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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14-5)
게시물ID : lovestory_958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9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11/28 10: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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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14. 전야(5)



 “다시 한번 사과하오. 거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소.”

 “그러니 치안권도 넘겼으니 합의문을 작성하시지요?”

 어쨌든지 엔도는 합의문을 받아내야 했다.

 “겨우 귀향민 소지품 검사하는 데 참관하는 거 그걸로 치안권을 넘겼다고 하는 것은 억지고...... 내가 총독부에서 짠 거 말고 진실로 우리나라 인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로 위원회 구성도 새로 하고 있으니 내일이면 서명도 가능할 거요. 그 전에 부처 업무며 현황도 좀 파악하고, 총독 각하도 만나고 싶소.”

 “총독 각하는......”

 여운형은 총독의 소재를 알아야 했다. 엔도가 말꼬리를 흐렸다.

 “왜, 총독 각하는 안 만나는 거요?”

 “아닙니다. 총독 각하의 일정을 몰라서요.”

 “어차피 총독 각하와 해야 될 일 아니오? 일정을 확인해 보시오.”

 “알겠습니다.”

 엔도는 또 비감해지고 있었다. 완전히 여운형의 지시를 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총독은 오후에 만나기로 하고 오전에는 엔도와 박석운을 대동하고 부처를 돌았다. 박가는 마치 제가 정무총감이나 된 듯이 관리들에게 질문하고 호통까지 쳤다. 여운형은 속으로 웃었다. 어차피 오늘 하루만 지나면 될 일이었다. 그러는 데에는 박가도 도움이 됐다.

 오후에는 총독을 만났다. 으리으리한 총독 집무실을 둘러보면서 여운형은 조선 인민들의 피와 땀을 생각했다.

 “여선생, 어서 오시오!”

 아베가 악수를 청하며 반가워했다. 여운형은 손을 잡으면서 내일 다시 만나면 그땐 아베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신 김에 매듭부터 짓지요?”

 역시 아베도 합의문이었다.

 “총감에게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따로 위원회를 구성 중입니다. 내일에는 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그러면 여기 박선생하고 제가 합의문을 짜놓겠습니다. 서명은 내일 총독 각하와 하시면 되시겠습니다.“

 엔도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여운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총감에게 말했소. 조선에서 총독부를 인수받을 능력이 있는 분은 여선생뿐이라고 말이오. 남은 기간 잘 좀 해봅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신탁통치가 시작되더라도 여선생의 지위가 유지되도록 점령군 사령관들에게 내 잘 이야기하겠소. 그러면 여선생의 정치적 입지는 반도에서 그대로 굳게 될 거요.”

 “고맙습니다, 각하.”

 여운형이 아베에게 화답했다. 비서를 부른 아베가 내일 오찬 겸 협정 조인식을 격식에 맞춰 철저하고 성대하게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아베는 합의문에 어떠한 문구가 들어가더라도 여운형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고, 여운형은 아베가 거사 계획을 꿈에도 모르게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여운형은 아베와 엔도의 깍듯한 배웅을 받으며 총독궁을 나왔다.

 “선생님, 저만 믿으십시오. 제가 우리가 받아내야 할 것은 빠짐없이 합의문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오. 내 박선생을 잊지 않겠소.“

 박가가 자신의 역할을 다시 강조했고 여운형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일 이맘때 박가가 어디에 있을까를 상상하면서. 반면 박가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 앞에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스스로 감동하고 있었다.

 아직 임정 요인들의 입국 소식은 없었다.


 문인 10여 명이 오랜만에 청화정에서 술판을 벌였다.

 서정수는 며칠 전부터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도 믿었던 대일본제국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도 원자탄이 투하돼 인민 수십 만이 몰살했다는 것이었다. 그 원자탄이라는 폭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는 것이었고, 팔뚝만한 거 여남은 개만 더 투하하면 대일본제국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원자탄을 미국이 개발했고, 수도 없이 만들어 놨다고 하니 아무리 대일본제국이라지만 이길 수가 없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가. 해방이 될 테고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할 것이다. 그러면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죽거리던 놈들이 어떻게 나올까. 서가도 전에부터 왜군이 모든 전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종전을 할 테고, 그러면 조선이 왜국의 식민지인 현상은 그대로 유지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조선은 자신의 선견지명대로 천년은 왜국의 식민지로 남을 것이고, 지금까지처럼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편안히 살면 됐다. 그런데 그 망할눔의 왜왕을 비롯한 대신놈들이 천지를 모르고 까불다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왜국으로 가기에도 그랬다. 이미 망해 버린 왜국에 간다고 해 봤자 무슨 영화가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해방이 된다면 조선에 남는 것보다 왜국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계산으로 서가의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진 듯했다. 모두 미친듯이 퍼마시고 있었다. 서가는 그중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왜인기생의 거시기를 주무르고 있는 우오한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선생님?”

 “뭐 말인가?”

 우가가 취기와 음심으로 개개풀린 눈빛을 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되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여쭙는 겁니다.”

 “이 사람아, 뭘 말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시게.”

 술기운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인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일본제국의 장래 말입니다.”

 “망하겠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우가의 말에 서가는 더욱 속이 탔다.

 “뭐가 걱정인가, 이 사람아. 망하면 망하는 거지.”

 “대일본제국이 망하면 조선은 해방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큰일 아닙니까, 선생님. 조센인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고 덤벼들 것 아닙니까?”

 “어허 이 사람, 자네는 아직 공부가 모자라는군. 조센인들이 어떤 놈들인지 아직도 모르나? 여기 조선에는 아싸리한 왜놈들이 아니라 바로 바가야로 조센징놈들이 살고 있단 말일세. 바가야로 조센인놈들이 해방이 된다고 해서 우리를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을 것 같나? 천만에! 그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왜놈들의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을 걸세. 안 그런가?”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결 불안이 가셨다. 그러나 우가도 말만 그렇게 할 뿐이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부왜정도와 비례해 남들보다 오히려 더했다. 연이은 원자탄 투하 소식을 듣고는 정말 끝장이로구나 싶어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서가에게 한 말은 곧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자기최면 같은 것이었고, 정말 그렇게 되기를 믿고 싶었다. 해방이 돼도 조센인놈들은 끝까지 바가야로 조센징놈들로 남기를.

 모두들 불안해서인지 다른 때보다 훨씬 난잡한, 아니 더 예술적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한 우가가 갑자기 웅변조의 큰소리로 좌중을 주목시켰다.

 “여러분, 존경하는 조선의 문필가 여러분, 조선은 곧 해방될 것이오.”

 “......”

 다들 술이 확 깨는 표정이었다. 이 무슨 소리인가. 마치 자기들의 앞에 독립투사가 나타난 것 같았다. 그것도 다름 아닌 우가였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할 게 없소이다. 바가야로 중의 바가야로, 조센징놈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소. 대일본제국이 패망한다고 해도 바가야로 조센징놈들은 우리에게 털끝 하나 어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해방이 돼도 여전히 영화를 누리게 될 거요.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오. 우리 만한 예술가들이 조선에 어디 있소. 우리가 없으면 조선의 예술은 날새는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 말고 술이나 마십시다, 여러분.”

 다들 우가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하는 눈치들이 역력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주가는 벌거벗고 설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통곡을 했다. 인사불성으로 취했다고는 해도 못 견디게 불안했던 것이다. 난잡했던 술자리는 기생을 끼고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지면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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