는 없다는 점 밝힙니다. 신종 사기 수법인지 뭔지, 아무튼 이제 멈춰주세요. 저는 1000만원이라는 큰 돈 엄두조차 안 납니다.]
[유정이 생활비 때문에 곤란을 겪고 계신다면 유정이를 경찰서 같은 곳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보다 친절히 유정이를 맡아주시지 않을 까요? PS. 차라리 체포되셨으면 더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생각 있으시다면 전화로 해결해보는 건 어떠실런지요. 번호 남깁니다. 국번 없이 112]
그의 이런 말들은 무관심함을 표출하는 표현들로, 더 직설적, 함축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귀찮으니 그만 둬라] [경찰에게 해결을 (나 말고 다른 이에게) 부탁해라]
그런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괴범 (범죄자)를 하찮은 존재,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신분과 같은 존재로서 깔보는 마음 또한 공존합니다.
다섯 달 만에 편지를 받게 됨으로써 (이제 끝났다고 여긴) 그는 유괴범과의 관계가 끝나지도 아니하였고, 심지어 불안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유정이가 벌써 세상에 없는 건 아닐지...’
라고 의문을 품는 건, 마치 유정이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당신은 유괴 같은 흉악 범죄도 하는 사람이니까, 살인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야? 당신 살인마인 것이냐.’
돌려 묻는 문장입니다. 직역하자면, ‘나도 죽일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야?’ 가 되겠네요.
(그 의도를 독자분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정도의 문장으로 그런 부분까지 이해한다면 천재죠. 어디까지나 제 안의 설정이고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후 유괴범이 유정이를 죽이려던 사실을 고백하면서 유괴범은 은연중 (의도치 아니했건, 했건)
‘나는 사람 죽이는 것도 얼마든 가능하다.’ 라는 것을 그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런 내용과 함께, 자신과 유정이의 사진을 동봉하게 되죠.
‘당신을 믿을 테니까, 내가 행동에 나서게 하지는 말아라’ 라는 뉘앙스의 내용과 함께요.
반은 살해 협박과 같은 편지에 그가 태도를 바꿉니다. 무관심에서 열성적인 방식으로요.
유정이의 부모를 찾으려 하기도, 편지를 모두 돌려보내기도, (증거 인멸) 하는 식입니다.
전반의 태도 즉 귀찮으니 그만 둬라, 나는 상관없다. 라는 식의 태도와는 너무도 색을 달리합니다.
나도 너를 돕기 위해 애썼다. (부모를 찾아보려 = 돈을 벌게 해주려) 그동안의 증거를 모두 돌려보내니까, 이제 나는 당신에게 해가 될 사람이 아니다. (해가 될 = 교도소 가기 싫다면서?)
소위 '입을 닫겠다.' 는 퍼포먼스입니다.
편지의 사진을 보고서 (범죄자의 얼굴과 유괴 된 아이의 얼굴) 그는 더 이상 침범해선 안 될 일선을 (살해 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겠죠.
추신에 ‘미인이십니다’ 알랑방귀 아첨을 떨기도 합니다.
‘유정이는 모르겠고, 나는 죽이지 말아주세요...’ 같은 의미로 첨부한 문장입니다. 비위를 맞추고 싶어 하는 일종의 ‘타겟’ 혹은 ‘약자’ 로서 약한 면모를 보인 것이죠.
그리고 가장 문제시 되는 유정이의 마지막 편지 내용입니다.
[사실 정말로는 마지막까지 제가 죽거나 살거나 그런 건 진짜 아무래도 좋았던 게 아니었나요?]
유정이가 그런 편지를 쓴 것은 그동안 그의 편지 내용에 ‘귀찮다, 그만 둬라, 경찰에 가라’ 라는 문구들이 신경 쓰였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라면, 마치 자신이 내쳐지는 그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유괴를 당하고 동시에 살해까지 당할 뻔 했으니까요. 타인은 스치듯 읽고 지나갈 문장에 마음이 아주 상했을 것 같습니다.
‘당신 태도가 마지막에 가서 좀 너무 바뀐 거 아니야? 그동안 관심 없다며. 죽을 것 같으니까, 갑자기 착한 척 하고 싶었지? 우리 엄마한테 예쁨 받고 싶었지?’
그런 느낌입니다. 당신의 무관심, 잘 읽었습니다... 라고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유괴범을 신고하고 아니하고는 당연히 ‘신고하는 것이 맞다’ 라는 식으로 타인 앞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릅니다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솔직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주관적 의견입니다. 군중에 섞여 정의로운 척은 쉽지만 막상 유괴범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과 1:1의 상황에 제가 놓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나는 절대로 정의로운 행동만 취했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망설여 지더라구요. 이야기에 나오는 ‘빨리 그만 둬라, 나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지 말아줘.’라는 마음이 솔직한 마음으로 공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을 더욱 더 증폭시켜서 글을 썼기에 그의 행동이 극단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만... 비도덕적인 면을 찬양하려 한 것은 절대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흥미로운 구성을 하려다보니 만들어진 결정, 캐릭터라는 부분 이해 바랍니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희 엄마는 분명 제 손가락을 냉큼 잘랐을 거예요.]
[저 대신 가방에 들어가 계신 건 아니죠? 저희 엄마가 워낙 그런 부분이 있으셔서요."]
라는 유정이의 말은 숨어 있는 설정 상, 유괴범이 유정이를 양녀 삼고도 ‘본업’ 이라고 칭한 유괴를 계속했다는 예시문입니다. 약간의 뉘앙스만을 남겨주기 위해 ‘엄마는 위험한 사람’ 이란 표현은 남겨야 겠다 싶어 쓴 문장이 위의 두 줄입니다.
(사실 유괴를 그렇게 연쇄적으로 또 전문업으로 삼는 건 어렵지 않을까, 그런 부분은 독자 분들께 반감을 일으키거나, 이야기 몰입에 방해를 (터무니없어서)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본문에선 과감히 삭제되었습니다. 일단 저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되어서...)
숨어있는 설정 상
유괴나 저지르는 사람이 양녀 하나 들였다고, 내일부터 착실히 취직을 하고 그러진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생계를 꾸리는 방법은 유정이 외에 다른 아이를 새롭게 유괴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한 명만? 아니 훨씬 더 많았겠지. 유정이를 대학까지 보낼 정도로, 오래 그리고 많이.
라는 가정을 표현하기에, 그리고 위험성을 표시하기에 ‘엄마가 워낙 그런 부분이 있으셔서’ 라는 문장이 적절하다, 판단했습니다.
(설정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흐름은 가져갈 수 있다고 봤답니다... 유정이는 자라면서 희생자들을 많이 봤을 지도 모르겠다. 유괴범이 죽이려던 아이 앞에서 감출 게 뭐가 더 있을까. 유정이가 보거나 말거나 애들을 막... 뭐... 그런 설정도 있었습니다.)
유정이 마지막 편지만으로는 그의 죽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예상만 가능하죠. ‘아마도 거의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이란 이상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내 대신 가방에 들어갔다’ 는 결론이 유정이에게 나오는 것이 엄마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 라는 유정이 식 표현과 잘 어울립니다. 손가락을 자르고도 남았겠지, 죽이고도 남았겠지. 많은 범행을 봐왔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온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방을 어질러 놓았기에 죽도록 혼났다, 그런 것으로 사람의 생과 사를 추론하진 아니할 테니까요.)
그리고 유정이는 글의 제목이 된 손가락은 잘 있습니다. 라는 글로 편지를 마칩니다. (추신을 제외하구요)
그것은 '무관심'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어찌 되거나 말거나, 라는 문장을 이 앞에 굳이 써 독자 분들께 ‘무관심’ 이란 주제를 어필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습니다.
'아, 유정이도 그 아저씨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구나. 되게 무관심하다. 그놈이나 유정이나.'
독자 분들이 그렇게 받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다. 그 부분이 기묘하면서 오싹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쓴 문장입니다. 생각처럼은 잘 되지 않지만요. (항상)
유정이의 추신글
[편지 붙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디로 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은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아저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어도 어디 사는지, 모르겠다는 뜻을 모두 내포하구요. 그로써 글의 제목이 된 그리고 추신 전 마지막 문장이 된 [손가락은 잘 있습니다] 와 주제인 ‘무관심’ (니가 죽었든 어쨌든)이 글을 쓴 제 입장에선 적당히 마무리가 되었다고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유정이가 ‘편지가 왜 내 방에 있는 지?’ 아리달쏭해 하는 부분은 사실 '왜 날 믿어주지 않느냐' 하는 의문에 가깝습니다.
“이제와서 이런 편지를 내게 읽히는 이유가 뭐야? 아직도 나 못 믿겠다는 거야? 내일 대학교 기숙사로 떠난다고? 너무한 거 아니야? 이제껏 엄마랑 딸로 잘 살았는데. 떠들고 다니면 재미없어, 뭐 그런 거야?”
‘아저씨처럼 죽이겠다는 건가? 아저씨는 죽었다는 건가?’
거의 죽었다고 여기지는 아저씨에 대하여 확정 할 수 없는 의문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부분은 억지로 끼워 맞춘 부분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설계하며 ‘편지를 주고 받다’ 라는 줄기를 확립하기 위해선 결말에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편지를 모두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제게는 필요했거든요.
가장 적합한 이는 당연히도 유정이 밖에 없구요.
엉터리 적인 설정이 즐비하기 때문에, 나름 고민도 많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글을 한 번에 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방법론 적인 것을 차치하고, 재미있거나, 신박한 부분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였다, 해야할까요.
글을 쓴 제 입장에서 고민을 거듭해 만든 만족스런 엔딩이 유정이 편지 본문입니다.
글을 완성하고 독자 분들이 '유정이 대신 아저씨가 죽은거야?!' 라고 생각해주시고 그 부분으로 하여금 ‘공포 게시판’ 에 어울리는 글이군... 여겨주신다면 그 이상의 만족스런 결과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서 아저씨는 '슈뢰딩거의 아저씨' 이지만요.)
아주 소수의 분들께서 무관심이란 주제를 끌어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참 보람이 있었겠다. 뭐 그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사실 독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라는 부분에 있어서 저는 아무런 확신을 갖지 않고 글을 올립니다.
그냥 취미니까, 마음 편히 읽어주시겠지. 그런 생각이 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독자 분들이 저를 알고 계신 건 아니지만요. :)
구차한 핑계 밖에 되지 않네요.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추천, 비추천, 댓글로 말미암아 글 읽어주셨다 표시해주신 것도 너무도, 진심으로도, 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