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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브금/스압] 국토를 달리는 소년 - epilogue
게시물ID : bicycle2_312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조자륭
추천 : 13
조회수 : 660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5/03/22 21:15:02
프롤로그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028459&s_no=1028459&kind=member&page=1&member_kind=humorbest&mn=60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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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rpCIi



낙동강 하굿둑. 종주는 끝났다. 하지만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하단역을 찾아가야 했다. 
종주가 끝났다고 무릎이 갑자기 아프지 않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한팔 한다리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웃을 수 있었다.

아직 입김나오는 겨울 저녁. 반바지 파스투성이에 더러워진 붕대를 칭칭 감고 자전거를 타는 꾀죄죄한 녀석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재밌는 웃음이 났다. '당신들은 이런 걸 해봤나요?' 속으로 생각했다.

표를 끊고 전철에 탔다. 막 열시가 지났다. 부산역까지 7분정도. 가서 버스를 타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나 곧 부산역에서 내려서 버스 탈 수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부산역이 아니라 남포역으로 가야한다고.

거리검색을 하자 남포역까지는 지금부터 17분이었다. 10시 20분 차를 타야하는데. 
초조해졌다 다시. 끝까지 쉬운 게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었다. 눈을 붙였다. 피곤했다.

남포역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무겁고 무릎이 아팠다. 
뛰었다. 예약해둔 표를 받고, 일층으로 내려가 버스를 찾았다. 10시 20분. 늦지 않았다. 오늘 집에 갈 수 있었다.

버스에 탄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눈빛들은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다름을 거북해하는 눈빛들.
귀엽네. 내가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추워서 눈을 떴다. 3시간이 지나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했다.

항상 보던 거리가 낯설었다.
한시 반의 새벽은 많이 추웠다. 긴바지를 꺼낼 힘이 없어 반바지로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탈 힘이 없어 끌고 가기로 했다.

술먹자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녀석들은 이미 좀 취해있었다. 씻고 나간다고 말하려다가 그럼 오늘은 쉰다고 말했다.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친구녀석도 전화를 했다. 정말 보고 싶었지만 걔네 집은 너무 멀었다. 다음에 보자고 말했다.

치킨이 먹고 싶었다. 오늘은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일요일 새벽 두시에 여는 치킨집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치킨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미니스탑에 들려 캔맥주와 점보닭다리 두개를 샀다. 

올 겨울 처음으로 보일러를 틀었다. 모든 옷을 벗고 모든 짐을 풀었다. 정리는 내일 하기로 했다.
힙색에서는 횟집에서 챙긴 고구마가 나왔다. 으깨진 고구마. 

미소가 나왔다.

IMG_20150223_021021.jpg


"그건 참 놀라운 일일 겁니다. 언제고 만약 내가 여행을 하게 되면, 출발하기 전에 내 성격을 가장 사소한 점들까지도 기록해두고 싶어질 것입니다. 돌아왔을 때, 전에 내가 어떠했으며, 그 후에 어떻게 변했는가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지만 어떤 여행자들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정신은 물론 육체도 몹시 변해서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中 -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 


많이 들어봤던 상투적인 이 문장이 숨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너무나 친근한 내 방, 내 옷, 내 책, 내 물건들은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너무나도 낯설고, 너무나도 신비하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일년만에 보는 듯 새로웠다. 여행 전 사뒀던 베이글도 그대로 있었다.


고생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인정받으려고, 누가 알아주길 원해서 떠났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지금 수고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누군가 힘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반드시 그 날 저녁 고생했다고 전화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평생 기억될 사람이 될테니까.


생각했다.


여행 중에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는데, 거의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직 달리는 것만 생각했고,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행하면서 하고 싶었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이 저절로 정리되어 있음을 느꼈다.


IMG_20141105_152356.jpg


한달이 지났다. 개강을 했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
무릎과 아킬레스건의 후유증은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바보같고 여전히 후회도 하며 살지만,
조금 더 성실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조금 더 행복해졌다.

나라를 구한 거창한 경험은 아니지만, 나를 구한 고마운 경험이었다.


IMG_20150227_192454.jpg


잊지 못할 것 같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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