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환경부에 따르면 그동안 완성차나 수입차 업체가 차량을 신규 인증받으려면 배출가스 저감 기술을 설명한 자료와 업체가 실시한 배출가스 측정 데이터를 교통환경연구소에 제출하면 됐다. 간혹 서류가 미흡하거나 시험 데이터가 합격 기준에 너무 근접한 경우 교통환경연구소에서 배출가스 인증시험(NEDC)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NEDC는 비현실적인 시험 조건 때문에 ‘하나 마나 한 테스트’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NEDC는 러닝머신 역할을 하는 차대동력계에 차를 올려 놓고 테스트한다. 시속 0~120㎞까지 속도를 내는데, 항상 일정한 주행 패턴으로 달린다. 에어컨, 히터 등 냉난방 장치도 모두 끈다. 심지어 라디오도 틀지 않는다. 주행 외에는 차량에 부하를 주는 요인을 모두 제거한 채 시험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급가속과 급제동, 시속 120㎞가 넘는 고속 주행이 수시로 반복되는 실도로에서의 주행 상황은 테스트에 반영되질 못했다. 질소산화물이나 미세먼지를 최대한 적게 배출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배출가스를 측정하는 ‘모순된’ 제도였던 셈이다.
이처럼 온도나 주행 패턴 등 시험 조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처럼 업체가 인증기관과 소비자를 속이는 사건도 발생했다. 시험실 테스트에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고, 실도로에서는 연비를 높이기 위해 꺼지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것이다. 지난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인증을 통과한 경유차 20종으로 실도로 배출가스 측정을 한 결과 질소산화물 배출량 평균치가 인증기준(0.08g/㎞)의 7배에 이르는 0.56g/㎞까지 치솟았다. 닛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시카이는 무려 20.8배까지 나와 인증이 취소되기도 했다.
실도로 측정은 차량 뒷부분에 이동식배출가스측정장치(PEMS)를 장착해 실제 도로를 주행하면서 배출가스를 측정한다. 올해 9월 이후 인증을 받아야 할 차량은 이 테스트를 모두 거쳐야 한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배출가스 수치를 속이는 사례는 꽤 사라질 것으로 정부 측은 기대하고 있다.
실도로 테스트는 차량 구입자가 운전하는 것과 유사한 조건에서 진행된다. 5인승의 경우 실제 4~5명을 태운 상태(차량 총중량의 90%)에서 도로를 달린다. 더울 때는 에어컨을 켜고, 라디오나 블랙박스 등 실제 운전과 동일한 상태를 조성해 달린다. 도로 조건도 도심·교외·고속도로 3곳을 3분의 1씩 달리는데, 총주행거리는 75~90㎞다.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45㎞까지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총주행시간은 90~120분이다. 주행시간이 NEDC보다 최대 6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한층 강화된 제도인 만큼 배출가스 허용 기준은 질소산화물의 경우 현행 실내 시험 기준의 2.1배인 0.168g/㎞로 완화했다. 그러나 시험 조건이 종전보다 까다로워져 지난해 실도로 테스트 차량 배출치의 70% 정도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 기준은 2020년부터는 다시 1.2배로 강화돼 0.12g/㎞까지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낮춰야 한다.
■ 실내 시험실 측정도 강화되지만
여기에 ‘국제표준 소형차 배출가스 시험방법(WLTP)’이 추가된다. NEDC 테스트의 주행 조건을 강화한 것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인도의 실도로 주행 데이터를 참고해 실제 주행에 보다 가깝게 만들었다. 시험실에서 진행되지만 차량에 좀 더 부하가 걸리도록 최고속도를 시속 130㎞로 높이고 급가속, 급제동 등 실제 주행 조건이 추가됐다.
새로운 배출가스 규제 장치들은 질소산화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정답은 ‘장담할 수 없다’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폭스바겐처럼 불법 소프트웨어나 장치 장착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전문가들이 적잖다. 테스트 방법이나 기준 강화와 함께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환경 전문가는 “한국이나 유럽은 기준을 강화하면 유해 배출가스가 줄어들 것이라 믿었지만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등을 겪으면서 규제 강화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됐다”면서 “미국처럼 징벌을 강화하고 피해 소비자 배상금도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특정 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되면 엄청난 과징금을 물린다. 1998년 GM과 포드 등 7개 대형차 업체들이 고속에서 연비를 좋게 하려고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하는 방식을 적용하다가 환경 당국에 적발돼 1조원가량의 범칙금을 낸 적이 있다.
한국 인증 당국의 자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수입차 배출가스 소비자 소송을 진행 중인 한 변호사는 “국내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 당국의 협조 없이는 어떤 방식의 조작이 있었는지 검증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배출가스나 연비 테스트를 속이는 장치나 소프트웨어를 색출하는 기술과 함께 자동차 업체들의 허를 찌르는 검증 방식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