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하는 일은 뭐든 두근두근한 법. 대선 투표를 하는 것도, 해외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스튜어디스의 머리를 묶고 있는 선명한 색채의 머리장식과 가면을 쓴 듯하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웃음에 마음을 빼앗긴 채 나른히 누워있었습니다.
"고기, 생선, 야채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gogi, saengsyen, yachae?"
"肉?魚?野菜?"
스튜어디스는 초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 탑승객의 국적을 한눈에 간파, 그에 맞는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설봉 작, 무협소설 마야의 주인공 일견후즉파(日見後卽破)를 본 무림인의 심경이 이러할까. 그 고절한 안목에 그저 감탄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튜어디스님이 제게 말 걸어주시기를 다소곳이, 허나 겉으로는 용돈을 꺼내는 삼촌 앞에서 모른척하듯 그저 새침히 앉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날개가 뻗어있는 곳에 앉게 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肉、魚、野菜があみますが、どっちにしますか。(고기, 생선, 야채 어떤 걸 드시겠습니까?)
일본어. 일본어라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군대도 병장 제대한 토종 한국인입니다. 항공사의 혹사에 일견후즉파의 눈도 흐려진 것일까요?
"やさいでお願いします。(야채로 주세요.)"
소심했던 저는 주저주저 일본어로 대답했고, 스튜어디스님께서는 여전한 가면같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웃음과 함께 기내식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심했지만 일본인이고 싶지는 않았던 제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근데, 저 한국인인데요."
"시, 실례했습니다!"
스튜어디스님께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셨고, 내심 기분이 풀린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좌석에 붙어있는 TV를 조작했습니다.
비행기에 붙어 있는 TV에도 애니메이션이 있나?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