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윤석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낳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진 그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 공사판에 흘러들었다. 그는 재개발이 진행되는 공사판 한복판에서 최후를 맞았다. 안전 그물망이 없는 건물 위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 살 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으며, 신이 있다면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2
천상의 법정 한가운데 정의의 여신이 앉아 있었다. 여신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 오른쪽과 왼쪽에는 각각 천상의 질서를 담당하는 검사와 영혼을 인도하는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변호사 옆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김윤석이 앉아 있었다.
변호사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헛기침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여신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여신님. 지상에서 소명을 다한 뒤 천상에 올라온 영혼들은 각자 살아 있는 동안 저지른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죄의 경중과 심판결과에 따라 다음 환생 전까지 저 불구덩이 지옥에서 시간을 보낼지, 드높은 천상에서 시간을 보낼지가 결정됩니다.”
여신 앞에 앉아 있는 속기사 천사들이 변호사의 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저는 김윤석에게 이러한 심판은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제 넘는 이야기이지만,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의 생을 들여다보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김윤석의 인생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 법정 한가운데에서 재생되었다. 그의 불행한 삶에, 뒤에 앉아 있던 배심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의 인생은 우리 천상이 낳은 오만함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그는 평등한 기회도, 공정한 과정도, 정의로운 결과도 어느 것 하나 누리지 못했습니다. 최악의 조건에서, 살아 있는 동안 도둑질 한 번 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불쌍한 영혼을 이 자리에 세우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변호사가 앉자 배심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잘 될 겁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변호사가 떨고 있는 김윤석의 손을 잡았다.
“존경하는 여신님.”
이번에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검사가 여신을 향해 말했다.
“지금 이 재판이 열리고 있는 것은 피고인 김윤석에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 어느 것 하나 누리지 못했더라도, 잘못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또 다른 억울한 자가 생기지 않고,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아주 큰 죄를 지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검사는 김윤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것은 바로 살인입니다.”
배심원 몇 명이 검사의 말에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그 어느 서류에도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변호사가 보란 듯이 검사를 향해 서류를 들었다.
“존경하는 여신님. 검사측은 현재 서류상에도 없는 범죄를 가지고 억울하게 피고를 구속하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살인은 서류상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법정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검사에게 집중되었다.
“준비한 자료를 통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검사가 이야기를 마치자 짧은 영상이 법정 한가운데 펼쳐졌다. 김윤석이 죽기 얼마 전의 영상이었다. 그는 고단한 일을 마치고 좁은 방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클로즈업되고, 그 내용이 보였다.
「돼지 새끼. 니가 그러고도 야구 선수냐? 늙어서 퇴물 됐으면 후배들 앞길 막지 말고 조용히 꺼지던가, 아니면 뱃살이라도 빼고 와서 빌던가. 꼭 저런 놈들이 실력도 안 되면서 자존심만 내세워요. 그 돈 받고 그 실력 보여 줄 거면 차라리 자살한다.」
그는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고 있었다. 글을 올린 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댓글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 낄낄 웃으며 잠이 들었다.
“그는 인터넷 댓글을 통해 집요하게 한 야구 선수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 댓글을 본 야구 선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변호사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검사가 그의 말을 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물론, 아까 변호사가 이야기한 대로 기록상에 남는 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사가 시작되기 전 김윤석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야구 선수는 김윤석이 죽기 하루 전날 자살 했습니다. 다음 날 죽은 김윤석에 대한 조사는 물론, 기록된 범죄가 없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김윤석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더욱 역력해졌다. 변호사는 가운데 앉아 있는 여신을 바라보았다. 여신과 그 저울은 아직 아무 미동이 없었다.
“존경하는 여신님. 만약 김윤석의 행동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살인과 이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야구선수에 대한 악플은 수많은 사람들이 썼으며, 특정인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고 보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이는 작은 잘못을 침소봉대 하는 것이며, 그가 받은 불행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것입니다.”
시간은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재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김윤석을 감싸는 의견이었다.
“좋아…, 조금만 더 버티면.”
소강된 법정의 조용한 침묵을 깨고 검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피고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증인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의 이야기에 김윤석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변호사는 증인이 오더라도 별 다를 것 없다는 듯 검사를 노려보았다.
“증인. 앞으로 나와 주세요. 선서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검사의 부름에 배심원단 뒤편에서 증인이 나왔다. 증인은 이미 천국에 갈 자격을 얻은 듯 머리에 하얀 고리를 띄우고 변호사 없이 혼자 걸어 나왔다.
“피고인. 피고인은 증인을 모른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검사가 질문을 한 것은 증인이 아닌 김윤석이었다.
“저…, 저는….”
“대답하지 마세요.”
변호사가 김윤석의 이야기를 막았지만, 그 표정은 이미 불쌍할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피고는 증인을 모른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존경하는 여신님. 피고 김윤석과 증인 최인호는 같은 고아원 출신입니다.”
거의 김윤석쪽으로 기울어졌던 배심원들이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 이 법정에서 세 가지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그것입니다. 여기 피고 김윤석과 똑같은 조건으로 인생을 살아온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비록 같은 조건이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성공한 야구선수로써 이름을 날렸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어렵게 살면서, 친구인 김윤석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자신에게 퍼붓는 악플에 견디지 못한 그는 상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런데도 피고가 보호를 받아야 할 자격이 있는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과연 정의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 직접 증인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요청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검사가 말을 마치자 법정이 조용해 졌다. 그 속에서 김윤석이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증인이 여신 앞에 섰다. 배심원들은 아직 증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지만, 이미 생각을 굳힌 듯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던 여신의 저울이 빛나며 판결의 때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존경하는 여신님.”
최인호가 여신을 향해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 저의 죽음과 제 친구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위증을 하면 이 자리에서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있는 사실만을 그대로 말하세요!”
검사가 소리를 질렀지만, 최인호는 검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김윤석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분명 저의 상황과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비관해 죽음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제 친구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죽은 다음 날, 윤석이는 공사장에서 죽었습니다. 제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공사장에서 몸을 던진 것입니다. 저는 윤석이 때문에 제가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리고 싶었지만, 천상의 법도는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최인호와 김윤석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는 이 자리에, 혹시라도 사소한 오해가 생겨 제 친구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왔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여신님께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최후 진술이 끝나자, 법정은 다시 엄격하고 고요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이윽고 여신이 판결을 내리는 목소리가 김윤석과 최인호를 감쌌다.
“판결이 내려졌도다.”
김윤석이 눈을 뜨자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를 웃으며 반겨 주었다. 어렴풋한 따뜻함에 그는 자기가 천국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정신없이 자신의 친구를 아느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최인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천국 그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