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 여징어구요 20대 초반부터 남자친구를 5년 반 넘게 만났어요
서로 대학 졸업하는 모습도 보고 저는 대학원 가면서 사회생활도 하고 남자친구 직장 다니는 모습 등 성장하는 모습 보면서 서로 의지하고, 자리가 조금 잡히면 결혼 하자고 항상 얘기해 왔었어요.
오래 만났으니 각자 부모님도 종종 만났었고 어머님들끼리는 만난 적도 있구요.
제가 이번에 대학원 졸업 하고 남자친구도 직장 어느정도 다녔으니까 결혼 하자고 하고 진행을 시작했어요. 작년 12월에 각자 집 가서 결혼 하라고 하고 식장 예약이 빨리 차니까 어느 날에 예약 걸어놓자고 하고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죠.
그런데 12월 말 1월 초에 남자친구한테 어두운 목소리로 전화가 와서 어머니가 결혼을 좀 미루라고 하셨다고...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상황인지 몰랐고 잘 해결될줄 알았어요. 마음조급해하는 남자친구한테 천천히 말씀 드리고 마음 변하는 시간도 좀 드려라고까지 얘기를 했으니까요.
그래서 남자친구가 열심히 부모님 설득해서 그냥 원래 하던 날짜에 결혼 하자고 하고 이제 상견례 날짜 잡을 일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3월 말 4월 초에 하기로는 했었거든요.
근데 열흘전쯤에 또 그러셨대요. 결혼 미루던가 하지 말라고. 애초부터 결혼을 미루라는게 아니라 저랑 하지 말라고 하신 건가봐요.
이유요? 저도 정말 궁금해요. 남친 집은 서울에 평범한 가정이고...잘살지도 그렇게 못살지도 않는..그리고 남친은 착하고 성실하지만 집안 사정때문에 2년제 대학 나와서 직장 생활 하고 있는 사람이구요.
저는 지방 출신이지만 부모님도 훌륭하신 분이고 저는 말만 하면 아는 유명한 대학이랑 대학원 나왔지만...프리랜서이긴 해요. 일이 언제 들어오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하지만 대학원 다니면서 꾸준히 벌었어요.
사귀기 전에도 사귈때도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결혼하는데 큰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항상 미래를 약속했고...바빠서 못봐서 보고싶다고 하면 남친은 항상 "결혼하면 70년 이상 같이 있을껀데 지금 조금 못보면 어때" 라며 위로 해줬었어요
아무튼 겉보기에 결혼을 반대할 이유는 저도 모르고 남친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도 몰라요...그래서 짐작 가는거는 사주 때문인거 같아요. 저도 사주같은거 조금 믿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으로 운명같은거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이겨낼 수 있다고 명리학 하시는 분한테 들은 적도 있고.
아무튼 잘 되는거 같다가 또 결혼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 남친이 너무 힘들어 하더군요. 저도 억장이 무너지고. 처음에는 남친 어머니만 반대 하시고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아버지도 급한거 아니니까 천천히 하라고 말씀 하셨대요. 그러니까 더더욱 이 집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저희 엄마는 이 시점에 맞춰서 어떻게 되어가냐고 묻고. 거짓말 해도 다 아시더라구요 숨기지 말고 다 얘기하라고. 정말 엄마의 촉은 귀신이에요.
그래서 남친이 울면서 집안이랑 인연 끊고 살고 싶다고 그러는거에요. 저는 그래도 가족이니까 어떻게 그러냐고...내가 빠지겠다고 나만 빠지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랬어요. 남친도 그래 다 그만두자 하데요. 그래서 반씩 걸어놨던 예식장 예약금 돌려주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남친이 전화 와서 저만 괜찮으면 부모님께 다시 강하게 밀어 붙이겠대요. 하지만 저는 서로 힘들어지는걸 아니까...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남친이 너무 죽을꺼 같다고...울면서 얘기하길래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끊었어요.
끊고 이틀정도 생각해도 나도 남친도 어머니도 살면서 너무 힘들꺼 같아서 안될꺼 같은거에요...그래서 만나서 다시 잘 얘기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나러 갔어요.
근데 이미 남친은 그렇게 얘기 하고 마음 정리를 조금 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하려고 했던 얘기를 남친이 저한테 하고 있는거에요.... 잘 된거라고 나말고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하라고. 근데 너무 울음이 터져 나와서 잠깐 같이 있기에는 하고싶은 말을 다 못할꺼 같은거에요. 그래서 밥도 같이 먹고 같이 티비도 보고... 밥먹다 울고 티비보다 울고 그러긴 했는데 쪼끔쪼끔씩 정리 하는 말을 했어요. 나 없어도 다른 사람들 많이 만나고 집에만 있지 말고 취미생활도 좀 하고 본인한테 돈 쓰라고... 남친은 저한테 앞으로 잘될꺼니까 나 까먹어도 안서운해할테니까 까먹으라고.
그렇게 평소처럼 밥먹고 평소처럼 놀고 평소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다가 잘 살으라고 하며 빠이빠이 했어요
아직 많이 사랑하는데...이런 상황이 너무 밉고 싫고 원망스럽네요 주변에 보면 결혼 잘만 하던데..이런 생각도 들고요.
몇년전에...기숙사 살때 키를 잃어버렸었는데 그래서 키 빌려서 집에 들어가서 푹 자고 일어나니까 원래 있던 그 자리에 키가 고대로 있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처럼 정신차리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리고 못해준거...이렇게 많이 생각날 줄 몰랐어요. 저 4월에 음반 나오는데 그거도 들려주고 싶고...지난번에 끓여준 김치찌개가 맛이 조금 없었던거 같아서 미안하고... 어디 같이 못가고 나만 간거 미안하고...나만 오유에 이렇게 글 올려서 위로받으려고 하는것도 미안하고...
그리고 오늘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울었어요. 어머니께 찾아가서 무릎꿇고 빌면서 제가 다 참고 살테니까 결혼 허락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눈만 돌리면 그사람이랑 했던거, 먹었던거, 같이 갔던거, 같이 못가서 미안한거밖에 생각이 안나요
다시 되돌아갈수는 없는 거겠죠?
얼마나 지나야 잊혀질까요? 저는 사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데...오히려 더 기억해내고 싶은데....
차라리 남자친구가 무슨 잘못을 해서 정떨어진거였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ㅠ_ㅠ
이렇게 글 쓰니까 한결 편해지네요. 오유 여러분들께 아무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글 써봤어요.. 근데 이미 조금 편해졌어요.
고마워요 오유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