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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알 수 없는 조선 말의 야담집인 청구야담을 보면, 온 몸이 털로 뒤덮인 무서운 거인들이 사는 섬나라에 도착한 사람들이 겪은 모험담이 한 편 실려 있습니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에 사는 장사꾼 한 명이 미역을 사기 위해 제주도로 갔는데, 그곳에서 두 다리가 잘린 노인 한 명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장사꾼이 “어르신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리가 잘렸습니까?”라고 묻자, 노인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장사꾼한테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젊은 시절,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하루 이상 계속 되다가 마침내 어느 섬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그 섬에는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 위에는 높은 집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마침 바람과 파도에 시달린 터라 노인 일행들은 지치고 목이 말라 “혹시 저 집에 들어가면 주인이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고,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고 그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에 도착하자, 집의 문이 열리면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키가 무려 60미터나 되었고, 허리의 둘레는 열 명의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할 만큼 굵었으며, 얼굴은 먹물처럼 새까맣고, 두 눈동자는 등잔불처럼 빨갛게 타올랐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붉은 실처럼 생겼습니다. 게다가 목소리는 마치 당나귀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노인 일행을 본 집의 주인, 즉 거인은 큼지막한 두 손으로 일행들을 모두 잡아채서는 집 안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집의 대문을 닫더니 나무 장작들을 가져와서 마당에 쌓아 불을 지르고는 일행 중의 키가 큰 젊은이 한 명을 한 손으로 움켜잡더니, 곧바로 장작불에 던져 태워 죽이고는 한 손으로 젊은이의 시체를 잡아서 입으로 가져가더니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습니다. 그걸 본 일행들은 소름에 끼치면서 비로소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 거인은 무시무시한 식인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은 거인은 큰 항아리에 보관된 술을 실컷 퍼 마시고는 천둥처럼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습니다. 노인 일행들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집의 대문이 너무 크고 집 근처를 둘러싼 나무 담장의 높이가 무려 90미터나 되어서 도저히 뛰어넘을 수도 없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일행들이 울고 있을 때, 그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이대로 가만히 잡아먹힐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가진 칼로 저 거인의 눈을 찌른 뒤에 목을 찔러서라도 맞서 싸워보자.”라고 설득하여, 모두 그 의견에 따랐습니다.
자고 있는 거인한테 일행들이 달려들어 옷 속에 넣어 둔 칼을 꺼내서 거인의 눈을 찌르자, 거인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일행들을 잡고자 두 손을 휘저었습니다. 그 때, 일행들은 집의 뒤뜰에 놓인 울타리 안에 양과 돼지들이 60여 마리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재빨리 울타리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일행들을 잡지 못하고 눈이 다쳐 앞을 못 보게 된 거인은 대문을 열고는 양과 돼지들을 집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행여 가축들이 다 빠져나간 뒤에 남은 일행들을 잡으려는 속셈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일행들은 양이나 돼지를 등에 지고 나갔기에, 거인이 아무리 손으로 만져봐야 짐승들만 만질 뿐이어서 일행들을 붙잡아두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빠져나간 일행들은 배로 달려가 타고는 도망칠 준비를 했는데, 거인이 언덕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자, 잠시 후 거인과 똑같이 생긴 3명의 거인들이 나타나더니 배를 향해 몰려왔습니다. 그들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한 번 걸을 때마다 거리가 18미터나 좁혀지며 순식간에 일행들이 탄 배에 다다랐습니다. 거인들이 뱃전을 잡고 배를 당겨보려 하자, 일행들은 배의 돛대로 거인의 손가락을 내려찍고 거인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안 서둘러 배를 띄우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다행히 거인들은 바다를 건너지는 못하는지, 그저 일행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간신히 식인종 거인들의 섬에서 벗어났지만, 일행들은 도중에 심한 태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고 일행들은 모조리 바다에 빠져 죽었으며, 노인 한 명만 부서진 배의 판자조각을 붙잡고 바다 위를 떠돌다가 그만 악어에게 두 다리를 잡아먹히고 목숨만 건진 상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만나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청구야담에서는 대인도, 또는 대인국 설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노인 일행을 잡아먹은 거인족을 대인이라 부른 것입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외부인인 조선인들이 부른 이름일 뿐입니다.
출처 |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262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28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