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엄마는 동생의 눈을 가렸다. 동생은 다시 울먹이고 있었다. 순돌이는 자기 집 앞에서 새하얗게 굳은 채 죽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 심하게 발버둥을 쳤는지 진흙이 군데군데 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밥그릇이 엎어져 있었다.
나는 아빠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순돌이에게 다가갔다. 채 감지 못한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길게 떨어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밥통을 들어 살펴보았다. 먹다 남은 밥풀 사이로 어제 저녁에 보았던 하얀 좁쌀 같은 것이 보였다.
닭장으로 달려가 봉구를 찾았지만, 봉구는 보이지 않았다. 장식이와 다른 암탉들만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었다. 어제 저녁 보았던 봉구의 공허한 눈빛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목 언저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애, 너 괜찮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듯 불렀지만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결국 그날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었다. 온 몸이 불덩이 같았다. 동생은 중간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짐을 챙겨 학교로 출발했다.
아빠는 동생이 학교에 간 뒤 순돌이를 뒤뜰에 묻었다. 엄마는 아빠를 도와 순돌이 묻는 것을 도왔지만, 하루 종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제, 오늘 봉자와 순돌이가 죽은 것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요 며칠간 족제비가 나타나 암탉 몇 마리를 잡아 간 것도 마음에 걸렸다. 기르던 동물들이 자꾸 죽는 것이 나와 동생에게 영향을 준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결국 오늘 순돌이가 죽은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한동안 잘 적응해서 지냈지만,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엄마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이제 얼마 안 있어서 올라 갈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아.”
아빠는 그렇게 엄마에게 말한 뒤 닭장 주변 구멍 난 곳을 찾아서 메웠다.
하루를 푹 쉬고 나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을 회복했다. 몸이 떨리지도 않았고, 열이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니라 심적인 부담이었다. 이틀 전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교실 문을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윤남이가 맨 앞쪽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 저기 상처를 입어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지만, 다른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뒤쪽에 영식이와 그 패거리들도 앉아 있었다. 삽에 맞았기 때문인지 윤남이보다 붕대를 크게 감았지만, 역시 별 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 제각각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의 모습이었다. 다만 영식이의 눈빛에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꾸미고 있는 듯한 음흉스러운 눈빛이었다.
“요새 감기가 많으니까 다들 조심하도록 하고,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신경 써라.”
담임선생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내 걱정과 달리 교실은 평온했다.
영식이는 더 이상 윤남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가끔 아니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그 뿐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한참 전에 집에 도착한 동생이 평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비슷하게 끝나지만, 시험 기간에는 훨씬 일찍 끝난다고 했다. 아빠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닭장을 수리하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내 말에 아빠는 공부나 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 닭장 안에는 장식이를 포함해 네 마리의 닭이 있었다. 봉구는 여전히 닭장 안에 없었다. 암탉들은 옹기종기 모여 닭장 안에 뿌려진 옥수수를 먹었지만, 장식이는 불안한 눈초리로 주변을 계속 돌며 경계했다.
엄마는 최근 계속 족제비가 나와서 그럴 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내 눈에는 마치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잡아갔네. 참나 사람 환장하겠구만.”
아빠가 닭장 앞에 서서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제까지 네 마리였던 닭이 세 마리로 줄어 있었다.
“아침에 보니까 닭장 문 열려 있던데 당신 어제 안 잠근거 아니에요?”
“어제 저녁에 확인 했어. 분명히 잠궜다고.”
“아유, 그럼 사람이 야생동물을 어떻게 이기나요. 그냥 냅둬요.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아차 싶어 옆에 있던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냥 조용히 해요. 성아 오늘 시험인데 또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아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왔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우리 교실은 여전히 평온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만큼 다들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몇몇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 또한 편안한 분위기에 편승한 상태였다.
선생들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영식이 같은 아이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차피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교실의 평온을 깬 것은 4교시가 끝날 때쯤 이었다. 익숙한 울음소리와 함께 성아가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달려온 다급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이냐며 뛰쳐나가 성아를 붙잡았다.
하지만 성아는 자기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상한 오빠가 윤희를…, 윤희를…. 학교, 학교 뒷산으로….”
놀랍게도 성아의 입에서 나온 것은 윤희의 이름이었다. 뒤에서 의자와 책상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윤남이었다.
윤남이는 다급하게 뛰쳐나와 떨리는 손으로 성아를 붙잡고 이상한 녀석이 윤희를 데리고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1교시부터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영식이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성아는 잘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저 학교 뒷산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했다.
윤남이는 교실 문을 나가 중학교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며칠 전 보았던 윤희의 얼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윤남이를 쫓아 뛰어갔다.
중학교 건물 뒤에는 성아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이 발을 동동거리며 울고 있었다. 우리를 본 아이들은 친구가 잡혀갔다며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윤남이는 아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해 미끄러운 산을 넘어질 듯 휘청 거리며 올라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윤남이를 쫓아갔다.
작은 고개를 넘자 오른쪽에 묏자리로 보이는 평지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여자아이의 짧은 비명소리와 짤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에 묘지 안으로 달려간 윤남이는 묘지 한쪽에서 바지를 내리고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목을 휘어잡고 남자를 끌어내리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바지를 내리던 남자는 영식이었다.
묘지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진 영식이는 달려드는 윤남이를 붙잡고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윤남이와 영식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묘지 한쪽에 쓰러져 있는 윤희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교복을 벗어 윤희에게로 달려갔다. 옷이 반쯤 풀어헤쳐진 채 윤희는 울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 손으로 끌어내려진 치마를 붙잡고 있었다. 끌려 오면서 많이 맞았는지 얼굴도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다.
내 얼굴을 보자 윤희는 죄송해요, 살려 주세요라는 말을 떨면서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났다.
이제 괜찮다고 들고 있던 교복을 윤희에게 덮어 주었다. 윤희는 아직 몸을 덜덜 떨면서 살려달라고 조그맣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윤희의 손을 잡고 이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옆에 있던 돌덩이를 잡아들었다.
아래쪽에서 영식이가 윤남이를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었다. 한 걸음에 뛰어 내려가 손에 쥐고 있던 돌로 영식이를 내려찍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영식이는 윤남이를 때리다 말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옆으로 굴렀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윤남이가 일어나 영식이를 발로 마구 때렸다.
“이 새끼들아! 그만두지 못해?”
누군가 우리를 밀치며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임선생이었다.
우리가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말린 교사들은 윤남이와 영식이를 끌고 학교로 내려갔다. 나는 뒤따라 올라온 성아의 친구들과 함께 윤희를 데리고 내려갔다.
산에서 내려온 교사들은 영식이를 있는 힘껏 두들겨 팼다. 다들 이제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담임선생은 나와 윤남이를 불러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럴 수 없다고 윤남이가 항의 했지만, 담임선생은 말버릇이 나쁘다며 오히려 윤남이의 뺨을 때렸다.
어차피 미수에 그쳤으니 일을 더 크게 만들지 말고 조용하라는 뜻이었다. 윤남이가 항의하는 눈빛으로 선생을 노려보았지만, 담임선생은 이미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지만,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심히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학교 뒷산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층 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우리 오늘이라도 당장 올라가요.”
아빠는 말도 안 돼는 소리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오늘은 엄마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성아는 그럼 어떻게 해요? 그 녀석들이 성아에게 그런 짓 하지 말라는 법이 있어요?”
“형수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제발 자꾸 그러지 마.”
“계속 말만 그렇게 하죠? 이젠 질렸어요. 당신은 아주버님 생각만 하지, 우리 가족은 생각도 안 하나요?”
엄마와 아빠의 격한 말다툼에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동생을 달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평상에 앉아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시월 중순의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다음날 학교에 간 나는 교실 앞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여느 때처럼 떠들고 있었다. 내 시선은 윤남이 쪽으로 먼저 향했다. 그리고 영식이를 바라보았다.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 있었다.
윤남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식이는 어제 있었던 일을 윤남이가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불현듯 윤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식이를 바라보고 걸어가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며 꺼냈다. 나는 윤남이가 학교에 칼을 들고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 생각과 달르게 윤남이는 영식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갖다 바치듯 담배를 내밀었다.
“…미안하다.”
무릎 꿇은 윤남이를 본 영식이는 자신이 이겼다는 듯 끅끅대며 웃었다. 그 표정은 자신이 완전히 윤남이를 굴복시켰다는 만족감으로 가득 부풀어 있었다.
영식이는 윤남이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뺨을 몇 번 툭툭 친 뒤 패거리들과 교실 밖으로 나갔다.
곧 아침 조례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영식이는 윤남이를 시종처럼 부렸다. 돈을 빼앗는 것은 물론, 틈이 날 때마다 담배, 사이다 등 심부름을 시켰다.
윤남이는 항상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히 영식이에게 원한을 품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영식이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그것이 윤남이가 동생인 윤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일을 파출소에 신고한 윤남이에게 경찰은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 하라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험이 시작되었다. 윤남이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고, 매일 기침을 심하게 했다. 하지만 시험 때문에 몸이 바빠지는 바람에 자연스레 생각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시험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수월했지만, 그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첫 시험이 끝난 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아 마당 위 평상에 앉아 있었다.
한창 더위가 남아 있을 때 왔는데, 어느새 완연한 늦가을이 되어 있었다.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비안에서의 생활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아빠는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에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는 나의 시험과 성아 때문에 비안에 남았다. 내심 서울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포기한 것 같았다.
마당을 둘러보자 순돌이가 살던 빈집과 이제는 허전해진 닭장이 보였다. 닭장에는 이제 장식이와 암탉 한 마리만이 살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이 상황을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지 궁금했다.
방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닭장 쪽에서 장식이가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족제비인가 싶어 가까이 가자 닭장 문 앞에서 장식이가 고개를 내밀며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닭장 앞에 족제비는 없었다. 대신 비쩍 마른 봉구가 닭장 앞에 서서 장식이를 보고 있었다. 장식이는 원수라도 만난 마냥 날뛰었지만, 닭장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런 장식이를 한참 지켜보던 봉구는 뒤에 있던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집안 창고 쪽으로 사라졌다. 봉구의 뒤를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뒤에도 장식이는 한참동안 흥분해서 날뛰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또 닭이 한 마리 없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무슨 족제비가 닭장 문을 열고 들어 가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장식이 뿐이었다. 나는 어제 봉구가 나타났던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시험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시험 이틀째 날이 되자 평소 시끌벅적하던 교실도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식이와 그 패거리도 전부 보이지 않았다. 담임선생 말에 따르면 심한 감기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맨 앞에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윤남이를 보고 폐렴 검사라도 해야 되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곧 1교시 수학 시험이 시작되자,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교실 맴돌았다. 시험이 끝나갈 때쯤 누군가 교실 문을 세차가 열고 들어왔다.
“야, 야이 새끼야. 너 뭐하는 놈이야?”
시험을 감독하던 수학 선생이 깜짝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영식이가 서 있었다.
손에는 담뱃갑을 하나 꽉 움켜 쥐고 있었다.
“저 새끼가 우리한테 이상한 걸 줬어. 다 저새끼 때문이야.”
영식이는 윤남이와 마찬가지로 표정이 어둡고 기침을 심하게 했다. 쉭쉭거리는 목소리가 들을 때마다 귓속을 긁어내는 것 같았다.
“너 미쳤어 강영식? 지금 뭐 하는 시간인줄 알고….”
영식이는 선생을 밀치고 윤남이 앞으로 달려갔다. 책상을 걷어차고 넘어진 윤남이에게 담뱃갑을 집어 던졌다. 담뱃갑에서 파란 얼룩이 조금씩 묻은 담배가 튀어 나왔다.
윤남이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영식이가 때리는 대로 맞고 쓰러져 있었다. 윤남이의 입에서 계속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가까이 있던 아이들이 영식이를 말리기 위해 뛰어 나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영식이를 말릴 필요가 없었다. 윤남이를 계속 짓밟던 영식이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나는 영식이가 집어던진 담배를 챙겼다.
결국 수학시험이 다 끝나기 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식이와 윤남이가 폐렴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세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담임선생이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 이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비안으로 돌아오는지 물어보고는, 내 시험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갈 거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학교에서 가져온 담배를 꺼내 살펴보았다. 88라이트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몇 개가 보통 담배랑 다르게 파란 얼룩이 묻어 있었지만, 그것 빼고는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거름 더미위에 던져버렸다.
다음 날 아빠는 큰어머니의 출상을 마치고 비안으로 돌아왔다. 큰아버지는 서울에서 짐을 정리하고 내일 내려올 예정이라고 했다.
윤남이를 포함해 총 7명이 폐렴에 걸렸기 때문에 학교는 잠재적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아직 시험이 남았지만,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서울에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큰아버지가 돌아오는 대로 올라가기로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은 서울에 간다는 말에 기뻐했지만,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동생은 마지막으로 학교 친구인 윤희에게 인사를 하러 가겠다고 했다. 그 뒤로 학교에 나오지 않아 계속 못 봤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윤남이가 떠올라 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 윤희가 밖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희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듯 부끄러워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쑥스러워하며 인사를 받았다. 윤희는 윤남이의 병문안을 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윤남이는 좀 어때?”
내 말에 윤희는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곧 대답했다.
“오빠는 괜찮은 것 같아요. 최근에 계속 밤마다 옷도 안 입고 밖에 돌아 다녀서, 감기에 심하게 걸린 것 같아요.”
동생과 나는 윤희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 읍내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윤남이가 입원한 병원은 생각보다 작은 곳이었다. 윤남이를 돌봐주고 있던 할머니가 우리를 보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윤남이는 감기 옮는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우리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그런 미소였다.
“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이제 걱정 하지 마.”
윤남이가 윤희를 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윤남이의 그 말이 자기 자신이 아닌, 윤희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앰뷸런스 왔어? 왔으면 김 간호사 환자 좀 빨리 밖으로 보내 줘.”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침대에 실려 밖으로 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창백한 표정을 한 영식이었다.
영식이는 마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괴로워하며 실려 나갔다.
다시 윤남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 얼굴에 띤 희미한 희열을 볼 수 있었다.
“괜찮아…. 이제 정말로 다 끝났으니까.”
윤남이가 윤희를 안은 채 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집에 돌아온 뒤 이사 준비로 한참 씨름을 한 우리는 모두 이른 저녁에 잠들었다. 새벽에 잠이 깬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봉구가 있었다. 봉구는 잘 펴지지 않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닭장 앞에서 뛰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닭장의 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장식이가 닭장에서 목을 빼 마구 쪼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닭장에 걸려 있던 걸쇠가 풀리고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리자 그때까지 기세 좋게 공격하던 장식이가 파드득 뛰어 안으로 도망갔다. 닭장 쪽으로 한 걸음 내딛자 무언가 재빠르게 달려와 닭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족제비였다.
족제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닭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나왔다. 자기 몸보다 큰 그것은 장식이였다. 족제비는 닭장 앞에 있는 봉구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재빠르게 집을 빠져 나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봉구는 다 끝났다는 듯 닭장을 한 번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허망한 눈빛이었다. 봉구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옆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밟고 닭장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 우렁찬 목소리로 울었다.
다음 날 아침 봉구는 닭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점심이 되기 전 큰아버지가 돌아왔다. 서울에 올라갔을 때보다 많이 야위었지만, 그래도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큰아버지는 우리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빠는 순돌이와 닭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큰아버지는 거름 무더기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큰아버지가 발로 찬 곳의 풀이 샛노랗게 죽어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아빠 차를 타자 큰어머니의 냄새가 어렴풋하게 시트에서 배어나왔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기 전 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빠에게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장례식장에 뛰어 들어갔다.
온통 울음바다인 장례식장 안에서 나는 영식이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건강했었는데 말이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영식이의 사인은 폐렴이었다.
서울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바로 미국으로 갔다. 영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나에 비해, 동생은 금방 친구를 사귀고 미국에 적응했다.
비안을 떠난 이후로도 나는 간간히 윤남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윤희가 나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윤희는 자기 주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쭉 적어서 보냈다. 윤남이가 폐렴에서 회복되었다는 것, 나머지 여섯 명 두 명이 죽고 나머지는 계속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것, 담임선생의 집에 화재가 나서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도 윤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집단으로 폐렴에 걸린 것에 대해서는 경찰의 조사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윤희는 그런 자잘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되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기에도 편지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할지, 국내로 돌아갈지 고민하던 나는 결국 국내로 돌아가 대학 진학을 했다. 꼭 윤희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윤희는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법고시 통과를 옆에서 기다려준 윤희와 결혼을 했다.
엄마는 윤희가 비안 출신인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윤남이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경찰이 되었다. 내가 윤희와 결혼할 때쯤 윤남이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형사가 되었다. 당시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살인범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라목손을 이용해 자신의 남편과 시어머니, 딸을 폐렴으로 위장해 죽인 살인범은 무덤 주위의 농약 성분까지 철저히 조사한 윤남이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농약 종류에 대해 해박하다는 윤남이의 인터뷰를 보고 나는 문득 그때의 사건을 떠올렸다. 나는 윤남이에게 정말 그것 때문에 잘 아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후로도 그에 관한 것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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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즉흥적으로 생각이 나서 끄적인건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었네요 ㅠ_-
덧2) 담부터는 짧게짧게 가야겠습니다(...) 그래도 끝내니까 기분은 좋네요.
덧3) 어떤 의미에서 주인공은 승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