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챔피언 카스파로스가 컴퓨터에게 패한 후 자신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한 내용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생각지도 못한 괴상한 수를 두었을때 카스파로스는 그 수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의심해서 과도하게 수비적으로 조심스럽게 대응했고 그게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를 했죠. 결과적으로 그 엉뚱한 컴퓨터의 수들은 말그대로 뻘수였던 걸로 드러났죠.
어제 이세돌도 대국후 비슷한 얘기를 하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이상한 수를 알파고가 두었을때 거기에 숨겨진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죠. 하지만 컴퓨터가 가끔 이상한 수를 두었을때 이세돌은 생각하지 못한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지 과도하게 고민하는 대신 잠깐 생각해서 뻘수라고 간주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그 뻘수를 응징하고 공세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컴퓨터가 이상한 수를 두었다는 건 사실 주어진 알고리즘에서 최적의 해를 찾지 못해서 계산후 엉뚱한 해를 내놓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늘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주의 비밀을 묻는 질문에 42라고 대답한 것과 같은 뻘짓은 컴퓨터에서 항상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컴퓨터가 내놓는 수가 때로는 아무 의미없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술을 과대평가해서 과잉으로 고민하면 평정을 잃고 실수를 저지르게 되죠. 이미 어떤 사람들은 알파고가 저지른 실수를 놓고 더 심오한 뜻이 있는게 아니냐고 과대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건 중요하고, 인공지능의 결과를 근거없이 맹신하면 안됩니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실수가능성을 전적으로 인지하고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