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사학자 혹은 '자칭' 민족 사학자 분들이 기존 사학계를 매도할 때 쓰는 표현이 '친일' 또는 '식민'사학의 잔재라는 표현입니다.
그런고 이 표현을 쓰는 것은 곧 '기존 사학계는 친일/식민사관에 물들어서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부정하고 축소시킨다.' 라는 주장을 항상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 주장은 '식민사학'의 핵심과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식민사학의 핵심은 '일조동조론'과 '만선사관'이기 때문입니다.
식민사학의 목적은 왜놈들이 제국주의/군국주의에 미쳐서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고 더욱 더 가열찬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일본,조선,만주의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의식'을 지닌 민중들을 '대일본제국 천황폐하의 기치 아래 하나로 묶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조선에서는 '창씨개명'을 비롯한 '내선일체' 이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래는 '창씨개명' 당시의 조선 총독이었던 남총독(미나미지로南次郞)의 담화문입니다.
이 중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歷史的考證에依하면朝鮮은太古의所謂"根의國"으로大和民族과朝鮮民族은同祖同根으로서一串不離의血緣的聯繫를가지고잇다
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조선은 옛부터 소위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나라로 야마토민족과 조선민족은 같은 조상과 같은 근본을 가져 하나로 꿰어 나누어 질 수 없는 혈연적 연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兩民族은地理的環境을달리한까닭에自然風俗文物을달리하엿지마는倂合以來一視同仁의御仁政에因하야內鮮融和統合本來의一體의姿態로還元하려하고잇는것이다
그리고 양민족은 지리적환경을 달리 한 까닭에 저절로 풍속문물을 달리하였지만 병합이래로 일시동인의(모두를 평등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하는) 어진 정치로 다스려 일본과 조선이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되어 본래 하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特히今次事變을契機로하야半島民衆이帝國의堅持하는確乎不動의大陸政策中에共同의理想,共同의使命,共同의運命을感得하고皇國臣民으로서의國民意識에불타고眞實로內鮮一體되려는思想同向과生活態度를鞏化進展하여온터이다
특히 이번 사변을 계기로 하여 반도민중이 제국이 굳게 가지는 확호부동(굳고 단단하여 움직이지 아니함)한 대륙정책 가운데 공동의 이상, 공동의 사명, 공동의 운명을 느껴 황국신민으로서의 국민의식에 불타고 진실로 내선일체되려는 사상과 생활태도를 굳게 나아가 펴 온터이다.
이리하야皇國臣民인信念과矜持를抱懷한半島人의一部에法律上內地人式의氏를稱하고싶은希望을품은者가생기게된것은前부터나의알고잇는바인데同祖同根의內鮮兩民族이渾然一體되려는時를際하야個人의稱呼를同一形式으로據하려는要望의擡頭한것은質과서로表裏하야形의上에잇어서도內鮮一體의具現이高調에達한것이라아니할수없다
이리하여 황국신민의 신념과 긍지를 가진 반도인의 일부에 법률상 내지인식의 성을 칭하고 싶은 희망을 품은 자가 생기게 된 것은 전부터 나의 알고 있는 바인데, 같은 조상과 같은 뿌리의 일본과 조선 양 민족이 혼연일체되려는 이 때에 개인의 칭호를 동일형식으로 하려는 요망이 대두한 것은 겉모습에서도 내선일체를 구현하려는 바탕이 고조에 달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오!! 내선일체의 이념이여!!!)
그리고 아래는 그 이후 일어난 일을 잘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합방 이후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앙망하고 있었던가. 30여 년간 조선시정 중 최대의 획기적 업적이고 특히 남총독의 내선일체 이념에 현실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어서 실로 찬송할 말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황국신민이 되는 대도가 열린 것이다. 소집을 받은 청년제군! 제군은 폐하의 방패가 되려는 어신임을 얻는 것이다. 울 수 있는 데까지 울어라, 울음을 그치거든 여하히 하여 감격에 답할까를 종용히 생각하라. 기실 아등은 아직도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바가 있는 것이다. 폐하의 적자라하여 부끄러운 것이다.
소화 17년(1942년) 5월 11일 징병제 실행감사 전경성기독교대회
(기독신보 1942. 5. 18)
- 요약 : 지금부터 조선인도 일본인과 동등하니 니네도 징병대상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선일체의 이념은 훼이크고 사실 고기방패로 쓰기 위함이다 ㅋㅋㅋㅋ)
조선은 이렇게 내지와 하나가 되어 영광스러운 대동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주는????
조선이 막다른 곳에 이른 상황을 打開하기 위해서는 만주를 이용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조선과 같이 고정된 사회에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만주를 이해하여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을 일반인에 선도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옛날에는 別國이었지만, 모두 동일민족이고, 단군의 자손이며, 동시에 만주도 우리 영토의 하나였다는 큰 생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라를 기초로 하는 朝鮮史家의 견해로는 안 된다. 그것을 是正하고 개발하고, 올바른 역사의 해석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접경지에 이러한 부동적인 사회상태가 있고, 더욱이 그 토지가 천혜의 풍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방면을 개척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찍이 함경도를 개척한 윤관과 같이, 北邊에 전념했던 고려 태조 왕건과 같이, 李朝의 태조와 같이, 이 방면을 개통하여 민족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 나의 평소 주창하고 있는 鮮滿一家宗의 요지는 모두 했던 생각이지만, 요컨대 鮮人은 전통적이라고 생각되는 신라본위의 역사관을 포기하고 삼국일체의 본연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 측의 조선사 연구자에게는 쓸데없이 日鮮관계에만 몰두하지 말고, 만주방면과 緊切한 史實을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鮮人의 전통사상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천명하게 하는 것이 또한 同民의 大誼일 것이라 생각한다.”
- 稻葉岩吉,「朝鮮の領土民族問題及鮮滿文化關係に就て(二)」,『朝鮮』149,朝鮮總督府,1927,p.26
- 이나바 이와키치, 조선의 영토민족문제에 미치는 선만문화관계에 따르면,
예.... 조선인들의 '전통적'인 신라본위의 역사관을 포기하고 '선만일가종'의 요지를 받아들여 만주도 조선과 하나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민족사학자' 어이쿠.. '식민 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님께서 열변을 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친일파분들은 위 충고를 받아드리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아래는 '최동'의 만몽문제의 결론 내용입니다. (출처 : http://hyunk02.egloos.com/1575105)
이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군요..
1. 만몽은 일ㆍ선 민족의 발상지임과 더불어 현재 사방으로 흩어진 소위 대타타르계 몽고인 종족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도 그 본거지인 것을 알았다.
3. 만몽에 '신국책'인 대민족주의를 확립하여 우리 타타르계 몽고인의 일대 규합을 이룩하고, 그 융화단결을 촉구하는 일에 의해, 금후로 대규모의 세계인종 전쟁을 예방한다.
5. 그 과정으로 조선인을 만몽발전의 중견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조선인을 만몽발전의 중견'이 되게 한다라...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만주침략에 동원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으니 과연 최동의 문장력은 대단합니다..
------------------------------------------------------------------------------------------------------------------
결론짓겠습니다. '식민사관'은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제국주의에 미쳐 조선과 만주의 경영을 안정시키고 이를 발판삼아 침략전쟁을 확대하려는 목적에 이용된 것으로 단순히 우리민족을 비하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민족을 억지로 '일본' '만주'와 연결시켜 침략전쟁에 이용해 먹지요.
그런데 가끔 이 '식민사관'을 부정하며 타파한다는 분들이 정작 식민사관의 핵심인 '일조동조론'과 '만선사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그저 정신이 아득해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