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연수
2009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같이 근무하던 귀한 님들과
큰마음으로 함께 다녀온 연수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갖가지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리는
평생을 다했던 직장을
정년퇴임 한다는 설렘도
백두산을 직접 본다는 벅참도
인천 연안부두에서 밤 배 타고
단둥으로 여객항에 이른 아침
내렸던 인천 단둥 간의 여객선
여객선 배 아래는 중국인 보따리
상인들의 바쁜 손놀림이 새롭게
또 한편은 참 신기하게 보였던
단둥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백두산을 향하여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갔던
그리고 만난 백두산의 모습
누구나 그러하듯이 참으로
컸던 가슴의 설렘 지금도
백두산 연수를 함께 기획했던
그 당시의 여러 선후배님도
지금은 다들 정년퇴직한
그러는 동안 세월은
저 혼자 말없이 흘러서
15년 이란 지나간 세월이 된
백두산을 보았던 무한한
감개무량함은 무디어지고
기억에서 더러 흐려졌지만
그때의 순수했던 그님들의
활기찬 모습은 기억에 남아
때때로 추억으로 돌아보는
백두산을 본 느낌의 이야기는
나 말고도 많은 여행가들이 이미
안내했고 또 다들 다녀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면서 그때의 연수가
지금도 변함없는 추억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1960년의 어느 봄날
서울행 열차를 타고
1960년 부모 없는 고아 형제
부산 피난 생활 정리 열세 살 열한 살
새벽 서울역 참으로 낯선 곳에 도착했던
가족들 더 솔직히 말하면
사실은 홀로 된 할머니 손 잡고
낯선 도시 서울이라는 곳에 도착했던
전쟁고아 형제 네 살 두 살 손자
할머니 손에서 힘들게 자란 탓에
서울은 누구도 아는 이가 없었던
할머니 말씀이 아무리 힘들어도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살게 될 것이라는
그렇게 시작 처음 시작한
서울역 뒷동네 중림동에서
낮엔 신문 배달 밤엔 야간학교
그렇게 성장했고 지금은 도봉구에
경기 북부 지역으로 출퇴근했던
이젠 정년퇴직한 뒷방 꼰대
그렇게 길고 긴 서울 생활
60 년이 지나갔는데 아직도
끈끈한 정은 붙일 곳이 없다는
가까운 작은 도시로 출가한 자식은
미련 없이 먼저 이미 이사 갔고
우리는 아직 망설이고 있는
어쩌다가 사촌들 만나려고
부산을 다녀오기는 하는데
지금도 누군가가 묻기를 아무 조건 없이
여생을 살고 싶은 곳을 말하라면
그렇게도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첫 대답 부산이라 말하고 싶다고
이윤 아련한 어릴 적 추억 때문이라는
토성동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지금도 가끔 인터넷 지도로 확인해 보는
당시는 군인들과 운동장을 반으로 나누어 썼고
한때 화재로 다시 지었던 내가 다닌 토성 국민 학교
59년 3월 졸업 옛날이 그리운 꼰대 ? “ 이별의 부산정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