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픽션보다도 위대하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공적인 실패(very successful failure)'로 알려진, 28인의 섀클턴 탐험대의 기적적인 귀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어질 때,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은 듯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영국 지질학자인 레이먼드 프리슬리가 했던 말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나는 아문센, 섀클턴, 로버트 스콧 세 사람을 모두 만나보고 같이 일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각자 특징이 있더군요. 우선 스콧은 과학탐사대를 이끌 대장으로서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겁니다.
다음 아문센은 빠른 움직임과 꼼꼼한 준비로 전문적인 속전속결 탐험대장으로 누구도 따르지 못하죠.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면 무릎을 꿇고 신에게 섀클턴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Sir Ernest Shackleton (1874~1922)
1914년 8월, 28인과 68마리의 개로 구성된 섀클턴 탐험대가 영국을 떠납니다.
그들의 목적은 '남극 횡단'
1911년 12월에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영국인 스콧에 앞서 남극점을 정복하자,
자존심에 타격을 입은 영국은 또 다른 '최초'의 타이틀을 위해서
아문센이 성공하기 전까지 남극점에 가장 가까이 도달했던 인물(남위 80도 23분)이었던 섀클턴에게 최초의 남극 횡단을 의뢰하고,
섀클턴은 탐험대를 모집하기 시작합니다.
인원 모집:
'적은 보수, 혹한의 추위, 몇 개월간 지속되는 암흑, 상시하는 위험, 안전한 귀환을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여정.
성공 시 영광과 명예가 보장됨.'
당시 섀클턴이 신문에 낸 인원 모집 광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탐험대를 싣고 출발한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 호' 입니다.
인터스텔라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죠?
그렇게 출발한 인듀어런스 호는 1915년 1월, 남극 웨들 해에 진입하여 상륙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남극은 우리와 계절이 반대지요) 급격하게 발생한 얼음에
인듀어런스 호는 갇혀버리고 맙니다.
선원들이 얼음에 올라 축구를 하는 모습입니다.
괴..굉장히 긍정적이네요.
멀리 얼음에 갇힌 인듀어런스 호가 보입니다.
주위에는 얼음 위에 올라와 쉬는 바다표범이나 펭귄들을 잡아 식량으로 삼을 수 있었기에,
비록 갇혀있었지만 상황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1월부터 11월까지 갇혀있어야 했고,
남극의 봄이 되자 얼음이 녹으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얼음이 녹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움직이게 된 얼음들은 인듀어런스 호를 압박하여 부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이제 섀클턴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배를 버려라!"
선원들은 최소한의 개인 짐만을 챙긴 후, 배에서 내려 얼음 위에 내려와야 했습니다.
11월 21일, 인듀어런스 호는 결국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11월, 남극은 점점 여름이 되어가고, 얼음은 조금씩 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탐험대는 그 얼음 위에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무사귀환이다."
섀클턴은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탐험대장이었습니다.
남극점을 정복하고도 무사귀환에 실패한 스콧 등 당시 명예를 위해 무리한 도전을 하다 실패하는 경우는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엔 대장들이 부하를 희생하여 명예를 취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섀클턴은 그러한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배에서 급하게 내리면서 그들은 침낭을 챙겨왔습니다.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유일한 안식처였죠.
28개 중 18개의 침낭을 제외한 나머지 10 개의 침낭은 상당히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섀클턴이 말합니다.
"우리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를 통해 침낭을 분배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침낭의 분배가 끝난 후였습니다.
"대장님, 이 제비뽑기는 조작된 것 같습니다!"
선원들이 하나 둘씩 눈치채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섀클턴은 그들의 의견을 무시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새클턴과 부대장을 포함한 간부들의 침낭은 모두 질이 나쁜 침낭이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따뜻한 질 좋은 18개의 침낭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조각배 세 척을 끌며 육지 방향으로 행군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풀리는 날씨에 갈라지는 얼음들은 그들을 계속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올라있던 유빙은 점점 육지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1916년 3월, 그들이 얼음에 갇힌 지도 150일이 지났습니다. 섀클턴은 마지막 썰매견을 잡았습니다.
4월 8일, 그들이 장만한 캠프가 있던 부빙이 갈라지고, 그들은 세 척의 조각배를 바다에 띄웁니다.
그들을 가둬 두었던 지긋지긋한 얼음을 벗어난 기쁨도 잠시뿐이었습니다.
거센 물의 흐름, 여기저기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들과 악전고투를 벌이게 됩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올라선 부빙이 갈라지며 한 대원이 침낭째로 바다에 빠지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간신히 구출되긴 했지만, 이미 선원들은 피로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작은 조각배로 바다와 싸운 탐험대는 엘리펀트 섬의 발렌타인 곶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무려 497일 만의 육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륙한 엘리펀트 섬은 온통 펭귄들의 똥으로 뒤덮인 곳.
약간의 바다표범과 펭귄들을 제외하고는 식량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필사적으로 얼음 위를 탈출하는 동안,
어느 새 남극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누가 이런 곳에 오기나 하겠습니까.
구조선이 올 가망조차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4월 20일, 섀클턴은 또 한번의 결단을 내립니다.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가서 구조선을 부르겠다. 나와 함께 갈 대원들의 지원을 받겠다."
당시 사우스조지아 섬은 유인 포경기지가 있던 곳입니다.
거리상으로 가까운 남아메리카 쪽으로 가려면 역풍과 싸워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냐고요?
초록색 선이 인듀어런스 호가 가라앉은 후 탐험대의 이동 경로입니다.
파란색 선이 섀클턴이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가는 경로입니다.
저 거리는 1300km가 넘습니다. (서울-부산이 412km입니다.)
뭐 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조각배를 타고서 가겠다고 하는 것이라는거죠.
가는 도중엔 작은 섬조차도 없습니다.
자그마한 돛 이외의 동력원이라곤 노 젓는 것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가 지나갈 바다는 겨울의 남극해입니다.
초속 30m를 넘나드는 바람이 상시 불어대고, 20m에 달하는 풍랑이 몰아칩니다.
하지만 섀클턴의 솔선수범에 감격한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지원합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들의 손으로 저들을 죽이는 셈이다. 반드시 살아서 성공한다."
섀클턴은 결국 자신이 직접 선발한 다섯 명의 대원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엘리펀트 섬에 남겨진 대원들을 이끌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에게 말합니다.
"한 달 내로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면 자력으로 탈출하라."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명령을 남긴 채 섀클턴과 다섯 명의 선원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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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작성해두지 않고 써보는 글이라 분량조절에 실패했네요 ㅠㅠ
두 편에 나누어서 작성해야겠네요.
2부 링크
출처 :
엔하위키 미러 - 어니스트 섀클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