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원에 햇살이 부서진다.
머리위엔 누군가 먹다 흘린 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통통하게 살찐 비둘기가 연신 날개를 퍼덕이다 내려오길 반복한다.
저기 겉만 늙은 소년이 있었다. 집 근처 뒷산에서 대충 골라 꺾어 만든 허름한 지팡이를 바투 잡았다.
지금은 허름한 나무막대기 하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몸뚱이지만 그도 예전엔 지팡이 대신 붓을 잡던 시절이 있었다.
소년시절, 그의 꿈은 퍽 건설적이었다.
가난한 삼류작가의 문하생이었던 그는 비록 지금은 남루하지만 언젠간 당신의 이름으로 책도 내고 매스컴도 타보겠노라 꿈을 꿨다.
그러나 현실은 지독하리만치 어려웠다. 당장 붓질할 도구를 사지 못하는 것은 고사요 매일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쑤였으니까.
그렇게 비루한 삶을 산지도 3년째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도 하건만 그간 스승이라고 둔 사람에게 ‘꿈이 밥 먹여 주느냐’고 들은 설움이 갑자기 복받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렴 오늘이 이 어린 청년의 생일인 줄 알았으랴.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뛰쳐나온 소년은 제 발로 나왔기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어영부영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맞이한 칼바람에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다. 이제는 몸 구석 어디에도 온기가 남아있질 않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근처 역사에서 몸 뉘일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을까.
이미 자리를 잡고 길게 늘어져 있는 노숙자 무리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나마 웃풍이 있는 곳에라도 자리 잡는 시늉을 하면 따가운 눈총과 욕지거리로 혼이 빠져나가리만큼 윽박을 줬다.
그렇게 위태롭기 그지없던 소년에게 웬 노신사가 천천히 다가와 무어라 말을 건냈다.
막차도 끊긴 시간에 별안간 날아들어 온 점잖은 목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