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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화가 이기심이면, 동물을 위한 길은 뭔가요?
게시물ID : animal_1185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파워레즈
추천 : 5
조회수 : 60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2/16 23:47:00
<거친 세줄요약>
1. '새끼 낳고 사는 자연스러운 삶'은 환상이다
2. 새끼를 낳는 것이 무조건 동물을 위한 길은 아니다
3. 인간이 개를 키우는 것이 학대라고 보긴 어렵다


인간의 입장은 일단 무시하고, 동물을 위한 것이 무엇일지 평소에 생각했던 내용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개를 키우는 중이라 개 위주로 적을게요.



중성화가 나은지 발정을 그대로 견디는 것이 나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가 새끼를 낳는 것, 더 나아가 인간 없이 자연에서 사는 것이 개를 위해 더 낫다는 주장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는 한 배에 평균 6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부모 2마리가 6마리를 낳으니 3배로 불어나는 셈이죠.
새끼들도 자라 또 새끼를 낳으면 9배, 다음 세대에는 27배, 81배, 243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그것도 딱 한 번씩 번식을 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발정 떄마다 번식을 한다고 치면 평생 낳는 새끼는 부모 한 마리당 30마리가 됩니다.
인간처럼 한 배에 1~2마리만 낳는다면 모두가 아이를 가지면서도 개체수가 유지될 수 있겠지만, 개는 그렇지가 않죠.

이렇게 증식을 하면 인간이 키울 수 있고 없고를 떠나, 머지않아 지구상에 개가 먹을 식량 자체가 바닥납니다. 
몇 세대만 지나도 소동물이며 곡식이 씨가 마르겠죠.
그걸 막으려면 대다수 개들이 잡아먹히든 굶어죽든 사라져야만 합니다. 
태어난 30마리 중 대를 이을 1마리 정도만 남고 나머지 약 29마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1마리가 종족번식의 본능을 해소하는 대신 29마리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러니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족입니다만, 다른 개들이야 어찌되든 자기 개만은 번식을 시켜줘야 진짜 가족처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개가 낳은 새끼들을 본능 해소의 부산물로 취급할 게 아닌 바에야) 그 새끼들도 마찬가지로 대우를 해 줘야 할 텐데,
그 새끼들, 새끼의 새끼들만 해도 머지않아 엄청난 수로 불어납니다. 
내 개와 그 자손들이 무한히 증식해도 모두 책임질 수 있어야 사랑이라는 건 지나치겠죠.)



사람들은 종종 '옛날 개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새끼 낳아 키우던 시절'을 이상향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이 가능했던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잡아먹힌 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세상은 개로 뒤덮였을 겁니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낙태뿐만 아니라 피임도 금지했습니다. 모든 정자는 신성하고, 태어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대에는 어차피 많은 아기들이 죽었으므로 인구 증가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는 점점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UspLVStPbk
이를 다룬 '모든 정자는 신성해(Every Sperm is Sacred)'라는 노래입니다.
모든 정자의 태어날 권리를 지키다 보니, 정작 태어난 수십 명의 아이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팔려가게 된 비극적인 상황을 코믹하게 그리죠.
개가 새끼를 낳을 권리를 옹호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중성화 수술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보고 중성화하라면 할 거냐' 라는 반론도 자주 등장하죠.
그러나 인간에게는 중성화 말고도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자위만으로 성욕을 해소할 수도 있고, 피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두 명의 아이만 낳을 수도 있죠. 하지만 개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제가 현재의 개처럼 자위도 피임도 불가능하고, 임신 한 번에 6명의 아이를 낳으며, 평생 폐경 없이 발정과 생리를 겪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중성화를 택할 것 같습니다. 
평생 성욕을 감당하는 것도 자신없을 뿐더러 딱 한번 실수라도 하면, 그 많은 아이들을 전부 키울 능력도 없고 차마 아이들이 잘못되는 것을 보기도 괴로울 테니까요.
(평생 폐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궁 입구의 여닫음이 나이를 먹으면서 불완전해지면서 감염이 쉬워지고, 이것이 그 유명한(!) 자궁축농증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 가볍거나 기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중성화 없이도 임신과 질병을 피하고 성욕을 해소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수컷 전용이지만 강아지를 위한 섹스돌도 판매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개를 위한 콘돔이라든지 자궁축농증 예방약이 생긴다면 아마 저는 제 개를 위해 그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면 중성화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성화가 나은지 발정을 견디는 것이 나은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끼를 낳는'것이 제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더 나아가, 개가 인간과 함꼐 사는 것 자체가 학대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판단하기 전에 개라는 종의 특수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집에서 늑대를 키운다면 아무리 잘 대해 준다 해도 야생만 못할 것이고, 그러면 사육 자체가 학대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는 이미 인간과 함께 살도록 진화한 종입니다.

콩은 뿌리혹박테리아와 함께 삽니다. 콩은 고정된 질소를 얻어야 살 수 있고, 박테리아는 콩의 뿌리에 정착해 양분을 얻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말미잘과 집게는 함께 삽니다. 말미잘은 기동성을 얻고, 집게는 천적을 물리치는 무기를 얻지요.
개와 인간은 오히려 이런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개의 생활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위의 사례들과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개미가 진드기를 데려다 키우는 것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드물다고 해서 비자연적이고 기형적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 년 전 캐니드과의 포유류가 사냥꾼들이 남긴 찌꺼기를 노리고 인간에게 접근했고, 인간은 이 짐승을 길들이려 했습니다.
이걸 거부한 쪽은 회색늑대가 되었고, 인간 곁에 남은 쪽이 진화해서 된 것이 지금이 개입니다. 
개라는 종의 탄생부터가 인간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길러지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는 먹이를 잡아먹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을 돕고 먹이를 얻어먹도록 진화했으니까요. 
진화 과정을 통해서 사람에게 키워지기를 선택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옛날 인류 선조들이 한 행위가 캐니드과 포유류의 자연스러운 삶을 침해한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개는 근본적으로 사람과 함께하는 종이라는 겁니다.

현재 야생에서 혼자 사는 개들을 당장 전부 잡아들여서 사람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키우는 것 자체가 학대라는 주장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길고 두서없는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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