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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에 대한 소고(小考)… 2편 노무현
게시물ID : sisa_583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갠트
추천 : 1/5
조회수 : 5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3/26 17:20:01
http://www.shinmoongo.net/sub_read.html?uid=75400


탈당에 대한 소고(小考)… 2편 노무현
[임두만의 정치해설] 무차별적 비판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과 진영도 죽인다



탈당에 대한 소고(小考) 2편은 누구나 짐작했겠지만 노무현입니다. 노무현도 현역 정치인으로 총 4회의 탈당 경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탈당 경력인 열린우리당 탈당은 분석에 의미가 없습니다. 그 외 나머지 3회의 탈당은 노무현으로서도 그의 지지자들로서도 매우 당당한 탈당이며,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이 탈당 행보를 비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노무현도 앞서 기록한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탈당과 입당을 통한 정치변혁을 꿈꿨으며 실제로 그것들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글에 대한 판단도 읽는 사람 스스로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저는 사실만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 신문고 뉴스 자료사진...노무현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벌어진 서울 시청 앞 촛불집회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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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정치인생에서 첫 번째 탈당은 1990년 1월 22일 단행된 3당 합당 후 민자당 창당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이 소속된 통일민주당은 1월 22일 민자당과 합당하므로 소멸되었다. 앞서 김영삼 총재는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하며, 의원총회의 추인을 부탁했으나 노무현 의원은 “의의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는 등 반대했었다.

 

하지만 그 같은 반대에도 이 합당안은 추인되었고 이 합당이 성사되어 민자당이 창당되므로 소멸했다. 이에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장석화 이철 등 합당 반대파 의원 5명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잔류, 무소속 홍사덕, 신정당 박찬종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 재건에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이부영 홍성우 등 재야세력 명망들을 영입, 정당의 모양새를 갖췄다. 이어서 끝내 김대중이 이끄는 정당인 신민주연합당과 합당, 통합민주당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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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1995년에 정계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노무현은 '전근대적 정치 행태'라고 극렬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을 당시 재야인사들이 추진하던 개혁신당과 합당시켜 1996년 총선에서 총 진군하는데 앞정섰다. 하지만 민주당은 전국에서 15석을 얻는데 그쳐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했다.

 

당시 노무현은 서울 종로구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종찬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이후 노무현은 박계동, 김원기, 이철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약칭 통추)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5대 대선 가도에서 통합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순이 신한국당의 이회창과 연대 및 합당을 결정했다.

 

이때 노무현은 통합민주당을 탈당한다. 당시 노무현은 김원기, 김정길 등과 함께 "군사정권과 그 후예들을 심판하여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해야 한다"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선택했다. 1997년 11월의 일이었다. 반면 이부영 등은 “3김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신한국당을 선택했고,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두 번째 탈당 및 입당 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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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29일, 노무현의 세 번째 탈당이 이뤄진다. 이때는 대통령이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것이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극렬 비난했으나 노무현 지지자들은 극구 환영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탈당은 예견된 사안이었다. 그에 앞서 37명의 의원들이 여당인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당 창당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노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탈당 결정은 주요 국정과제인 경제 민생문제에 전념하기 위한 것으로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두고 당적 문제가 소모적 정치공세가 되는 상황에서 정치쟁점화 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신당인 국민참여 통합신당(가칭)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노 대통령은 2004년 5월 20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 또한 노무현 다운 전격적이었다.

 

앞서 3월 12일, 국회는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로서 노무현의 대통령 직무는 즉각 중지되었다. 하지만 이 탄핵안 가결은 표결 당일인 3월 12일부터 3월 27일까지 전국을 촛불의 바다로 만들었다. 이 여세는 4월 15일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지지신당인 열린우리당을 단숨에 152석을 차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기각했다. 대통령도 여당도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첫 회동을 가졌다. 당적도 없는 무소속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긴 원내 1당의 당 지도부와 가진 회동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입당원서를 써달라는 신기남 당 중앙의장의 요청에 자필로 입당원서를 쓰고 서명했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에게 수석당원 자격을 부여했다. 이로써 노 대통령은 2003년 9월 29일 민주당을 탈당한지 8달 만에 다시 당적을 갖게 되었다.

 

이 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 막판 다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지만 이때는 이미 당의 주류세력에게 말려난 형국이므로 그의 탈당 경력에 삽입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치 역정을 논하면서 탈당을 말할 때는 이상 3회로 주지하는 것이 맞다.

 

4

여기서 중요한 팩트를 하나 적시한다. 2007년 3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www.president.go.kr)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글의 제목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오해했는가"라는 제목이었다. 글의 내용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비난했던 것에 대해 "대통령 선거에서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관계없이 탈당한 것이라면 용기있는 결단"이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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