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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3월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 당시의 일본..
게시물ID : sports_965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영심검
추천 : 18
조회수 : 1380회
댓글수 : 45개
등록시간 : 2015/12/30 14: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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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일본은 야구의 나라가 아녔다.
모든 스포츠 일간지는 여자 피겨스케이팅과 마오의 사진으로 도배되고 ..
술집 음식점에선 때 맞춰 방영되는 경기실황에 눈이 쏠려 있었다.

2006년 3월 .. 그 당시 일본의 마음은 먼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 주니어 피겨 선수권 대회에 빠져 있었다.

 
난 그 당시 업무관계로 동경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
일도 지지부진하고 심신도 피곤한 상태였기에 대충 일 마무리 짓고
빨리 서울로 돌아와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김연아란 애를 첨 본 건 일본 TV에서였다. 

여자 피겨 쇼트  프로그램이 끝난 후 예상과는 다르게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한국 여자 아이가 1위 자리에 오르자, TV방송국과 신문은 난리가 났다.

조간 신문은 '마오짱 쇼트에서는 2위'란 헤드라인으로 1면 톱기사를 뽑고 ..
방송국들은 긴급편성으로 그 사태를 분석하고 ..
뭔 호들갑들인가 생각 들 정도로 일본인들은 결과 하나 하나에 숨 죽이고 있었다.

'한국에도 마오랑 견줄 수 있는 천재 여싱이 있었다'고 거품 물며 보여준
전날 쇼트 프로그램 경기장면을 통해 본 김연아의 '록산 탱고'는 먹던 밥 숟가락이
멈춰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때부터 지켜보던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이
사라진 계기도 일본 때문이었다.

짧고 굵은 몸매도 그렇거니와 3회전 반 점프를 성공시키고 우주정복이라도 한 표정으로
활주하던 이토 미도리 같은 선수의 오바질도 과히 유쾌하진 않았지만 ..
가장 큰 문제는 기술(특히 점프) 위주의 운영방식에 가려져
구석에 몰린 여성의 아름다움이 .. 사라져가는 피겨판에 점점 매력을 잃고 있었다.

 

다음 해 세계 선수권 대회에 트리플 콤비네이션을 장착하고
더더욱 진보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록산 탱고였지만 ..
그 당시 열 다섯 어린 나이에 음악에 맞춰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하며
자신감 넘치는 점프를 뛸 수 있음은 .. 
게다가 우리 나라 애가 .. 예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본에 갈 때마다 편의를 제공해 주던 파트너 야마구치는 전엔 몰랐지만
열렬한 피겨팬이었다.

같이 TV를 보며 내게 자기 나라에 저런 선수가 있었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냐며 핀잔을 줄 정도로 ..
그는 아사다 마오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끈을 놓지지 않으면서도
그 끈의 한쪽 끄트머리를 은근슬쩍 자기과시의 고리에 걸어 놓으려 한다는 데에
그 독특함이 있다.   야마구치도 김연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마오의 프리 역전은 당연한 사실처럼 얘기하고 ..
또 방송에 나온 패널들도 그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그놈의 트리풀 악셀이 뭔지 ...
오죽하면 어린 선수애가 꼭 4회전 뛰고 싶다고 떠들까 ....

멋있게 경기에 임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회전 점프를 몇 번 뛰어 성공하는 문제가
일본 피겨 스케이트계에선 큰 화두로 자리 잡고 있었다.

명색이 해설자라는 사람이 김상은 아직 트악을 못 뛰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수준이라 하고 .. 한국인 특유의 인사치례로 하는
김연아 엄마의 마오에 대한 칭찬을 교묘히 틀어
'오로지 마오를 목표로 점프 훈련에 매진'한 김연아로 표현한 방송멘트 ...
그리고 마오 자신도 아주 수월한 표정으로 프리에서 트악만 성공하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묘한 오만함 ...

쇼트 프로그램을 본 후 느낀 김연아의 우월함에 대한 확신과 묘한 오기가 작동된 나는
야마구치에게 술 마시며 프리 경기를 같이 보자고 먼저 제의했다.

 



아 ..... 하늘색 짧은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빙판을 활주하는 어린 소녀는
이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가녀린 어깨선 .. 애절한 표정 ..
톡 건드리면 부서질 거 같은 하늘하늘한 몸짓 ..
게다가 일본인들은 옵션으로 장착한 걸로 알고 있던 스피디하고 안정된 점프 ....


아나운서도 해설자도 의외의 연기에 놀란 듯 .. 멘트에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올 한 해동안 가장 성장한 선수라는 칭찬과 함께 ...


비루타운 안 대형화면으로  김연아의 경기 모습을 보는 동안엔 ..
손님들은 웨이터를 불러 주문할 수도 없었고, 술잔을 부디치며 건배할 수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몇 명이 박수로 경탄감을 표현했지만 ..
난 그 경기 끝난 직후 들었던 짧고 나직한 한숨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점수가 나온 뒤에 보였던 야마구치의 표정은 ...
이젠 안 되겠네 .. 의 절망감이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맘에도 없던 맥주잔을 들이켰다.

난 그 당시에 .. 아사다 마오가 앞 경기 결과를 보고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장 한 가운데 스케이틀 지치며 나올 때 이미 승부는 끝났단 느낌을 받았고,
아마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고 본다.

유치원 학예회 차림의 아사다 마오는 그냥 귀여운 얼라였다.

손동작 발동작 그리고 표정 .. 모든 게 미취학 아동의 어설픔을 지니고 있었고 ..
본인과 일본 국민들이 자랑하던 트리풀 악셀은 2바퀴 반 모자란 궤적으로 끝나 버렸다.

 

점수가 나온 뒤,  아나운서는 비통한 목소리로 "동갑내기 두 천재소녀의 첫 대결은
마오의 패배로 끝났다"고 떠들고, "라이발이 있으면 서로에게 발전이 있을 거"란
해설자의 마지막 멘트는 쏟아지려는 울음에 가려 뒤틀리고 흔들렸다.

 

참 웃긴 일인게 .. 그날 오후까지 일본에서 김연아는 마오의 라이벌이 아녔다.

마오가 전부터 라이바루가 누구냐고 물으면 한국의 김연아라고 얘기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지 일본 언론과 빙상계는 김연아란 애한테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본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은
그 전년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도 사용했던 같은 것이었고,
그때도 상당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줬지만 ...

일본은 자기 손아귀 안에서 놀고 있던 천재소녀와
그 소녀가 갖고 있던 점프기술에 정신이 팔려 아름답고 견고한 스케이팅을 하는
옆 나라 여자아이에게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을 거다.


그랬으니 그런 어린 수준의 프로그램으로
우승을 당연시하는 오만한 실수를 저질렀겠지 ...
그런데 갑자기 하나 같이 똑같은 목소리로 이젠 라이바루란다.

 

하지만 .. 경기를 보면서 내 생각은 달랐다.

벌써 그 경기 상태로만 본 둘 사이엔 상당한 레벨 차이가 있었다.

20점 넘게 나온 경기결과 이상의 차이를 눈이 있고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암튼 .. 그 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 부단히도 두 여자 아이는 부대끼며 살고 있다.
서로의 실수를 딛고 올라가기도 하고 .. 한 아이는 강화된 규정으로 고생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둘 중의 하나가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되리라고 본다.

 

첫인상이 중요하긴 한가부다.

사람마다 생각도 다 다르겠지만 .. 난 그때나 지금이나 
두 소녀가 라이벌로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자기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상태에서 자라났지만
자기보다 훨씬 세련된 스케이팅을 하고 있는 진짜 천재를 쫓아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
힘겨운 전직 천재 .... 그래서 안스럽기도 하다.

 

 

며칠 있으면 또 일본에 가야된다.
그리고 갈 때마다 그 때 그 느낌에 스며들곤 한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채 ..
편히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싣고 비시시 웃음 짓던 그때의 행복한 그 느낌을 ......




출처 http://blog.daum.net/kneepjoolgi/8377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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