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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9-6)
게시물ID : lovestory_951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4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4/04 10: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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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9. 귀향(7)



 김중은 엄청난 돈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임정에 보내려 마련해 두었던 돈에 유도운과 한서열에게 빌린 거금이 더해졌던 것이다.

 원래가 왈패로 같은 고리대금업자 밑에서 수금을 해주고 구전을 뜯어먹고 살던 유가와 한가는 왜놈 세상이 되자 약삭빠르게 왜말을 익혔다. 왜놈들 앞잡이 노릇에 열심을 다해 계획했던 대로 식산은행에 동앗줄을 달았고, 담보도 없이 저리로 대출을 받아 사채놀이를 시작해 땅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긁어모았다. 악행이 하늘을 찔렀다. 푼돈에 딸을 빼앗긴 부모가 부지기수였고,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도 열 손가락으로 모자랐다. 날이 갈수록 더욱 돈을 갈퀴질한 유가와 한가는 여러 부왜단체에서도 직함을 얻어 유지행세를 하고 사는 중이었다. 

 김은 유가와 한가에게 수공이 내놓은 논은 전부 일등호답이라 빨리 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버리니 은행에서 빌리느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백만원 가까운 돈을 은행에서 빌린 이자보다 2부를 더 주기로 하고 빌렸던 것이다. 유가와 한가로서도 손해가 아니었다. 남겨먹을 수 있는 이자율은 낮았지만 거금이었고, 떼일 염려 또한 없었다. 더욱 의심을 못했던 이유는 지금까지 독립자금을 용이하게 전달하기 위한 통로로서의 사업체를 운영하던 때에도 사채를 쓰지 않던 김이었지만 현재는 다른 사업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은 이 돈이 건국연맹에서 요긴하게 쓰이리라 믿었고, 자신이 내는 마지막 독립운동자금이 되기를 바랐다. 아내에게도 아무런 귀뜸을 하지 않았다. 혹여 일을 그르칠까 염려가 됐던 것이다.

 그림자 둘이 김의 방문 앞에 멈춰섰다. 나머지 다섯 그림자는 안채로 향하고 있었다. 과객들이 묵는 별채에는 현재 아무도 없음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문을 열어라!”

 나직한 왜말이었다. 김은 조금 두려웠다. 알고 있으니 살살 해달라고 그럴 수도 없었다.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문을 열라고 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림자들이 문을 잡아 당겼다. 김은 문고리를 걸어놓고 있었다. 서너번 문을 당겨보던 그림자들이 문을 발로 찼다. 우지끈, 하고 방문이 부서졌다.

 “웬눔들이고!”

 김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바가야로 조센징, 문을 열라는데 말이 많아!”

 “이 왜눔으 소상들!”

 김은 그림자들에게 있는 대로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그림자들이 김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머슴 둘과 죽기살기로 덤비려는 강성종의 아내를 간단히 기절시킨 다른 그림자들은 여기저기를 뒤졌다.

 “이 왜눔으 소상들아, 어디서 강도질이냐, 능지처참을 시킬 눔들!”

 김은 얻어맞으면서도 바락바락 대들었다. 돈궤는 이미 잘 보이게 열어놓고서였다. 워낙 결사적으로 덤비자 그림자들은 아직 전달이 안 된 것이 아닐까,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실제 같이 행동하라는 지시를 따르기 위해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래도 차마 얼굴은 건드릴 수 없어 주로 팔이며 다리에 공격이 집중됐다. 김의 아내는 강도들이 들이닥치자 바로 까무라치고 말았다. 

 그림자들은 서둘러 김의 집에서 현금과 패물 등을 싹 걷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이른 아침에 포박에서 풀려난 김은 그길로 입원을 했다.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남편의 처참한 모습을 본 김의 아내는 또 한번 까무라쳤다.

 사태를 보고 받은 경주경찰서장 야마구치가 고등계 계장 마사오를 불렀다. 강도사건보다도 안가의 죽음이 서장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안가가 김의 집앞 솔밭에서 피칠갑에 똥범벅이 되어 꽁꽁 언 채 죽어 나자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

 “어떻게 된 거냐고, 새끼야?”

 서장이 책상을 쳐도 고개를 떨군 계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는 것이 없으니 할말이 있을 리 없었다.

 “다께다 그놈에게 잠복근무를 시켰나?”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적 없습니다.”

 마사오는 황황하게 손을 내저었다. 안가는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서 잠복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새끼는 거기서 죽어 자빠져 있냔 말이야, 사람 환장하게?”

 “그게......”

 “그게 뭐야?”

 “그 강도놈들이 올 걸 미리 알고 있었거나......”

 서장이 계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제깐놈이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안단 말이야? 나도 모르는 그런 정보를.”

 “요즘 워낙 여기저기서 강도 사건이 터지고 하니까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하고......”

 “그래, 그건 말이 좀 되네. 그래서 공을 독차지하려고? 바가야로 조센징놈, 저 혼자서 그 무지막지한 놈들을 잡으려고? 죽을 줄도 모르고 욕심은 많아 가지고. 바가야로오! 바가야로오! 내가 경무국장이 되면 조센징놈들은 다 모가지야! 그나저나 골치 아파 죽겠네. 여우같은 김가놈에게 뭐라고 하지. 환장하겠구만!”

 광분해서 날뛰던 서장은 머리를 감싸고 앉으려다가 벌떡 일어섰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김에게 가 봐야 했다.

 김은 눈물이 찔끔찔끔날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생각을 공굴리고 있었다. 그자들이 정말 의열대가 맞을까. 정말 의열대가 맞다면 너무하다 싶었다. 아무리 진짜 같이 한다고 해도, 그리고 자신이 끝까지 대들었다 해도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팰 수가 있단 말인가. 진짜 그들이 왜놈 강도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많은 돈과 패물들은 엉뚱한 놈 좋은 일 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의문은 또 하나 있었다. 안가놈은 왜 거기에서 저승길로 간 것인가. 안가놈을 죽인 것이 그들이 맞을까.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 죽였을까.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던 김은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안가놈이 자신을 감시해 오다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상부의 지시든지, 아니면 무시를 당해 온 것에 앙심을 품은 것이든지 둘 중에 하나였다. 자신에게 손님들이 온다는 정보가 새어나갔을 리는 결코 없었다. 그랬다면 어떻게 혼자만 와 있었겠는가. 예상을 하고 지켰다는 것도 맞지 않았다. 연이어 부왜 거물들이 강도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도들이 자신에게 오리라는 예측을 어떻게 했을 것인가. 어쨌거나 백번 죽어 마땅한 안가가 저승귀가 됐다는 사실 하나는 통쾌했다. 문제는 아직 강도들이 의열대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로 연락이 올 때까지는 답답한 속을 풀 방도가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병실로 들어온 서장은 온몸을 붕대로 감은 김중을 보는 순간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강도라고 해도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까지 상하게 만드는가, 싶었다.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회장이나마나 내가 시방 괜찮아 보이요? 무신 헛소리를 하고 있노? 그라고 도대체 순사들은 머 하고 있는 거요? 그 숭악한 눔들이 언제버텀 설치고 댕기노 말이다. 그란데 안직 그눔들 한나 몬 잡고...... 그래가 나라 녹을 무도 되는 거요?”

 김은 누운 채로 고함을 버럭버럭 질러댔다. 서장이 오자 잊었던 통증이 되살아나면서 화가 치솟고 있었다. 아직 그들이 의열대인지 아닌지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더욱 화를 돋구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 카머 다요? 그 화적눔들이 내 수공이가 내놓은 논 살라고 빌린 돈도 110만 원이나 빼앗아 갔소! 패물도 그거보다 적지도 않을 거요. 이 재산은 우짤 거요? 그라고 화적눔들을 잡을라머 지대로 잡아야지 그기 뭐요? 순사라 카는 기 화적눔들인테 칼이나 맞아 자빠라지고......”

 “그게 아니라......”

서장은 정말 난처해지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바가야로 조센징놈! 서장은 속으로 안가를 향해 갖은 욕을 다 퍼붓고 있었다. 김은 그 방향으로 더욱 고삐를 죄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감시당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었다.

 “정보를 알았으머 지대로 잡아야지 그기 뭐요?”

 “그게 아니라......”

 그렇다고 서장 자신의 입으로 다께다가 김을 감시하기 위해 갔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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