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상경해 서울생활3년차..
고단한 서울생활에 지쳐 주말에 짬을내 2박4일 창원에 내려갔다.
고향에서 만나는 익숙한 풍경과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아 고양이도♥)
시간가는 줄모르고 먹고 웃고 떠들다 금세 다시 서울로 가야할 시간이왔다.
떠나기아쉬운마음에 심야막차를 끊고 부모님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데.. 집떠나사는사람은 알것이다. 어느새 위용량 120퍼까지 꽉꽉채우게 하는 집밥의 위엄을..
오랜만에 과식을 한탓에 오랜만에 식곤증을 느끼며 차시간전까지 난 눈을붙혔다. 이순간이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줄지 꿈에도 모른체..
고양님의 암살시도에 눈을떳을땐 아뿔싸! 당장 버스정류장으로 가도 될까말까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첼린저급 서폿팅으로 나는 버스시간 5분을남기고 가까스로 버스를 탈수있었다. 그렇게 차가 출발하고
1분후..
나는 앞으로 펼쳐질 지옥도를 직감하였다. 위에 120퍼센트까지찼던 저녁은 자는동안 음식물찌꺼기가 되어 직장행 고속도로를 타고있었다.
2분후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모든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하고있었다.
저에게 시련이 닥쳐올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이 시련이 느리게 오게해주십시오.. 휴게소까지 2시간이 남았을때의 이야기다.
10분후
신은죽었다-니체
안내방송이 나왔다 열차가 전역을 출발하였으니 승객여러분들은 대기하여 주십시오 다음역은 항문 항문행입니다.
막느냐 뚫리느냐.. 창과방패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30분후
지금까지 날치무리떼의 쉴세없는 공격을 받고있었다면 이번엔 조금 큰놈이 찾아왔다. 돌고래 정도 되는놈이었다
하지만 장거리 고속버스에 수년간 단련된몸
재빠르게 밸트를 풀고 바짓단추를 푸는것으로 가볍게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휴게소 까지 1시간 30분.. 남은시간은 길었다.
40분후
날치무리때가 돌고래무리로 바꼈다. 이고통을 감당하기위해서는 잠을자는것이 최고의 선택이지만 이미 잠을 푹자고와서 전혀잠이오지않았다. 대안으로 올라와서 다시 일할생각을하니깐 돌고래들마저 풀이죽은듯하였다. 이기세를몰아 전에봤던 인터스텔라의 내용을 곱씹으며 다짐하였다. 지금 이 고통도 해결될것이다 늘그래왔듯이..
1시간 20분 후
GPS를 켜서 휴게소까지와 남은거리를 보기시작한게 이쯔음인것같다
돌고래때의 습격은 계속됬고 잠은 도저히 잘수없는지경에 다다랐다.
최대한 정신을 돌리기위해 가장슬픈 노래 10곡을 골라서 가사를 하나곱씹으며 따라불렀다.
1시간 45분후
휴게소 표지판이 보이기시작하자 돌고래때는 어디가고 크릴새우때로 바꼈다. 할렐루야.. 내기도가 이제야 통했나싶었다. 하지만 크릴새우는 좋은먹잇감이었다. 먹이냄새를 맡은 고래무리가 찾아왔다..
1시간 55분후
해 뜨기전이 가장춥고, 똥은 바지내리기전이 가장마렵다. 이순간은 마인드컨트롤이 즁요하다. 줄곧보아오던 GPS를 껐다. 눈을감았다. 그저생각하였다..
1시간 59분후
이미 외투는벗어놨고 벨트는 풀어놨다 휴게소 도착을알리는 노랴가너오자마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준비는 끝났다.
휴게소도착..
이것은 수고한나에 대한 신의 보살핌인가 아니면 신의장난인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오는 가스한줌.. 화장실까지 달리기는 필요없었다.
변기에앉아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그녀석을 조우할시간이다. 왠지 아쉽기도 했지만 가차없이 변기에앉았다. 과연 묵직한놈이었다
그후
모든건끝났다. 내옆자리에서 자는 아저씨의 코골이마저 나에겐 자장가같았다 나도모르게 눈이감겼다..
눈이떴을땐 이미 서울에 도착한상태 여명이 트고있었다.
집으로가는 지하철을 타며 짧았지만 길었던 한밤중사투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