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사슴과 영장류의 명예를 걸고 결투를 하게 된 것은 아직 대학생때의 일이었다. 아직까지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활기차게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교수님은 똥도 안 싸고 욕도 안하시고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는 구름 위 신선과 같은 존재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는 한국과 일본 대학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출발 전 일주일전부터 우리에게 신신당부 하셨다.
"절대로 돈을 가져오면 안된다!!!! 돈을 가져오면 너희는 호된 불호령을 받게 될 것이야!!!!"
물론 교수님께서는 참가하는 학생들이 돈을 너무 가져와서 돈을 낭비하는걸 경계하시는 의도였을테다.
그러나 나는 문자 그대로 이해했다. 아, 돈을 절대 가져가면 안되는구나!!!
참고로 나는 수능 언어 1등급이다. 이럼으로써 우리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얼마나 실용성이 없는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돈을 가져가야하는거 아니니?라고 물어도 우리 교수님이 돈 가져오지 말라고 그랬어!하면서 돈을 환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인천공항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돈 환전 안한 사람들은 환전해가지고 와라."
학생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으면서 환전을 하라고 하셨는가? 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
"교수님, 저는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경악하셨다. 나는 거의 교수님을 삼년째 알았지만 그 표정을 지으신건 그 날이 최초셨다.
"돈을 왜 안 가져왔어?"
"교수님께서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야 임마 그렇다고 진짜 안 가져 오는게 어딨어! 당장 환전해가지고 와! 일본에서 어떻게 버틸려고 그래!!!!"
그래서 나는 돈을 환전했다. 어줍잖은 상식으로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1/10의 돈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5만원(=일주일 용돈)만 환전해가도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참고로 나는 일본어도 1등급이었다(지금은 9등급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무의미함에 대해 통탄을 금할지 않을 수 없다.
삼천엔이 나왔다.
당시 일정은 삼박 사일정도였다.
나는 생각했다.
'아 일주일에 천엔씩 쓰고 오자. 알찬 소비 생활이 될거야.'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도착한 오사카 거리를 돌아다니던 나와 친구는 그 곳에서 스타벅스와 타코야끼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내 몸통만한 토니토니 쵸파 인형을 인형뽑기에서 발견하고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그 인형을 뽑아서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가지고 다니기도 힘든 물건이었는데. 어쨋든 쵸파를 본 나는 어머 저건 뽑아야해!하면서 미친듯이 돈을 투자했고 쵸파 인형을 한번에 일센티씩 옮겨 그 자리에서 오백엔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출구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쵸파인형을 본 나는 나머지 돈도 투입하려고 했지만 나에 비해 이성이 남은 친구는 극구 나를 말렸다. 나는 한국인의 자존심으로 저걸 뽑아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친구는 저건 일본인이 한국인의 지갑을 털기 위한 간악한 술수이며 네가 저기에 넘어가지 않는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수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슴과 대결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쵸파도 사슴과니까.
어쨋든 첫날 천 오백엔을 날려버린 나는 이제부터 돈을 아껴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열심히 빌붙었다.
둘째날은 나라 현에 있는 사슴공원에 갔다.
사슴 공원에는 한국인 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한국어와 중국어 안내문이 씌여져 있었다. 비록 고국을 떠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일본어에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 그래서 한글이 너무 반가워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뒤를 지나가던 중년의 두 남성분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한글 잘 읽네~"
"요즘 일본 애들은 한국 연예인 좋아한다는데 한국어도 공부하나 보네~"
나는 아저씨들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아리가또 고자이 마시따!"
아저씨들은 인자하게 웃으면서 사라졌고 친구들 역시 내 주변에서 필사적으로 나는 이 사람과 일행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무니다를 어필했다.
우리는 사슴 공원으로 들어갔다.
사실 사슴 공원은 이름은 지극히 온화하고 평화로운 이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깡패들에게 나와바리가 있듯 사슴공원은 사슴파의 나와바리였다. 인간은 지갑을 삥뜯고 사슴은 인간의 음식을 삥뜯는 사슴계의 이탈리아였다.
그곳에서 나는 백엔짜리와 150엔짜리 사슴 모양의 열쇠고리를 두고 고뇌했다. 150엔짜리 열쇠고리는 사슴털로 만들었다고(주장)하여 50엔 비쌌고, 좀 더 사슴처럼 보였다. 그러나 백엔짜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열쇠고리였다. 나는 고심끝에 돈을 아끼자는 생각으로 백엔짜리 열쇠고리를 골랐다.
이는 정말로 신의 한수였다. 내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하늘에서 내게 코를 쓱 문지르면서 짜식.....일본까지 왔는데 기념품 하나는 사가야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곳은 종이봉투에다 기념품을 담아주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쥐고 그 곳을 나왔다.
사슴 공원은 시카 센베라는 과자를 판다. 사슴과 인간이 둘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하지만 내가 센베를 사고 있는 동안 내 친구는 가방에 넣은 초콜릿을 사슴에게 강탈당했으니 이 놈들이 먹을 수 없는 건 사슴 고기뿐만이 아닐까 싶다)나는 일부는 내가 먹고 일부에게 사슴을 주리라는 야심에 차서 시카 센베를 샀다.
아, 어찌나 순진한 생각이었던지.
내가 센베를 사던 순간 갑자기 사슴무리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은 머리로 나를 밀기 시작했다. 여름이었다면 녹용꼬치가 되었겠지만 나는 겨울에 갔고 지극히 다행히 그들의 뿔은 잘려나간지 오래였다. 그들은 계속 머리로 나를 밀며 센베를 내놓으라 협박하기 시작했다. 사슴은 생각보다 크기도 크고 힘이 쎘다. 나는 목숨의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뛰었다.
사슴들도 나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나는 센베 든 아낙네가 되어 사슴들을 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두발 달린 짐승이었고 저들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다. 다리 두개가 부족했다. 게다가 인간이 인류의 영장이 된 것은 지능 덕이지 신체적 능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인류의 신체적 능력에서도 최하층에 속해 있었다. 내 생애 그렇게 뛰어본적이 없었건만 나의 저질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하고 나와 사슴 무리의 간격은 좁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센베를 묶은 줄(종이줄이었다)을 풀 생각도 못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 원아웃 만루 상황에서 공을 던지는 정대현 투수의 절박한 심정으로 센베를 멀리 던졌다. 센베는 꽤 멀리 날아갔다. 사슴무리는 빛이 되어가는 센베를 쫓아 나를 버리고 갔다.
그러나 한 놈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 사슴파의 차기 후계자일지도 모르는 그는 100원당 100대씩이야라고 외치는 일진들의 목소리를 백그라운드에 깔고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나는 다시 뛰었다.
그러던 도중 내 손은 허전해졌다. 바로 방금 산 기념품을 떨어트린 것이다. 내가 몸을 돌리자 본 것은 내가 흘린 종이봉투를 씹어먹고 있는 어린 숫사슴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가 우적우적 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날아가버린 250엔과(센베는 150엔이었다. 비쌌다.)사슴의 위액이 과연 플라스틱을 소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과 플라스틱은 인간에게도 해로운데 사슴에게도 해롭지 않을까 하는 다채로운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 때였다. 사슴이 되새김질을 시작한 것이다. 종이 봉투는 소화시킬 수 있더라고 플라스틱은 사슴이 씹기에는 질겼다.
사슴의 입밖으로 열쇠고리의 고리 부분이 튀어 나왔다.
나의 이성은 홀로로로로로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그 자리를 물욕이 차지했다.
나는 사슴에게 달려들어서 고리 부분을 손가락에 걸고 당기기 시작했다.
사슴도 꺼져라 닌겐! 하면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나는 너나 꺼져라 사슴! 이걸 내놓지 못할까!하면서 그의 콧잔등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상어가 그 쪽 부근이 약점이니 이 놈도 그 쪽 부근이 약점이겠지라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슴파의 차기 후계자(일지도 모르는)이자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그는 태어나서 이런 대우를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아버지한테도 맞아본적이 없는데!하면서 그는 락커의 혼이 빙의되어 헤드뱅잉을 시작했다.
나는 힘으로 승부하려다가 딸려 그의 헤드뱅잉 리듬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면서 고리를 계속 당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러워서 안 먹는다 ㅅㅂ를 외치며 그는 열쇠고리를 뱉었다. 그리고 내게 뒷발질을 하려고 했지만 nn년간 피구라 다져진 동체시력은 뒷발질을 피했다. 체육은 7등급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여!!!!!!!!!!!!!
물론 피한 뒤에 얼음 때문에 넘어지긴 했지만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는데 이럴 수가.
내 꼴을 구경하는 구경꾼들이 있었던 것이다.
두 명의 양키는 DSRL과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있었고 나와 같은 인종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미친듯이 웃고 있었던거 같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이성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돌아와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알았듯 나도 쪽팔림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물비누로 열쇠고리를 벅벅 닦았다.
그런데 닦다 보니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운 것이다. 세상에 사슴과 싸워서 이기다니!(엄밀하게 말해서 사슴과 줄다리기였지만)게다가 기념품도 되찾다니!
그래서 나는 교수님들께 가서 나의 전투를 말씀드리면서 자랑을 했다.
교수님들은 저런 돌+아이를 보았나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그 뒤 나는 150엔이라는 흑자를 남긴채(실제로 돈을 남겨왔다)귀국했으며
열쇠고리는 사슴의 위액때문이었는지 사슴 장식 뿔과 다리 그리고 열쇠고리와 장식을 잇는 부분이 부셔져 버려 못 쓰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장식은 내 서랍안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일본 여행이 끝나고 후쿠시마 발전소가 터진 이후 우연히 서랍 정리하다가 발견되어 기숙사 룸메와 같은 기숙사 사는 아이들에게 장식을 보여주면서 얘기를 했더니 배꼽을 잡고 굴러서 용기를 얻어 내가 잘 다니는 여초 카페에 인증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러자 그 사람들도 빵 터졌고 룸메와 회원분들의 독려로 나는 컬투쇼에 이 사연을 응모했지만 보기좋게 물먹고 말았다. 역시 나는 대한민국의 평균치인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장식은 그 뒤 없어지고 말았다. 기숙사 이사 기간에 없어졌는지 어쨋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 장식은 사슴의 위액에 잠겨 제대로 빛도 못 보고 산화되어버릴 자길 구해준 내게 추억거리라는 보답을 선사하고자 그 날 서랍에서 나온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