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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낳는게 죄라는 글을 읽고 풀어보는 "내 결혼과 내 집 마련 썰"
게시물ID : freeboard_8007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튜스데이
추천 : 1
조회수 : 78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1/29 11:59:12
[ 이상 이런 나라에 서민에 자식낳는거 자체가 자식에게 죄 짓는 겁니다 ]

어떤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뭐 그냥 요새 세태가 그러하니 격양된 마음에 하시는 말씀이시겠지만 아이를 가진 아버지로써는 사실 좀 마음에 걸리는 발언입니다. ㅎㅎ
저야 부자도 아니고, 돈도 조금 밖에는 못 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아이도 가졌고, 앞으로 그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수 많은 것들을 머리 속에서 늘어 놓으며 태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아이를 가진 후 퇴사하여 현재는 전업주부이며,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불만은 커녕 오히려 안심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실은 저 보다는 아내가 오히려 집에만 있는 것을 못 견뎌하지만... 그 문제는 지금 이야기 할 일은 아니군요.

제가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태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물가도 비싸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무 저렇게 부정적으로만 미래를 바라보지 말아주시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곧 태어날 첫 딸을 기다리고 있는 34세 가장으로써 여러분께 제 결혼과 이후 생활에 대해 썰을 풀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좀 길어질지도 모르고, 두서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풀어볼게요. ^^;


...



단도직입적으로, 요새 결혼식 하려면 최소 천만원은 가지고 있어야 되고  뭐 그런다던데,
저는 두 분이 열심히 살 마음만 있으면 그 정도로 돈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몇 년 전에 결혼하기로 결심이 들어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실제 예식비는 얼마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식 홀은 무료로 대여해주겠다는 곳도 많습니다. 저 예식장에서 그냥 일반적인 양식으로 결혼 했습니다. 
음식 맛있었고, 주차장도 넓었고, 홀도 넓었고, 식장도 넓게 썼습니다. 다른 결혼식장 가면 답답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오히려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으로 밥값 계산하고 나니 돈이 오히려 좀 남았습니다.
밥 값이 정말 쌌거든요. 발품 팔아서 알아본 결과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싸게 맞춰서 한 덕분입니다.
(예식장 밥값이 뭐 5만원? 직접 알아보시면 코웃음 칠 이야기입니다. 돈도 없는 와중에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 하는 허세만 없으시다면요.)
남은 돈으로 신혼여행도 해외(보라카이)로 다녀왔습니다. 5일 정도 다녀왔네요. 숙소도 비싼 곳으로 잡고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신혼집은 역삼동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전세 8,500 이었네요.
강남이라고 뭐 다 비쌀 것 같죠?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역삼 1동 쪽에 발품 팔아 전세 구해보세요. 역삼이나 다른 서울 시내나 별로 다를 거 없습니다.

저희 첫 집도 오래되고 허름한 원룸이었습니다만, 그나마도 돈이 부족하여 아내가 혼수를 위해 모아왔던 돈 3천만원과 합쳐서 구했습니다.
세간은 어차피 원룸이니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카드로 구매하고, 나중에 천천히 버는대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남자가 집을 가져오고, 여자가 세간을 채우고.. 대체 누가 정한 법입니까?
어차피 남는건 우리 두 부부 뿐입니다. 부부는 무조건 같은 편이 되어야 해요.
시댁이나 친정이나 나가는 돈은 모두 우리 부부의 집안에서 나가는 돈 아닙니까?
내 지갑은 아내의 지갑이고, 아내의 지갑은 집안의 지갑이라는 기분으로, 
용돈을 제외하고 모든 금액(제 월급 100 + 아내 월급100)을 모두 아내 통장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거기에서 2년간 살며 한 달에 한 두번 정도씩 치킨도 사 먹는 호사를 누리며 모은 돈이 2천 정도 됩니다.

사실 신혼집에서 좀 더 돈을 모으고 싶었습니다만, 옆 집에 미친놈이 계속 벽을 두드리고 밤낮없이 온 동네에 다 들리도록 쌍욕을 하는 바람에
나름 튼튼하기 짝이없다고 생각하던 제 맨탈이 개발살이 나, 한 두번 나가서 대거리 하다가는 결국 그 곳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무조건 방음 잘 되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조건이 붙고 나니 가격은 올라가고, 위치는 내려가더군요.
결국 역삼까지 출퇴근 편도 1시간 4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까지 내려가게 되었는데.. 이쯤 내려오니 전세 값이나 매매 값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래도 빚 지는게 싫어 계속 버티다가 결국 처음 부른 값 보다 600만원 정도를 깎아 주는 바람에 대출을 4천 정도 받고 아파트를 사게 되었습니다.

포장이사, 인테리어, 화장실 공사... 벽지도 스스로 컨셉을 짜서 주문했습니다. 싱크대도 새로 했습니다.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아래 쪽 수납 공간도
직접 주문하여 밥솥이나 오븐 같은 것이 싱크 위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아래쪽에 배치하는 식으로 제작하였습니다.
돈은 좀 들었지만 그래도 해 놓고 나니 좋더군요.(주문은 한셈 같은 메이커에서 하지 않고 싱크 공장하시는 분께 주문하였습니다. 그게 훨씬 싸요)

내 집이라는건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안정감을 줍니다.
이제 어디로 옮겨다닐 필요도 없고, 다른 곳을 알아볼 일도 당분간 없고, 마음대로 못을 박든 벽에 페인트를 바르든 아무 상관 없이
오롯이 우리 가정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특히 그 개쌍놈이 옆에 없다는게 저를 안정시키더군요. 매번 출근할 때 마다 아내에게 그 놈이 해코지할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었는지...

그리고 얼마 전,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즉시 일을 그만두고(이전에 아이가 잘 못 되었었기에 이번엔 조심하고자...) 수입은 줄어들었습니다.
역삼동 시절엔 남은 돈을 적금에 부었으나, 지금은 남은 돈을 대출 상환에 쓰기 때문에 여유는 더욱 없는 상황이지요.
뭐 하나 사는 것도 조심스럽고, 앞으로 있을 집안의 행사들에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습니다만 저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히 뭔가 사는 취미가 있지도 않고, 그냥 요리하는 취미만 좀 있을 뿐인 평범하고 돈 없는 남징어입니다. ㅎㅎ
사실 요리도 뭐 맛있어 보이는 것은 많은데 가게에서 사서 먹으면 값은 비싸고 양은 적어 직접 만들어 먹어보고자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배 터지게 먹었을 때 감동적이었죠. ㅎㅎㅎ 생크림도 사치라 직접 루를 만들어 우유만 넣고 했는데 맛있었어요.
이제 익숙해지니 비싼 값을 내고 파스타를 먹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드는 파스타만 맛도 알 겸 먹어보는거죠.. 아 이 이야기가 아니지 ㄷㄷ

요는 부부가 쓰는 돈이 적다면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겁니다.
부인도 명품이나 화장품 등에 큰 관심이 없고, 저를 따라 요리를 시작하더니 이젠 쿠키나 파운트 케이크 쯤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 냅니다.
즉, 뭔가 먹고 싶으면 왠만한 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거지요.(믹스는 쓰지 않아요. 박력분 같은건 사지만 나머지는 다 만듭니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살더라도 레토르트나 배달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식자재부터 사용하여 요리를 하면 식비는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돈은 없는데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다면 남 시키지 말고 직접 만들면 된다는겁니다. 
알고보면 요리 정말 쉬워요. 막상 해보면 사 먹던 가격이나 지금까지 뭔가 대단해 보이던 것들이 어이 없을 정도로 쉽습니다.

육아비용 또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가 자라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욱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돈의 30% 정도는 "부모가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맡기고 싶어서" 지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70% 중 50% 이상은 "부모 자신의 허영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내 자식이 편하려고, 내 자식 좋은 옷 입히려고 한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솔직히 애가 그런 걸 알기라도 합니까?
오히려 "나 이런 거 입힌다." "나 이런 유모차에 애 태우고 다닌다.", "나 이런 비싼 학원에 애를 보낸다." 그만큼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위해 정작 아이는 원하지도 않고, 원할 줄도 모르는 그런 일들을 벌여놓고 육아비가 비싸다 핑계 대는게 단 1% 도 없습니까?

사실은 저거 대부분은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돈이 없다면 쓸데 없이 대출 받고 카드 긁지 말고, 내 자식 교육은 내가 최대한 가르치고, 유모차가 조금 불편하고 뽀대 안 나더라도 최대한 활용하고..
그런 식으로 부모가 조금씩 불편해가면서라도 아이를 잘 한 번 키워보겠다는 것이 제 결의이고 각오입니다.

물론 저도 기왕에 하는 거 좋은 것 주고 싶고, 좋은 것 입히고 싶고, 2층 집에도 살면서 사위랍시고 오는 놈들에게 물도 뿌려보고 싶고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건 그냥 자신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드라마가 낳은 환상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허세민들이라고 봅니다.
제 주변에도 "얼마 이상 모아놓아야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운운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일축합니다.
아이는, 제 딸은 어떤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고, 제 가정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할 사람인게 확실합니다.
이제 진짜 가정을 이루려는 이런 마당에, 영어니 유모차니 등록금이니 뭐니가 다 뭐랍니까? 그걸 지금 당장 손에 쥐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돈이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있으면 족합니다. 다다익선이나 없다고 죄 짓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내와 딸과 함께 한 평생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제 사랑과 정성과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그 둘에게 쏟아부을 각오입니다.
그런 제가 돈 없이 아이를 가졌으니 자식에게 죄 짓는 겁니까? 사랑과 시간은 아이에게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 겁니까?
제 부모님이 돈이 없다고 제가 부모님께 무슨 피해를 받았습니까? 전 대학교 때 까지 용돈은 받아본 적이 없지만, 사랑은 충분히 받고 자랐습니다.

인생이야 뭐 다들 그렇듯이 누구에게나 고되고 그렇지요.
부자든 중산층이든 누구든 간에 모두 상대적으로 고되고 그렇습니다. 정말루요.
제 딸도 저나 남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될겁니다. 돈이 얼마가 있든 알아서 잘 살아가게 될거에요.
사짜 직업이니 뭐니 다 X까세요. 제 딸 인생은 딸이 결정하는 겁니다. 저는 결국 딸이 조금 크고 나면 남이 될거에요.
(그래도 딸을 주십쇼 하고 오는 새끼는 일단 죽일거야. 진짜 끝까지 말빨로 검증해주겠어. 피의 인사 청문회를 열어주겠습니다. 알겠냐.)

아... 글이 엄청 길어졌네요. 그래도 뭔가 쓰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그립고 설레는 그런 기분이 좋았네요.
마지막으로 위에 [ 이상 이런 나라에 서민에 자식낳는거 자체가 자식에게 죄 짓는 겁니다. ] 문장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죠.
저 보다 더욱 수입이 적고 힘드신 분들도 모두 아이들 건강하게 기르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십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 저보다 수입이 많은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물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에서 아이가 와 준다면 아이는 더욱 편안하게 클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생활이 어렵다고 해서 나에게 온 아이를 보며 죄책감과 자괴심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다는겁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다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단지 우리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가족에게 사랑과 배려를 더욱 쏟는다면 말이죠.

혹시나 이 기나긴 추억담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좀 더 긍정적인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적어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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