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5교시인가 6교시를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과목은 '음악'이었고, 아이들은 한명씩 차례대로 선생님 책상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수행평가'를 하고 있었어요.
담임선생님께서는 수행평가를 다 끝낸 애들을 운동장에 나가 놀게 해주는 자비를 베풀어 주셨지요.
저 역시 수행평가가 끝난 동시에 운동화로 갈아신고 얼른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어요.
친구들 여럿이 모여 '나이 먹기'라는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나이먹기' 게임이 혹시 뭔지 몰라서 부연설명 해드리자면, 일종의 술래잡기 같은 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로 편을 나눈 다음, 서로의 본진을 정합니다. (본진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우뚝 서있는 나무들이 주로 본진을 담당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는데, 룰은 간단해요.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나이 적은 사람을 붙잡는다 입니다(여기까지 쓰고 나니 저도 룰이 가물가물...ㅠㅠ)
게임 초반에는 참여자 전원이 나이가 똑같아요. 각각 50살씩 시작한다고 쳤을 때, 개인으로는 상대방을 결코 붙잡을 수 없죠.
그래서 처음에는 두명씩, 짝지어서 상대팀을 잡으러 다녀요.
그런데 나이를 먹게 되는(게임에서 렙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팀의 본진을 '터치'하는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본진 앞에는 항상 수비수들이 대기하고 있지요.
여기까지 게임 설명 마칠게요(허접한 설명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는 반아이들과 어울려 이 나이먹기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 저를 잡으려고 두명이 함께 뛰어오고 있는 거에요.
재빨리 피해보려 했으나 이미 막다른 길이었어요.
정말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친구들을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그만 쿵!!!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잔디가 이쁘게 깔린 운동장이 아니라 완전 흙으로 이루어진 운동장이었어요.
그래서 비가 오면 웅덩이가 생기고, 웅덩이의 물이 다 마르고 나면 그대로 움푹 구덩이가 패이는 그런 운동장.
아마 제가 뒷걸음질치다가 밟게 된 움푹 패인 구덩이도(웅덩이 넓이가 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신 넘어질 만큼 깊은?)
그렇게 생겨났던 것 같네요. 아무튼 저는 뒷걸음질치다가 구덩이를 밟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마침 제 뒷통수가 닿는 부분에 돌이 있었던 겁니다.
쓰러지는 충격을 그대로 돌에다가 꽝!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사실 정신을 잃었다라고 인지하지도 못했어요.
아무튼 지금부터가 유체이탈을 하였다고 생각하게 된 본격적인 경험담입니다.(인트로 들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그 순간 제 눈앞에 보였던 것은 티비가 모두 끝나고 나면 지지직 하면서 뜨는 흑백화면같은 것이었습니다.
티비와 달랐던 것은 그게 2D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죠.
흑백화면은 이윽고 어떤 터널 모양처럼 변하더니 저를 강렬하게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다가 그 흑백화면과 터널이 사라지고 나온 것은 제가 아까까지 있던 교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천장에 떠있는게 아니겠어요?
저는 교실 천장에서도 교실 출입문이 있는 벽쪽 구석에서 교실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색깔은 여전히 흑백컬러였구요. 아무튼 그렇게 있는데, 교실문이 열리는게 보입니다.
그리고 누가 들어오더라구요. 그때 속으로 '아 OOO다...'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다시 그 장면이 소거되고 처음봤던 흑백 화면 터널이 보이는 겁니다.
무언가가 저를 굉장히 강렬하게 당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윽고 무의식적으로 게슴츠레하게 뜬 눈 앞에는 반친구들이 빙 둘러 모여있었어요.
한 친구는 저를 깨워보겠다고 제 상의를 올리고(제가 누운채로) 귓볼을 때리고 있더라구요.
아무튼 제가 점점 정신을 차리고 있으려니 다른 친구가 제가 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켰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처음 겪는 경험(굳이 유체이탈이 아니라 뇌진탕에 발작...)에 멘붕이었구요.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수군수군 거리고 있으니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어서려고 했어요. 근데 일어서려고 한 순간 다리에 힘이 딱 풀리면서 주저 앉게 되더라구요. 진짜 일어설 수가 없었어요.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서 괜찮다느니 어떻게 된거냐느니 따위의 말을 하려고 하는데
이게 참ㅋㅋ 말도 안나오더라구요. 제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는게 진짜 '으버버 의버버버'였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멀리서 선생님 한분에 친구에 이끌려 다급하게 제 쪽으로 뛰어오는게 보이더라구요.
저는 그 선생님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그 선생님의 자가용을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뭐 다행히 어디가 안좋게 된 건 없구요, 검사 받고 이상없다고 확인 받은 후 건강하게 다시 퇴원하였습니다(당일 퇴원)
아무튼 병원 응급환자실에서 링겔 맞고 누워 있으면서 급히 달려온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해드렸지만 뭐 딱히 놀라시는 기색이 없으셨습니다ㅎㅎ
후에 학교에 가서 제가 같은반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이미 학교에 제가 나이먹기 하다가 발작 일으킨 놈이라고 소문이 쫙 퍼져있더라구요...)
혹시 내가 그때 그 상황일때, OOO 교실에 들어갔었냐구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OOO에게도 물어보았어요. 거의 반 전체가 했던 게임이었기 때문에 저의 '발작(...)'을 안 본친구가 별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저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 친구였고 역시나 그 순간 교실에 들어갔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 내가 본게 정말 헛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나지막한 확신 아닌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