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주 : ‘임형철의 아시안컵’은 2015 호주 아시안컵이 진행되는 1월 9일부터 31일까지 작성되는 아시안컵 특집 칼럼입니다. 실시간 경기 소식과 대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다음날 있을 주요 경기들의 프리뷰까지 ‘임형철의 아시안컵’과 함께하세요!
한국 팬들이 기대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결승 상대가 결정되는 호주와 UAE의 준결승전에서 어느 팀이 승리하건 간에 두 팀 모두 연장전까지 오래 뛰며 많은 체력을 소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호주와 UAE의 경기는 전반 14분 만에 모든 승부가 갈린 듯했다. 경기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인 호주는 몸이 무거운 UAE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며 이른 시간에 두 골을 터트려 승부를 결정지었다.
(사진 출처 : 마이데일리)
- ‘수트라이커’들의 맹활약. 호주는 수비수도 견제 대상이다.
첫 번째 골은 전반 3분에 터졌다. 팀 내 최다 도움을 기록 중인 마시모 루온고가 올려준 코너킥을 트렌트 사인스버리가 헤딩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기록했다. 두 번째 골은 11분 뒤에 터졌다. 호주의 공격수들과 UAE의 수비수들이 동시에 몰려들어 혼선이 발생한 상황에서 루온고가 몸을 던져 넘겨준 패스를 제이슨 데이비슨이 왼발로 마무리해 점수 차를 벌렸다. 호주는 전반 14분 만에 두 골을 넣어 상대 선수들의 의욕을 꺾어버렸고, 이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가며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이날 UAE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선수들은 놀랍게도 모두 수비수였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 골을 기록한 트렌트 사인스버리는 호주의 중앙 수비수고, 제이슨 데이비슨은 왼쪽 측면 수비수다. 이 두 선수는 UAE를 상대로 골을 기록해 호주의 수비수들도 충분히 상대를 위협할 만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골을 기록한 선수들 이외에도 호주에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언제든지 상대 골문을 위협할 수 있는 중앙 수비수와 기습적인 오버래핑으로 문전 앞까지 침투할 수 있는 공격적인 측면 수비수가 많다. 수비수들의 기습적인 한 방이 승부를 뒤집어 놓는 경우도 많은 만큼, 호주를 결승에서 맞이할 한국은 ‘수트라이커’로 불리는 호주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도 신경 써야 한다.
(△ 케이힐은 지칠 걱정이 없어보인다. 나오는 경기마다 이른 시간에 승기를 잡아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결승 상대 호주, 너무 쉽게 올라왔다.
그런가 하면 호주는 UAE를 상대로 이른 시간에 점수 차를 벌려 큰 무리 없이 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다. 물론 한국도 이라크를 상대로 2:0으로 승리를 거둬 연장전은 피했지만, 호주를 상대한 UAE의 경기력은 한국을 상대하던 이라크에 비해 훨씬 무기력했다. 이미 8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치른 뒤 승부차기를 통해 승부를 가렸던 UAE의 선수들은 체력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해 선수들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UAE의 미드필더는 공수 양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했다. 호주 선수들이 전방으로 돌진하며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동안에도 UAE의 선수들은 자기 진영으로 복귀하지 못해 수비수가 공격수들보다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저항을 덜 받게 된 호주 선수들은 손쉽게 상대 수비수를 제친 뒤 슈팅 기회를 잡기가 쉬웠고, 두 골을 넣은 뒤에는 공격수들이 한 템포 쉬어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두 골을 허용한 UAE는 골이 시급해진 상황에서도 상대를 밀어붙일 만큼의 공격력을 보이지 못해 호주는 긴장할 것 없이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가며 준결승전을 마쳤다.
흔히 토너먼트는 체력 싸움으로 비유된다. 토너먼트의 무리한 일정을 견뎌내고 다음 무대에 올라온 두 팀 중, 체력 관리를 더욱 수월하게 펼친 팀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말대로라면 호주는 결승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훨씬 높여놓은 셈이다. 14분 만에 승부를 결정지으며 결승전에 뛸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호주는 8강전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후반전에 두 골을 넣어 승리를 거두며 연장전까지 가는 것을 피했다. 한국보다 결승까지 올라오는 길이 수월했던 호주는 한국보다 체력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됐다.
(△ 그래도 그들은 UAE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 사진 출처 : 뉴시스)
- 19년 만에 준결승, UAE의 돌풍은 여기까지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UAE는 돌풍의 팀으로 불렸다. 오마르 압둘라흐만과 알리 맙쿠트, 아흐메드 칼릴이 구성한 공격수 삼각편대의 활약은 굉장했고, 특히 ‘양질의 배추 머리’라는 별명을 얻은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인기는 상당했다. 또한, 일본과의 8강전에서는 120분 동안의 밀집 수비로 1실점만을 허용해 승부차기 끝에 준결승에 오르게 됐다. 19년 만에 준결승 무대를 밟게 된 UAE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어디까지 돌풍을 이어갈 지도 많은 팬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UAE의 돌풍은 여기까지였다. 8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모든 전력을 쏟은 끝에 지친 체력을 회복하지 못해 다음 경기에 제 컨디션으로 임할 수 없었다. 팀의 에이스인 오마르 압둘라흐만만 경기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고군분투했지만, 패스를 받으러 오는 동료 선수의 움직임이 부족했고, 패스를 받을 때에도 지친 체력으로 인해 볼터치가 길어지면서 금세 상대 선수들에게 볼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오랜 장벽을 깨고 어렵게 준결승에 진출한 UAE의 선수들이 조금 더 체력적인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호주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임형철 칼럼 / 페이스북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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