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스포츠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면 아무래도 신체 조건이 천천히 하강곡선을 그리게 마련이다. 대부분 프로 스포츠에서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슬슬 전력이 떨어지고, 마흔이 넘어가면 현역에 머물러 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바둑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쓰는 것이니 다른 스포츠보다 나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안 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바둑도 확실히 나이와 상관관계가 있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면 바둑이 쉽지 않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세계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정상급의 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조훈현 9단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람이다. 그런 예는 바둑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그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사는 아마 지금으로서는 이창호 9단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의 기록도 뒤처지지만 지금과 같은 절정의 기력을 마흔, 쉰이 넘어서까지 유지할 사람은 아무래도 이창호 9단뿐일 듯하다. 예전부터 마흔을 넘기고서도 기력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 하물며 쉰은 언감생심이다. 마흔까지만이라도 정상급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할 만큼 한 거다. 그만하면 내 바둑 인생은 성공한 거라고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세돌 자서전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