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거리는 일기니까 반말로..
마게대전에 휩쓸려 마비를 설치한지 3일째..
마비는 아기자기하고 사람들이랑 꽁냥거리는 맛에 하는 게임이라는 상식은 직접 마비를 해보자마자 깨졌다
손이 미끄러져 길가던 새끼여우를 후드려 패버렸다.
익숙하게 당하는 일인지 여우들은 사람이 근처에만 가도 방패를 띄우며 경계한다.
길을 가다가 주변에서 얼쩡대는 너구리를 한 방에 죽여버린다.
제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역을 해본다.
괜히 내 허리가 아픈 것 같다. 현실에서도 안해본 막노동을 게임에서 하고 있다니..
등짐을 열심히 날라서 손수레를 샀지만 무역가보다는 폐지를 줍는 기분이 든다.
괜스레 비참해진다.
물론 꽁냥거릴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가끔씩 초보자 채널에 드립을 날리며 웃어본다.
다들 친절하다.
한번은 티르 코네일의 광장에 서있는데 누군가 접근하더니 대뜸 거래를 건다.
'.....???? 사기꾼인가?'
그 누군가는 웃으며 [이거 쓰세요] 하고 시커먼 목도를 내민다.
[여신의 칼리번 연습용 목도]라고 써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강력하다.
[아, 쌍으로 쓰세요.] 한 자루 더 준다.
'????'
영문도 모른채 받아들고 쌍도를 휘둘러 본다.
제법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좋은 무기임에 틀림없다.
원래는 듀얼건을 들고 다니다가 너무 긴 딜레이에 한계를 느끼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검의 길.
쌍도과 함께 하니 그 길이 즐거워졌다. 두 자루의 도에는 일월쌍도 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 후로 나는 승승장구했다.
각종 스킬들을 연마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잔인하게도 너구리와 새끼 여우들을 몇백마리씩 학살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강.해.졌.다.
숲 속에서 나를 덮친 붉은 곰이나 그리즐리 베어는 나에게 그저 [한 방에 곰을 잡은] 타이틀을 주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각종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모든 일을 척척 해냈고 모든 던전을 자유로이 누볐다.
던전 보스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모두들 턱턱 쓰러져나갔고,
아직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나오가 주는 영혼석은 쓸 필요도 없었다.
가끔 그녀가 준 물약만이 필요했을 뿐.
하지만 오늘, [복수의 서] 2권을 찾아오라는 의뢰를 받고 간 키아던전에서 나는 좌절을 맛보았다.
보스인 골렘은 강력했다. 이렇게 난이도가 갑자기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한 방 맞으니 빈사상태, 두 방 맞으니 나오가 손짓한다.
그렇게 도전하길 서너차례.
나와 함께 달려주던 말도 죽고 창공을 누비던 독수리도 죽고
내 상처는 너무도 깊어 자가치유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패배자가 되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툭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력감과 좌절감, 처음으로 패했다는 수치심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였다.
누군가 초보자 채널에 [시작한지 일주일이 안되신 분 지원해드려요] 라고 외친 것은.
나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상태였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보스 골렘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 괜찮은 무기 갖고 계시네요] 라고 하며
정말로 멋드러진 뱀파이어 의상들을 주었다.
정말로 멋졌다.
하지만 일월쌍도와는 맞지 않는 웨스턴룩이었기에 봉인해둔 듀얼건을 다시 꺼내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짜릿하다.
잠시 골렘 생각은 잊고 랭크F 슈팅러쉬 자세를 취해본다. 멋지다.
그래. 나는 너무 피비린내 나는 길만을 걸어온 것이다.
내 나이 17세. 누렙 46..이제 나도 다 컸는데 정신차려야지.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수라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보스 골렘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는 잠시 접어두고
신의 기사단 녀석들이 부탁한 이멘 마하의 소문이나 수집하러 가봐야겠다.
아참, 농장에 열린 딸기부터 따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