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하는 주요 전역 위성 사진 입니다.
A 는 동네북단체 관광에 필수 코스인 대마도입니다.
B 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멀티인 이키섬이지요,
C 는 원피스해적들의 본거지로 알려진 다카시마
D 는 규슈에서 제일 중요한 지역인 하카타입니다만 이 중에서 다카시마는 이번 여행 코스(....)에서 제외되었습니다.
5월 3일 합포 그러니까 지금의 마산에서 기세 좋게 출발한 이 들은 거제도에 도착합니다, 해로상 거제도에서 대마도는 지척이었고 작전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잘 풀려나갈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강남군과의 연락 두절입니다.
원 계획 대로라면 6월 15일에 이키섬에서 강남군과 모여서 하카타로 들어가는게 되어야 하는데 강남군 총사령관 아라한(阿剌罕)이 출발 직전에 병으로 쓰러졌고 이에 따라 사령관을 교체하는 내부 투쟁 아니 작업이 벌어진데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2차 일본 원정의 전략을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대로라면 합포에서 출발한 동로군과 중국에서 출발한 강남군이 만나는 접선 지점으로 지리적 요충지인 이키섬을 골랐으나 원나라 조정에서는 표류하다 잡혀온 일본 선원에게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군선이 대규모로 정박 하기 좋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히라도를 접선 지점으로 변경한것입니다.
그러나 강남군과 동로군간의 연락은 여전히 불통이었기에 동로군이 이러한 사정을 알리는 전무하였고 다시 연락이 닿은것은 6월 말이었습니다.
아무튼 보름 가량을 연락을 기다리며 거제도에서 체류하던 동로군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홀로 출발을 합니다.
5월 21일 동로군은 대마도를 가볍게 넘습니다.
대마도 자체가 음 뭐랄까, 가마쿠라 막부를 비릇하여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방어선에 포함시켜야 할 까닭을 느끼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1차 원정 당시의 피해 복구가 다 이루어지지 못했다던가, 결사 항전의 이유를 찾지 못한 사유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막부의 군대가 아닌 영주의 가신들로만 이루어진 방어병력을 유지했기에 상대적으로 저항이 약할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마도를 점령하는 와중에 낭장 강언과 강사자가 전사하는 등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을 생각해볼수 있는 희생이 존재했습니다만 막부를 비릇한 일본 조정에 있어 대마도라는 것은 영토이되 변경의 크게 쓸모 없는 일개 섬에 불과한 것이었지요,
이후 동로군은 이키섬으로 향하는데 이 와중에 풍랑으로 수군 130여명과 사공 36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뭔가 조짐이 않좋아 지기 시작합니다.
이키섬을 공략한것은 21일 혹은 그 이후인 26일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키섬에서는 쇼니 가게스케의 둘째 아들 쇼니 스케도키가 후나카쿠 성을 보강하고 물자와 병력을 끌어모아 여몽연합군의 재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으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었습니다.
의지 만으로는 병력의 숫자와 질적 차이를 극복할수 없었던 것이지요,
본디 막부의 전략안을 본다면 대마도와 이키섬을 버려두고 본토 결전을 대비하자는 것이었으나 쇼니 가게스케는 지리적 요충지인 이키섬에서 최대한 출혈을 강요할 생각으로 19살난 둘째 아들을 보낸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반 효과는 없었습니다.
이키섬에는 지금도 이 날 전사한 일본군의 의기를 기리고 쇼니 스케도키를 모시는 사당과 기념비, 동상 그리고 무쿠리 고쿠리라는 나무 인형 특산품이 있습니다, 무쿠리 고쿠리라는 것은 바로 이 당시 1차 2차 원정의 참혹함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우리네가 우는 아이를 달랠때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하지만 이 들은 무쿠리 고쿠리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키섬을 점령한후 10일간 체류했다는 동로군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수 없습니다.
<무쿠리 고쿠리 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