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성 있는 에너지”운운하는 원자력 학계 교수들은 국민들에 대한 협박을 멈추라!
지난 겨울 촛불시민혁명은 켜켜이 쌓여있던 우리사회 모순의 집합체였던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켰다. 연인원 1600만명의 국민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촛불시민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사회가 절단나고 말 것이라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두운 미래만이 있을 것이라는 절박함에서, 쌓여 있는 모순들을 끝장내고 박근혜 정권의 퇴진과 대통령을 포함한 정권과 관련자 전체에 대한 엄중한 처벌, 그리고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철저한 인적쇄신과 제도개혁을 이루자고 했다. 노동자․민중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기존 질서를 지키고 무혈혁명으로 적폐를 청산하자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정을 파탄시켰던 박근혜 정권과 그에 동조했던 정치인과 관료집단 대부분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으며, 자숙하기는커녕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뿐인가? 박근혜 정권의 공범자들이 포함된 촛불집회의 방관자들은 정관계, 경제계, 언론계, 학계 등에 여전히 건재하고 호시탐탐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여 촛불시민혁명을 없던 일로 되돌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에 대한 반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고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의 요구는 탈핵정책을 추진하라는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뜻을 받아 공약화해서 당선되었다. 그런데 지난 6월과 7월 원자력 학계라 부를 수 있는 400여명이 넘는 교수들이 서명을 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문가인데 국민들과 현 정부는 무지하고, 원자력 발전을 줄여나가는 조치는 합리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한다. 누가 무지하고 무엇이 비합리적인가? 민주적 절차라는 게 무엇인가?
기술의 선택은 합리적이기보다는 경로의존적이며, 많은 경우 공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관련자들 간의 담합으로 결정된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원자력 전문가의 대다수가 핵발전 진흥론자들이다. 안전을 위협받는 당사자인 시민들이 핵발전과 관련된 기술적이고 제도적인 요소 전반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합법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이 더딜 수도 있다. 돈을 벌어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과제와 사업들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안전이며, 대학과 출연연과 같은 공공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은 이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핵발전과 관련된 문제는 원자력 산업계와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위험한 사안이다. 당장의 안전을 위협받는 시민들이 핵발전을 다루는 거버넌스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무지인가?
제대로 된 국가라면 심각도가 높은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진흥 정책과 규제 정책을 동시에 적용한다. 당연히 핵발전을 하는 모든 국가는 진흥과 규제를 동시에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이하 원안위)는 규제위원회가 아니며, 위원의 구성과 운영도 규제를 중심에 놓고 있지 않다. 원안위는 그 설립취지의 진정성, 조직구성원들의 자격, 국민들과의 소통 및 정보공개에서의 불투명함, 정부나 이해단체로부터의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 원안위는 정부의 의도와 한국수력원자력 (이하 한수원)의 요구를 관철시키느라 바쁘기만 하며, 표결은 거의 언제나 ‘7 대 2’로 끝난다. 과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 규제 기관은 어디에 있는가? 원안위가 핵발전소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이들은 모두 원자력 진흥을 위해 일하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우리는 2016년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자력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자가 사용 후 핵연료는 폐기물이 아니라서 고준위 핵폐기물이 아니고 사용 후 핵 연료봉을 30여년을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저장시설이 아니라고 하는 어이없는 답변을 들었다. 지질자원연구원이 낸 잘못된 기술자문보고서가 한수원이 신고리 5, 6호기를 건설하는 근거 자료가 되었다.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등 활성단층에 대한 보고서는 배포제한을 걸어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원자력 안전 관련 사고에서 원자력연구원은 변명으로 일관했을 뿐 어떤 책임 있는 자세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자력연구원이 36개에 달하는 위법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원안위는 솜방망이 행정처분을 내렸고, 원자력연구원은 이 최소한의 행정처분마저도 불복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해서 행정심판을 청구하겠다고 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의 방사능 안전을 감시하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안전 검사를 나가기 전에 원자력연구원 측에 미리 날짜와 검사 항목을 알려주는 건 ‘규제’와 ‘진흥’이 담합한 것 아닌가? 국가 차원의 규제 기구와 국책연구기관조차 핵발전 진흥론자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시민들을 위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원자력 규제에 앞장 설 전문가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합리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절차인가?
에너지기본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당연직은 관계 부처 차관급, 그리고 산자부 장관이 위촉하는 25인 이내의 에너지위원회에서 수립하게 되어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산자부 장관이 수립하도록 되어 있고 당연직은 관계부처 3급 공무원, 그리고 산자부 장관이 위촉하는 전력정책심의회의에서 확정한다. 원자력진흥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부처 장관과 대통령이 지정하는 인사로 구성되고,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미래부 장관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은 산자부 장관이 수립하여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2016년 7월 25일 황교안 전 총리가 주재한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내린 어이없고 현실성 없는 결정이 원전과 별도의 지역에 부지를 선정해서 사용 후 핵연료 중간저장․영구처분 시설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핵발전과 관련된 이익집단과 결탁한 부처 관료들, 상층부 과학 엘리트와 정책 전문가들이 핵마피아라고 불리우는 카르텔을 형성해서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산자부와 미래부의 관료들이 좌지우지해서 관변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 낸 계획들이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에너지기본계획이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이며,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민주적이고 정상적인 국가 의사결정체계인가?
우리 사회는 중요한 역사적 기로에 서있다. 촛불시민혁명은 ‘국가’와 ‘정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 왔던 온갖 잘못된 행위들을 문제 삼고, 그러한 것들을 국민의 이성과 양심, 진실에 근거해서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고 했다. 촛불시민들이 우리 과학기술자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연구하고 있는가?’ 탈핵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민주적 통제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정말 교수로서의 학자적인 양심이 있다면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면, ‘국가 경쟁력과 국민생활’을 운운하는 저열한 행동을 멈추고 원자력 산업과 학계의 적폐를 일소하고 거버넌스와 의사결정체계를 민주화하며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017년 7월 1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