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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19] 어머니
게시물ID : panic_958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노동자
추천 : 16
조회수 : 430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10/22 15:48:05
 
 
*보는 분에 따라서는 굉장히 불쾌하고 소름돋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쓰면서 그랬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성향을 가진 인물은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사실 굉장히 불쾌했지만 다 쓰고 나서는 닭도리탕이 먹고 싶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의식의 흐름입니까?
아, 그리고 미성년자는 이 글을 보지 않기를, 강하게 권유합니다.
 
 
 
 
 
 
 
 
미란은 아들의 집 앞에 서 있다. 잠시 초초한 눈길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초인종을 누르기 주저하고, 또 눈을 굴리고를
반복한다. 그녀는 잠시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쥔 채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 ...
 
초인종 너머에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왜? 왜 아무도 없는거지? 이제는 초조한 눈이 불안한 눈으로 바뀐다.
붕붕 거리는 바람소리가 어두운 거리에 을씨년스럽게 울려퍼지자, 더욱 불안해지는 듯 하다. 술에 취한 남자가 터벅터벅
언덕을 올라와 그녀의 곁을 지나쳤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추웠다. 어떤 집에서 난방을 트는지 우옹- 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닫는 소리, 왁자지껄한 소리, 어딘가에서는 싸우는지 그릇깨지는 소리.
 
그 모든것들이 메아리쳐 귓전을 때리고 또 지나갈 때 쯤에 그녀는 문에서 돌아섰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봉지가 바스락 소리를 내었다.
 
 
"...여긴 왜 왔어?"
 
 
"현식아."
 
 
미란은 퇴근해서 바로 들어오는지, 거뭇투성이가 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 역시 미란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긴 왜 왔냐고!"
 
 
온 골목이 쩌렁쩌렁 할 정도로, 아들 현식은 소리쳤다. 미란이 반사적으로 달려가 현식의 옷자락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검은 봉지는 놓쳤다. 거기서는 음료수와 귤 몇개, 그리고 사과 몇개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발, 여기서 그러지 말고. 응? 들어가서 이야기 하면 안돼?"
 
 
"여기가 너네집이야?! 누가 누구보고 들어가라 마라야!"
 
 
"제발, 동네사람 다 들어. 응? 시끄럽잖아."
 
 
하! 현식은 기가막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무릎꿇은 채 자신에게 애원하듯 매달린 미란을 내려다보며,
 
 
"부끄러워? 지금 이따위로 찾아온건 안 부끄럽고 동네 시끄러워져서 신상털리는건 부끄럽냐?"
 
 
"제발, 부탁이니까. 응? 한마디만 하고 갈게."
 
 
"아오. 이 씨팔년이..."
 
 
현식은 한숨을 쉬었다. 거칠게 미란의 손을 떨쳐낸 현식이 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미란이 들어갔다.
개 짖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
 
 
 
 
 
 
 
 
 
담배연기가 자욱한 방 안에 커피 두 잔과 접시에 담긴 과일을 가운데 두고, 현식과 미란은 말 없이 앉아있었다.
현식은 담배를 든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괴고 미란을 노려보았다. 담뱃재가 현식의 허벅지로 떨어지자, 미란이
뭔가 할 거리를 찾은 사람처럼 분주히 재떨이를 현식의 앞에 밀어놨다.
 
 
"담배... 많이 피우면 안 좋은데... 요샌... 팔리아멘트... 안피우니?"
 
 
"여긴 왜 왔어?"
 
 
미란의 다정한 '듯' 한 말에도, 현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왜 왔냐는 질문을 받은 미란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입을 다물고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겨울인데... 춥진 않은지..."
 
 
"누가 엄마야!"
 
 
현식은 재떨이를 들어 미란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재떨이는 미란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 tv가 올려져 있는 수납장으로 향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납장의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고 주변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미란이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떠는 채 웅크렸다.
 
 
"현식아! 제발! 그렇게 하지마! 무서워! 응? 제발...!"
 
 
그러나 현식은 멈추지 않았다. 부들부들 떠는 미란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과 공포로 얼룩진
미란의 얼굴을 봤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잡은 채 거칠게 흔들었다.
 
 
"말 해! 여긴 왜 왔어! 니가 무슨 경우가 있어서 여길 왔냐고!"
 
 
"아악! 아파! 살려줘!"
 
 
"살려? 오냐. 내가 그렇게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에는 눈 하나 깜짝 안하더니 이제 좀 뭐가 느껴져? 그래. 살려달라고?
니가 그랬지? 엄살떨지 말라고? 너도 엄살 떨지 마 이 썅년아!"
 
 
현식은 미란의 머리채를 잡고 온 방안을 질질 끌고 다니며 이 세상의 온갖 욕을 다 해댔다. 손에 집히는 건 리모컨이고 사과고
굴러다니는 옷걸이며 라이터며 온갖것을 주워 미란에게 집어던졌다. 바라빠를 외치는 로마의 군중처럼, 돌을 맞는 예수처럼,
처절한 미란의 비명소리와 기괴한 현식의 웃음소리가 온 방안을 메웠다.
 
 
"살려줘! 악! 그만 하란 말이야 이새끼야!"
 
 
미란은 있는 힘을 다 해 현식의 손을 뿌리쳤다.
만신창이가 되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미란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현식이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라봤다.
별안간 미란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엄마를 그렇게 몰라! 새끼가 어떻게 사는지 보러 오는게 그렇게 못마땅해?!"
 
 
현식이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미란의 날 선 비명에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현식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바닥에서 뭔가를 주웠다. 그 모습에 미란이 잠깐 움찔했지만, 현식이 주워 든 것은 담배였다.
아직 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쥐어 불을 붙인 뒤, 고개를 숙이려 하는 미란에게 담배갑을 건넸다.
잠시 미란이 현식의 눈을 똑바로 보며 숨을 몰아쉬다가, 담배를 빼앗듯 받아들어 한 개피를 꺼낸 뒤, 불을 붙였다.
 
현식이 먼저 앉자 미란도 따라 앉았다. 저 멀리로 날아간 재떨이 대신 현식이 미란의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커피잔에 재를 떨었다.
 
 
"자꾸 엄마라고 하지 마. 내 엄마는 죽었어. 당신이...! 당신이 내 엄마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란이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현식이 말을 이었다.
 
 
"돈 때문에 온거겠지. 돈... 그래."
 
 
현식이 피우다 만 담배를 미란의 커피잔에 그대로 빠트렸다. 그리고 일어서 tv가 있는 수납장으로 향했다. 뭔가를 찾는 듯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란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잠시 뒤 뭔가를 찾은 듯 현식이 돌아왔고, 그가 미란에게 내민 것은 인감과 통장이였다.
 
 
"이제 마지막이야. 맷값이라고 생각해. 더는 못줘."
 
 
미란이 담배를 커피잔에 던지고는, 통장을 들어 펼쳤다. 그녀의 눈에 서린 분노가 조금 누그러들어 보였다.
현식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또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통장을 접고, 잠깐 현식의 눈치를 보던 미란이 부엌으로 향했다.
뭔가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조금 있다가 미란이 들고 온 것은 간단한 술상이였다.
 
"뭐하자는 거야 지금?"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식은 몸을 당겨 앞으로 앉으며 미란을 계속 쳐다보았다.
짐짓 미란은 그 시선을 피하며 소주를 따서, 현식에게 먼저 따라주었다. 제 잔은 제가 따르고, 현식이 먼저 마실 때 까지 기다리는 듯
미란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기다림을 이기지 못한 현식이 결국 한 잔을 마시자, 미란도 역시 한 잔을 마셨다.
추운 겨울날 밖에 오래 서 있어서 그런지 미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취기가 금새 올라왔다.
 
 
"그 때처럼..."
 
 
미란이 코를 훌쩍거리며 운을 떼었다. 자신의 잔에 한잔 더 따라 바로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 때처럼... 아직도 날 미워하니? 그 때 엄마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사고였다고 이야기했잖아. 손님이...
화가나서... 너무 늙었다며... 그래서... 난 말리러..."
 
 
"사건개요 읊지 마. 법정에서 충분히 들었어."
 
 
"그런데 왜 내가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하는거니?"
 
 
"야 이 빡대가리같은 년아. 니가 그날 엄마한테 손님받으라고 이야기했잖아! 넌 왜 안나갔냐?! 왜! 하루에 몇명씩 받다보니 피곤해 뒤지겠디?!"
 
 
"엄마 싫다고 했잖아! 이제와서 엄마 위하는 척 하지 말란 말이야! 지금 네 엄마는 나야! 네 눈앞에 있는 엄마는 엄마로 보이지도 않니?!"
 
 
날이 선 현식의 말에 미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분위기가 험악해져야 했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채 마신 술 탓에 둘은 언쟁을 하는
것도 지친 기색이였다.
 
 
"요새는 몇 명이나 받냐?"
 
 
"그런식으로 묻지 마."
 
 
"그러면, 니 일이잖아. 내가 니 비지니스 물어보는것도 안되는거냐?"
 
 
"...안한지 좀 됐어. 그래서 돈이 없었고... 널 찾아오면..."
 
 
"그럼 돈이 나온다?"
 
 
현식이 소주병을 들어 그대로 마셨다. 꿀꺽꿀꺽 소리가 여러번 나도록 마셨다. 그가 병을 내려놨을 때는 소주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마침내 현식이 말했다.
 
 
"돈을 원하면 일을 해야지. 안그래? 생각해보니 맷값으로 주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거든."
 
 
미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허벅지 위에 놓인 그 주먹도 파르르 떨렸다.
현식은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었다. 미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식은땀도 흘렸다. 한겨울인데도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더워지는 듯 했다.
잠시 생각을, 아니 생각이라기 보다는 고뇌에 빠진 표정이 현식을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하나 변하지 않는 현식의 표정이 더 무서웠다.
그녀는 눈을 부들부들 떠는 채 고개를 돌리며 일어서 현식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다가올 수록 심장소리가 크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마침내 현식의 앞에 무릎꿇고 앉은 미란이 떨리는 손으로 현식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 일이니까..."
 
미란의 손 위에 부들거리는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현식은 가만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바지의 지퍼가 내려가고,
현식이 고개를 위로 젖히며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지..."
 
 
 
 
 
 
 
 
 
 
 
 
 
 
 
 
 
 
 
 
 
현식은 베란다에 서서 멀어져가는 미란의 뒷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새삼 밤골목에 크게 울려퍼졌다.
그나마도 거리가 멀어질 수록 잘 안들리게 될 때까지, 담배를 피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식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발신인에 아버지라고 적힌 그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 아버지. 응? 어어. 누나 왔다갔어... 잘하던데? 뭔소리야. 영감탱이가 발정이 났나. 아무튼, 그 돈 다시 뺏어서 주고, 십프로만 챙겨가쇼.
뭐 그러다보면 저년이 다시 찾아오겠지. 뭐라고? 안돼. 팔아넘기면 이런 재미도 못보잖아. 엄마라고...? 웃기고있네. 난 엄마가
누군지도 몰라. 알잖아.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사람만 수십명이였던 그 빨간동네만 생각하면 진저리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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