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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총 4년 간 보낸 지옥같은 시간에 뿌리는 약사이다
게시물ID : soda_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회계사라져라
추천 : 21
조회수 : 3843회
댓글수 : 137개
등록시간 : 2015/08/26 03:25:23
강사이다는 없는 것 같으니 음슴체를 씀.
 
 
 
1.
 
중학교 시절 나는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 다님. 그 중학교는 어린이집 시절부터 다 보던 애들이라 같이 노는 무리가 정해져 있음.
나 역시 한 무리에서 놀고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쯤 그 무리에 있던 A가 슬슬 나를 따돌리기 시작함.
그 이유는 어이 없지만 내가 그 아이보다 성적이 좋아서. 당시 전교에서 1~3등을 하던 나는 A보다 성적이 월등히 높았음.
중학교 2학년이면 수학여행을 갈 학년이었는데 본격적인 왕따는 그 때 부터 시작됨. 버스에서부터 나를 무시하기 시작.
아, 드디어 왕따가 시작되는구나. 이 생각이 들면서 그냥 집에 가고 싶었음.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고 숙소에 가며 엄마에게 전화해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함.
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으심. 무슨 일 있냐고 닥달하셔서 숙소 건물 뒤 구석진 곳으로 가서 울면서 왕따에 대해 얘기를 함. 엄마는 너무 힘들면 집으로 오라고 하심.
일단 밤이 늦어져 오늘은 숙소에 있기로 하고 식당으로 감. 나는 밥을 혼자서 먹음... 진짜 죽고 싶었음.
밤에 노는 것도 없이 그냥 빨리 자버리고 다음 날이 찾아왔음. 사실 집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선생님에게 말 할 자신이 없었음. 정말 착하시고 지금도 가끔 찾아 뵙는 선생님이지만 어린 마음에 왕따라는 사실을 얘기 하고 싶지가 않았음...
그래서 그냥 선생님께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숙소에 남아있었음. 그런데 숙소에 남아있는 남자애들이 은근히 많았음. 다행히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들이라 그냥 남자 숙소에 가서 자기 전 까지 놀고 그랬음.
친한 남자애들이 있는데 왜 왕따냐고 할 수 있는데 중학생 시골 남학생과 여학생은 아무리 친해도 동성 친구와 친한 것 만 못 함. 예를 들면 집에 놀러가고 하는 건 이성 친구끼리는 잘 안 했다는 거?
사실 저 남자애들이 없었으면 아마 중학교 중퇴를 했을 것 같기도 함... 지금도 몇 명은 졸업 후에도 만나고 있음.
 
튼 이렇게 시작된 왕따는 중3 중반까지 감. 밥은 늘 남자애들과 먹으며 여자애들의 수근거림을 견뎌야 했음. 이게 제일 힘들었음...
중3 중반 이후에는 고입이 시작되자 공부 잘 했던 나에게 여자애들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임. 진짜 중학교 3년 다니며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간 게 매우 적은데 이 시기가 그 적은 횟수에서 반 이상이 들어감.
 
이렇게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함. 사이다는 고등학교 썰 이후 한 번에 나옴. 어째서냐면 대학에 관련 된 일이기 때문에.
 
 
2.
 
 
고등학교를 두근거리는 마음에 입학을 함.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음. 2학년까지는 또 그냥저냥 지냈음. 항상 문제는 2학년이네...
2학년에 들어가서 B라는 애가 이유 없이 나를 욕 하고 다니기 시작함. 알고 보니까 위에 나온 A라는 년의 이간질이 있었음. 그 친구라면 무시해도 될 것 같아 그냥 무시하고 난 내 친구랑 놀았음. 이쪽이야 서로 욕 하고 욕 하는 사이이니 처음에는 별 신경 쓸 일이 없었음.
문제는 C와 D로부터 시작 됨.
C는 시내 ㅇㅇ중학교를 다니던 교회 집 딸이었고 D는 시내에 있는 ㅁㅁ중학교를 다니던 전혀 모르는 애였음.
우리 집은 시골임. 특히 바닷가라 아침에 버스를 타면 냄새가 죽여줌... 왜냐하면 갯벌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들의 공이 컸음. 그 바다 비린내가 가득한 버스. 그 당시 우리 반에서 그 버스를 타고 오는 애는 나 하나였음. 1시간정도 타고 가는 버스는 아침에 감고 온 머리와 옷에 냄새가 잔뜩 배임...
여기서부터 왕따가 시작 됨. 쟤 냄새 나지 않아? 하고 내 앞에서 C와 D가 수근거림. 당연히 나는 다 듣고 있었음. 진짜 그 냄새 어떻게 하려고 페브리즈며 뭐며 안 써본 게 없음... 하지만 한 번 찍힌 건 영원한 건지 계속 날 대놓고 무시하거나 비웃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보충수업에 홈베이킹을 신청 해 하는데 나를 절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쟤 걔라고만 부름. 그것도 날 바라보면서. 내 이름은 왜 있는 건가 생각을 많이 했었음...
 
그러다 2학기 쯤 일이 터짐.
어머니가 집에서 찌개를 태우셔서 집 모든 옷에 탄내가 배임... 거기다 그거 냄새 잡으시겠다고 쑥까지 끓이셔서 진짜 헬이었음. 아침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옷을 빨지도 못 하고 그냥 그걸 입고 학교에 감. 거기에 이제 버스까지 합쳐짐.
교실에 가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애들이 지나치면서 코를 손으로 막고 또 냄새낸다고 뭐라고 함. 거기에 그나마 얌전하게 지나갔던 A의 친구 B무리까지 그 애들을 업고 나를 업신여기기 시작함. 내 앞에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
 
 그 날부터 학교에 안 나갔음.
엄마하고는 이 일로 엄청 싸웠음. 학교에 가라는 엄마와 싸우는 것도 지쳐서 학교에 가는 척 하고 밖에서 시간 때우다 집에 들어가고 그랬음.
결국 엄마와 아빠는 나를 상담 센터에 보내기 시작하심. 처음에는 고등학교 상담 센터였음.
기대를 할 게 안 됐음. 그 때가 딱 학교 폭력 그거에 민감할 시기라 그냥 일을 덮으려고 급급했음...
그 다음은 우리 지역에 있는 상담 센터였음. 거기는 그림 상담이랍시고 그림을 그리게 했음. 결과는 내가 다 알고 있는 그런 심리. 당시 나는 부모님을 못 믿고 그나마 내 편이 되어주는 동생하고만 얘기 하고 있었음.
하지만 엄마는 내 심리를 직접 들은 것이 처음이라 충격이셨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셨음. 지역 상담 센터는 저것으로 상담을 끝내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지역의 상담 센터를 갔음.
거기서 내 인생 은사님 중 한 분을 만남. 상담 선생님은 나 뿐만 아니라 부모님과도 상담을 하며 무조건 전학은 안 된다고만 하시던 부모님의 의견을 돌려 놓는데 큰 역할을 해 주셨음.
지금 힘든 건 부모님보다는 ㅇㅇ라고. ㅇㅇ가 이 왕따 건에 대해서 결과가 좋게 나와도 다시 가서 좋게 학교 생활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이렇게 약 한 달? 상담을 끝으로 전학이 결정 됨.
 
근데 여기서 왕따를 당한 고등학교가 내 발목을 잡음. 죽어도 학교 폭력에 대해 얘기가 나오게 하기 싫었는지 전학 가는 것을 잡음. 어떻게 학생이 전학 가는 걸 잡냐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나는 고2에 2학기였고, 같은 지역 내에서는 전학을 못 가게 교장들끼리 합의를 했다고 함... 워낙 그 학교가 전학을 나가는 애들이 많기도 했으니.
그래서 원래 가려던 학교에 그 학교 교장이 전화를 해 못 가도록 막았음...
그래서 아예 다른 지역 기숙사 고등학교를 찾아 봄.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선생님들이신지라 열심히 찾아 봐 주심.
결국 바로 옆 지역에 아버지 친구분의 선배분이 선생님으로 계신 기숙사 고등학교로 전학을 감.
 
 
처음에는 불안했음. 내 성격이 이상해서 왕따를 당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후배도 많이 생기고 3학년에는 반장도 함. 졸업 후인 지금도 부르면 어색한 것 없이 나오는 그런 동창들임.
수학여행도 다시 가 행복한 추억 만들고 돌아왔음. 큰 바퀴벌레를 본 것 빼고는...
선생님들도 대부분 좋은 분들이셨음. 특히 전학에 도움 주신 아버지 친구분의 선배이신 선생님과 아버지 친구분의 친구이신 선생님이 집중적으로 관리 해 주심.
 
 
 
 
이제 약 사이다가 나감. 쓰는 나도 너무 답답했음...ㅠㅠ
 
나는 저 고등학교를 다니며 성적이 수직 하강 했음 ㅎㅎ... 학교도 안 나갔으니 생활 기록부도 엉망이고.
그런데 전학을 가고 나서 마음 잡고 공부를 해 반 1등으로 확 치고 올라 갔고 생활 기록부도 선생님들이 좋게 써 주셨음.
그렇지만 성적은 저 고등학교에서 너무 말아먹어서 충남권도 아슬아슬했음. 그 때 아버지 지인이신 선생님께서 적성검사를 준비하게 도와주심. 진짜 1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죽어라고 그것만 했음. 그리고 결국 나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인서울 4년제 경영학부에 합격을 해 플랜카드에 이름을 올림. 그 당시에 막 수시 6개 제한이 도입 된 시기라 경쟁률이 장난 아니었음. 특히 경영은 말도 못 했음...
합격을 하고 놀자판으로 지내다가 겨울방학이 되어 기숙사에서 나와 본가로 들어갔음.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던 도중 나를 고등학교에서 괴롭혔던 C가 같은 버스에 탔음. 그것도 나랑 눈이 마주 칠 수 있는 옆자리에.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음. 이 친구는 내가 왕따 당하는 걸 알고 있는 타지역 친구였음.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 내 자랑을 하기 시작했음.
 
"어, XX야. 난데 있지? 나 이번에 서울에 대학교 붙었잖아. 근데 지금 내 옆에 나 왕따 시키던 C라는 애 기억 나? 걔 있어서~ 그냥 걔 대학교 이도 저도 안 되는 지잡으로 갔다고 그래서 ㅎㅎ 자랑하려고 전화했지! 쟤는 평생 해도 우리 학교 구경도 못 할 걸? 응~ 그럼. 이제 2월 말에 서울 올라 가지. 응. 자취 하기로 해서 최소 4년은 혼자 살아야 돼ㅜ 너 많이 놀러와랑 ㅎㅎ"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이런 식이었음.
분명하게 서울 4년제 대학에 붙었음을 강조하고 걔가 지잡에 별 볼 일 없는 학교에 붙은 걸 크게 얘기 했음. 어떻게 걔 학교를 알았냐면 나는 페북으로 걔를 보고 있었음. 어디 학교에 갔는지 자기 만족을 하기 위해. 근데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ㅎㅎㅎㅎㅎ
그것도 도중에 걔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자기도 쪽팔린 건 아는지 벨을 누르더니 정거장에 도착 하자마자 내려버림. 버스가 멈춰 있어서 횡단보도를 못 건너고 있는 그 애를 계속 보면서 나는 전화를 했음.
들리지는 않지만 자기 욕인 걸 아는지 나를 처다보던 그 애는 버스 뒷쪽으로 휙 떠나감.
 
너무 시원했음. 비록 약사이다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강사이다였음. 아, 대학 잘 간 거 하나로 나를 괴롭히던 애를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구나... 하는.
분명 예전이었으면 꿈도 못 꿨을 행동이었음. 아마 그 고등학교에 계속 다니면서 대학을 잘 갔으면 저렇게는 못 했을 거 같음.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대학도 붙고 친구들도 많이 있고 무엇보다 더는 걔를 마주칠 일 없는 꿇릴 것 없는 상황이었음. 그러니 그냥 미친 척 하고 앞담이라는 것을 나도 한 번 까봤음. 아직도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걔 얼굴이 잊혀지지 않음.
 
두 번째 사이다는 A임.
A가 중학교 때 나를 왕따시킨 이유는 성적이라고 했었는데 그 배후는 걔 엄마였던 것 같음.
걔 엄마는 마을에서도 싸이코로 좀 유명함... 그러니까 지 딸이 1등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방해물인 거임. 물론 게임도 안 되는 성적이었지만.
그래서 걔에게 나를 왕따시키라고 시킨 것 같음. 어떻게 눈치를 깠냐면 내가 왕따를 당하자 걔 엄마는 고개를 빳빳히 들고 동네를 돌아다님. 평소네는 그냥 그렇던 아줌마가.
우리 집 근처에서 사시는 우리 할머니네는 교회를 다니심. 그 교회에 매 주 집을 돌아가면서 기도회? 같은 걸 하는데 그 아줌마가 우리 할머니네랑 같은 조였음.
뻔뻔하게 우리 할머니댁에 가서 기도회하며 은근히 나를 무시했다고 함.
 
그렇게 지내다 우리 둘 다 대학에 가게 됨.
나는 동네에 소문이 쫙 퍼짐. ㅁㅁ집 딸이 서울 4년제 대학에 갔대. 우리 동네에서 서울은 걔 하나 나왔네?
진짜였음. 그 중학교 다니던 동네에서 서울로 대학을 간 애는 나 하나. 심지어 경기권도 안 나온 상태였음.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댁은 축제 분위기가 됨. 그리고 숙모가 드디어 그 아줌마에게 울분을 푸셨음.
우리 조카는 이번에 서울 4년게 경영학부에 갔대요~ 그쪽 딸 동창이었죠? 어디 갔어요?
이 물음에 아줌마는 대답도 안 하고 있다 기도회 끝나자마자 간식도 안 드시고 집에 가버리심. 그리고 그 날 이후 기도회 조가 바뀜 ㅎㅎㅎㅎㅎㅎ
숙모는 집에서 잉여하게 지내던 나에게 연락해 그 사이다 썰을 풀어주시며 자기가 더 통쾌해하셨음. 얼마나 같은 조 하시면서 열불이 터지셨으면.
거기다 나중에 교회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어디 지잡대(리얼 지잡이었음. 돈 주면 가는 그런) 사회복지학과에 갔다고 함.
그 때 숙모가 덧붙이신 말이 더 시원했음.
 
그 성격으로 봉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평생 봉사하면서 지가 지은 죄 뉘우쳤음 좋겠다고.
 
 
 
 
이 얘기는 저 타지역에 사는 친구 외에는 친구들에게 한 적 없어요. 창피해서... 아마 앞으로도 얘기 못 하겠죠. 그래서 그나마 익명이 보장되는 이 곳에 올렸어요. 누구에게라도 한 번 이 얘기를 시원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오유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시원한 사이다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정말 4년의 지옥을 씻어내려준 사이다 그 이상이었어요.
얘기도 꽤 길고 말고 좀 횡설수설이지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발버둥치면 자신을 알아 봐 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력이라는 것은 배신을 하지 않고.
남들이 봐서 유치할 수 있지만 대학으로 그 애들을 찍어 눌렀다는 것 자체가 그건 제 노력으로 이룬 일이라 더 행복했어요.
 
다시 한 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여!
 
 
 
 
출처 지옥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 한 나에 대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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