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섬을 떠나는 6인과 제임스 커드 호
바다 위로 올라선 제임스 커드 호는 예견된 시련과 맞닥뜨립니다.
이 시기의 남극은 24시간 중 13시간동안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올라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여행한 16일 동안 맑은 하늘을 본 시간은 불과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보트에 달라붙은 얼음들을 떼어 내야 했고,
수시로 몰아치는 파도 때문에 젖은 침낭은 얼어붙어 보트를 가라앉힙니다.
채 절반도 가지 못해서 결국 침낭 중 2개를 바다에 버리고, 4개의 노 중 2개 또한 같은 이유로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1일 째 되는 날, 섀클턴이 먼 바다에서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을 봅니다.
날씨가 개인다는 희망도 잠시, 그것은 온갖 극지의 날씨를 경험한 섀클턴조차 처음 보는 거대한 파도였습니다.
이틀 후인 5월 9일, 이번엔 거대한 폭풍이 정면에서 몰아닥칩니다.
이 폭풍 때문에 당시 사우스조지아 섬에 정박하던 500톤짜리 선박이 침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출발한 지 16일 만인 5월 10일, 그들은 사우스조지아 섬의 킹 하콘 만에 상륙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할 목적지는 섬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생사를 함께 넘나든 대원 6명 중 2명의 상태는 좋지 못해서 상륙지점에 3명을 남겨두기로 합니다.
물론 나머지 대원들도 정상일 리는 없었습니다.
5월 12일, 이번에도 섀클턴은 2명의 대원들과 함께 직접 나섭니다.
그런데 끝까지 쉽게 보내주질 않습니다.
저들이 지나가야 할 길은 일 년 내내 눈에 덮여있는 5~6개의 가파른 봉우리를 자로질러 가야 합니다.
그에 도전하는 그들의 장비는 도끼 한자루와 난로 하나, 3일분의 펭귄고기와 배에서 떼어 낸 나사못을 밑창에 박아 넣은 신발이 전부였습니다.
높은 산봉우리와 수직 빙벽, 빙하와 설원이 펼처진 사우스조지아 섬의 내륙은 이때까지 지도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즉, 아무도 사우스조지아 섬을 횡단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산마루로 올라갔더니 수직 빙벽이 펼쳐져 다시 내려오기를 수차례,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쳐 나갔습니다.
필사적으로 눈밭을 헤쳐 나가던 새벽 5시, 그들은 바위에 기대어 잠에 빠져버립니다.
결국 여기서 그들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5분 후, 섀클턴은 경이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내고 두 명의 대원들을 깨웁니다.
"30분이나 지났다. 그만 일어나라."
섀클턴은 끊임없이 대원들을 깨워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포기하고 잠들 바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서라도 움직여라!"
아침 7시, 그들은 포경기지에서 들리는 호각 소리를 듣습니다.
살얼음 낀 호수를 지나 1916년 5월 13일 오후 1시, 그들은 191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문명 세계의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섀클턴 이후 섀클턴이 넘어간 산을 두 번째로 넘어간 한 탐험가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섀클턴이 그 산을 넘어간 후 30년이 지난 이야기였습니다.
섀클턴의 귀환 소식은 영국 본토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국왕이 직접 축하 전보를 쳤을 정도였습니다.
섀클턴은 곧바로 구조선을 수배했지만, 당시 전쟁 중인 상황이래 선박 수배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간신히 수배한 배들은 당시 겨울이던 남극의 얼음에 막혀 세 차례나 되돌아와야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구조선은 거의 침몰될 위기까지 놓이기도 합니다.
곧 구조될 것이라 믿었던 일이 계속 실패하자, 섀클턴은 미친 듯이 배를 수배하러 돌아다닙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섀클턴이 섬을 떠나온 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 때 섬에서는, 남은 22인의 대원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똥으로 뒤덮인 바위섬에서는 음식을 저장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 먹다 남은 뼈를 끓여서 섭취하고 조개와 해초를 채취하였습니다.
그들은 남은 배 2척을 뒤집어 창문을 만들고 굴뚝을 달아 생활했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은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부대장인 프랭크 와일드는 날씨가 좋은 날의 아침이면 항상 대원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대장님이 오실 지도 모르니, 모두들 짐을 싸 놔라."
그리고 팀의 기상학자였던 레널드 허쉬는 인듀어런스 호를 탈출할 때 자신이 즐겨 연주하던 벤조를 두고 내렸었는데,
대장이었던 섀클턴이 조용히 그 벤조를 챙겨 그에게 전해 준 이후,
매일 팀원들을 위해 벤조를 연주하였습니다.
떠난 대장의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대장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8월 30일의 점심 식사 시간, 대원이었던 마츤과 헐리는 해안가에서 조개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마츤이 헐레벌떡 오두막으로 달려오며 외칩니다.
"배가 왔다!!"
출구를 가린 천이 찢어지고, 비좁은 보트 오두막 안에서 출구로 나가지 못한 대원은 벽을 부수고(?!) 뛰쳐나갔습니다.
갑판 위에 서 있던 사람은 그들의 대장, 섀클턴이었습니다.
섀클턴은 배가 도착하기도 전부터 대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전원 무사한가?"
"전원 무사합니다!"
1914년 12월, 마지막으로 문명 세계를 떠나 온 대원들은
1916년 8월까지 혹독한 남극에서 단 한명도 죽지 않고 모두 무사 생환에 성공합니다.
"나는 섀클턴이 그런 보잘것없는 장비로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탐험을 포기했거나,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용기와 결단력과 리더십은 위대하다.
조금만 더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는 남극점 정복과 남극대륙 횡단을 이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 인류 최초의 남극점 정복자 로알 아문센 -
"1914년 남극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내 일처럼 생생했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극단의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탈출해 나온 섀클턴 경의 리더십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 엄홍길 대장 -
이후 섀클턴이 죽은 후, 그는 그의 극적인 탈출을 성공한 장소, 사우스조지아 섬의 그리트비컨에 묻힙니다.
허쉬가 그의 장례식에서 벤조를 연주하여 그를 애도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한곳에서, 1년 반에 가까운 조난 상황을 겪었음에도, 아무도 죽지 않았던 놀라운 이야기는
'조난당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출되는' 모든 창작물이 영감을 받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오마쥬되기도 했지요.
이 글을 보시는 오유인 여러분들도 많은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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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링크
출처 :
엔하위키 미러 - 어니스트 섀클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