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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와 연 끊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게시물ID : wedlock_96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홍홍홍33
추천 : 10
조회수 : 3795회
댓글수 : 43개
등록시간 : 2017/08/08 08: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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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글을 쓰며 다시 정리를 하다보니 존댓말이 어색하게 쓰여져 이렇게 반말 독백으로 글을 쓰게 된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 
33년 전에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는 아빠와 결혼한 엄마.

결혼 전까지 농사일만 하다가 결혼 후 서울로 올라와 단칸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

중학교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서울에 올라와 가구 회사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온 아빠.

두 분이 만나 저를 낳았고, 동생이 태어난 뒤 사업을 시작한 아빠.

초반에 잘된 사업으로 돈을 모았고 드디어 내 방이 생긴 우리집.

IMF 이후 몇 번이나 부도난 우리집.
   
집 경매에 빠지고 월세 지하방에서 시작한 나의 사춘기.

그리고 10년간 우울증으로 아빠의 사업이 부도 날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첫 직장생활 (봉제공장)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고, 처음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직장 사람들과 나이트클럽에 늦게까지 술마시고 새벽에 집에오는 엄마.

아빠는 자식들 대학 보내겠다고 타지에서 일을 했지만 월급을 받지못해 항상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끝났던 우리집.

고3 여름방학 알게된 엄마의 외도.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던 엄마의 바람. 
그 충격에 망친 수능 이후 12월 31일 엄마에게 바람피지 말라고 대들었던 그 때. 

머리 끄댕이를 잡고 때리며 술마시고 욕을 했던 엄마. 

동생과 5천원을 가지고 밤 12시에 길을 헤매이며 공중전화로 타지에서 일하는 아빠를 불렀고, 3시간 넘게 길가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동생과 sbs 가요대전을 보며 울며 먹었던 떡볶이.

그 후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 없이 평소처럼 지냈지만, 그 후 몇번이나 시도했던 자살 시도. 

하지만 자살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그래도 불쌍한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 방학 때 벌었던 나의 알바비는 빚을 갚는데 쓰였고, 그 때마다 고맙다고 한 엄마의 칭찬이 행복했다.

그리고 20살 때 이 사실마져 다 이해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살고 싶은 마음이 처음 들었다.

지옥이었던 내 삶이 이제 처음으로 행복했다.

그 뒤 첫 직장생활은 사수로 인해 지옥이 되었고 10개월만에 목디스크와 교통사고로 퇴사.

통증으로 팔을 못쓰고 염증 수치는 올라가고 발은 사고로 움직이지 못했던 그 때.

엄마의 2번째 외도.

아빠한테 차마 말하지 못하고 핸드폰 번호 추적하고 그 남자의 사업장까지 찾아갔다.

그 남자는 보지 못했고, 추후 기러기 아빠인 그 남자의 집안까지 다 망쳐버리고 싶었으나 엄마까지 힘들어질까봐 그냥 포기하고 무작정 친구가 있는 이천으로 갔다.

이천 모텔에서 혼자 죽으려고 했으나 못하고 친구를 만나고 난 뒤 집으로 왔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대해주고 매일 디스크에 좋은 토마토 주스도 만들어주고 참 그게 또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 준비를 했다.

결혼식 두 달 전 사고로 돌아가신 아빠.
드디어 사업이 잘된다고 야간까지 일하고 행복해하셨으나 일하는 도중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

아빠가 돌아가시고 사기치려는 사람, 보험금 노리는 사람들.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겠다고 독한 마음으로 사업정리, 한정승인, 보험처리까지 진행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와 동생 대신 하루 5시간 자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공서, 변호사를 만나며 힘들게 결혼 준비까지..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형사들도 도와주지 않았고 차일피일 미루고, 민원에..

엄마는 그 사이 살던 월세방이 무섭다며, 덜컥 보험금액만 믿고 전세집을 계약했다.

한 달도 안남은 그 기간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겨우 전세계약 하루 전에야 돈을 만들었다.

그리고나서 아빠 공장에서 키우던 진도개를 데리고 왔다.

입양도 무산되어 빌라에서 키우다가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싸우다가 4개월 만에 타지역으로 작은 빌라를 매매했다.

빌라 매매도 내가 알아보고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동생은 직장 다니기 위해 할부로 차를 샀고 아침마다 엄마와 같은 동네 엄마 직장 동료까지 출근을 시켜드렸다.

직장까지 20분이면 가는 그 거리를 1시간을 들여 동생은 엄마 출퇴근을 시켜드렸다.

동생이 평일에 쉬는 직업임에도 쉬는 날에도 1년동안 엄마를 태워드렸다.

동생과 얘기를 하다가 쉬는 날에도 늦게까지 쉬고 싶다는 말에 엄마에게 동생 쉬는 날에만 택시나 버스를 타는게 어떠냐, 사실 동생이 이렇게 엄마랑 동료분 태워다 드리는게 쉬운일 아니고 꼭 데려다 드리라는 법은 아니지 않냐고 말씀드렸다.

감정적인 엄마는 지난 일요일 그 얘기를 듣고, 자식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며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해서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 하루 쉬는 날 편히 늦잠자게 해달라는 얘기가 자식이 배신을 때린거와 다름없다고 느끼신것 같다.

아빠 생전엔 아빠가 중재도 해주시고,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의견도 수용하고 해주셨는데.. 

그 상황이 엄마가 바람피고 나에게 화냈을 때와 오버랩이 되어 처음으로 엄마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엄마가 소리지르고 욕한것 예전과 다름이 없다고, 엄마는 자식에게 상처받았다고 하지만 나는 죽을 생각까지 할 정도로 엄마한테 상처 더 받았었다고..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어제 그 글을 보내며 마지막 심정이었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좀 내 기분이 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도 sns 친구 관리를 하는 엄마를 보며 너무 충격적이다. 아빠 생전에도 sns 하느라 본인 생일 파티도 망쳐버려 아빠와 내가 그렇게 화를 냈는데.. 

제발 내가 영화도 보여주고 같이 나가자고 할때는 거부하더니, 이제는 sns에 올려야 된다고 사진 찍으러 나간다.

그래도 주객전도는 됐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엄마 모습에 좋았는데..
  
엄마의 자기 중심적이고 sns 중독, 그리고 자기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모습에 지금 연을 끊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렇다고 연을 끊기에는 돌아가신 아빠와 동생이 마음에 걸리고,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받은 상처는 아직도 안지워져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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