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주 : ‘임형철의 아시안컵’은 2015 호주 아시안컵이 진행되는 1월 9일부터 31일까지 매일매일 작성되는 아시안컵 특집 칼럼입니다. 실시간 경기 소식과 대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다음날 있을 주요 경기들의 프리뷰까지 ‘임형철의 아시안컵’과 매일 함께하세요!
큰 이변 없이 예상대로 흘러갈 것만 같던 아시안컵은 8강전에서 이변이 속출했다. 이라크와 UAE를 상대한 우승 후보국 이란과 일본이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대회 조기 탈락이 확정된 것이다. 준결승에서 이란을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한국의 축구 팬들은,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를 만나게 되어 최악의 상대는 면했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이란 공포증’ 한국, 최악의 상대 면했다.
손흥민이 두 골을 넣으며 우즈베키스탄을 연장전에서 침몰시킬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준결승 상대가 이라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많은 이들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있던 8강전에서 이라크는 보란 듯이 이란을 꺾으며 준결승에 올랐고, 이는 한국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한국은 ‘이란 공포증’을 앓고 있다. 오랜 시간 아시안컵에서 이란을 만나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간 적이 없었고, 이란의 늪에 빠져 대회의 최종 성적까지 피해를 본 적이 많았다. 심지어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윤빛가람의 결승골로 1대 0 승리를 거둔 뒤부터는 세 차례의 맞대결에서 모두 0대 1로 패하며 최근 전적에서도 3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이란을 피한 한국은 분명 최악의 상대를 면했고, 이는 행운이 작용한 결과였다.
- 전력과 체력 모두 열세에 놓인 이라크, 정신력으로 버텨야….
이라크는 분명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에 놓여있다. 2007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의 우승 멤버는 이제 1명(유니스 마흐무드)만이 남아있다. 연령별 대표팀 대회에서는 선전했지만, A 대표팀은 아시안컵 이전까지 오랜 시간 부진에 빠져 승리하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기에 이라크는 체력에서도 열세에 놓여있다. 8강전에서 이란과 연장 120분까지 혈투를 펼친 뒤, 승부차기 끝에 겨우 승리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우즈벡을 상대로 120분 연장 승부를 펼쳤지만, 연장 전반이 끝날 즈음 첫 골이 터지며 체력 소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고, 심지어 이라크보다 하루를 더 쉬기도 했다. 한국을 상대하는 이라크는 분명 객관적인 전력과 체력에서 열세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라크는 이란과의 경기에서 강한 정신력을 보였다. 메르다드 푸라디가 이른 시간에 당한 퇴장으로 이란이 자멸하긴 했지만, 이라크는 이란보다 전력에서 열세에 놓였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이란의 골문을 노린 끝에 3대 3의 점수를 만들었다. 보통의 정신력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우승 후보국인 이란을 꺾으며 이변을 연출한 이라크 팀의 사기는 분명 올라있다. 이는 팀 전체의 정신력을 더욱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낳는다. 전력과 체력에서 열세에 놓인 이라크는 정신력만큼은 우세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정신력은 또 다른 이변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 연령별 대표팀까지 포함해 한국은 최근 이라크를 만나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 사진 출처 : 풋볼리스트)
- 한국의 숙적? 이라크의 또 다른 모습
이라크는 분명 이란에 비해 수월한 상대고, 전력과 체력에서도 상대가 열세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기 전 예상일 뿐, 실제 그라운드에서 펼쳐질 경기에서는 절대 방심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이미 이라크는 여러 대회에서 중요한 길목마다 한국을 만나 우리에게 아픈 기억을 자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2007 아시안컵에서 이라크는 한국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며 결승 진출에 성공해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또한, 2013년에 열린 U20 월드컵에서도 3:3의 점수를 만든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를 거둬 한국을 탈락시켰다. 작년에 열린 U22 아시안컵에서는 한국을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듯 한국은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포함해 최근 들어 중요한 길목에서 이라크를 만나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 이라크 선수들은 분명 한국을 상대로 기분 좋은 기억이 많았음을 인지하고 있고, 이는 선수들의 강한 자신감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를 상대하는 한국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 야세르 카심의 결장, 이라크엔 불안 요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이라크엔 걱정이 있다. 중원의 핵심인 야세르 카심이 경고 누적으로 준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해 전력에 큰 누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야세르 카심은 뛰어난 활동량으로 공수양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팀 전력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수다. 때에 따라 문전을 향해 직접 돌파하며 득점을 노리는 모습이 위협적이기도 하다. 조별예선과 8강전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며 팀의 중추를 맡았던 카심의 결장은 준결승전을 앞둔 이라크에 큰 불안 요소다.
(△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게 된 야세르 카심. 그는 이라크의 조별예선 첫 경기인 요르단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이라크 맞은 한국, 결승 진출을 위한 공략법은?
이라크는 이란을 꺾고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이 경기에서 몇 가지의 불안 요소를 남겼다. 첫 번째 불안 요소는 이란에 실점을 내준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라크의 수비진은 이란 선수들을 제대로 틀어막지 못하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만 2실점을 내줬다.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상태였고 이란이 세트피스에 막강하다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세트피스에서 힘없이 2실점을 내줬던 장면은 이라크에 불안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실점 장면 이외에도 이란의 크로스를 막는 과정에서 이라크의 수비진은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했고, 상대 선수에 대한 대인 방어도 펼치지 못해 불안하게 경기를 운용했다.
또한, 이라크는 이란의 메르다드 푸라디가 퇴장당하기 전까지 이란에 밀리고 있었고, 이란의 핵심 선수인 아슈칸 데자가에 대한 수비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데자가에 대한 수비는 이란을 상대하는 팀들이 많은 준비를 해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라크는 데자가가 마음껏 오른쪽 측면을 누비는 동안에도 별다른 대비를 하지 못했다. 이는 이란에 선제골을 내준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수비는 분명 불안하다. 이 문제는 다음 불안 요소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불안 요소는 이라크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다. 평균 연령이 너무 높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이라크 선수들은 너무 어린 선수들이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어 경기의 흐름이나 분위기에 따라 팀 전체가 휘둘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라크의 주전 골키퍼인 잘랄 하산만 보아도 91년생으로 외국 나이로는 이제야 23이다. 그는 이란의 푸라디와 맞붙는 과정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골키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하산 골키퍼는 평정심을 잃은 채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했고, 팀 동료가 다가와 급히 하산 골키퍼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정도였다.
하산 골키퍼 이외에도 이라크의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라크를 상대하는 한국은 상대 팀의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대가 분위기에 따라 평정심을 잃고 흔들릴 수 있게끔 유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기 흐름을 절묘하게 지배하여 상대 선수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거나 적절한 심리전을 통해 상대 선수들을 자극하면서 상대가 우리의 도발에 걸려들게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다면 상대를 더욱 수월하게 공략할 수도 있다.
(△ 경기 중간 중간 혜성같이 등장할 가능성이 큰 유니스 마흐무드. / 사진 출처 : 스포츠투데이)
이란전에 보여준 이라크의 불안 요소는 이와 같다. 한국은 이라크의 불안 요소를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해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두 공격수 아흐메드 야신과 유니스 마흐무드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아흐메드 야신은 기회가 열리면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선수로 공간이 생길 때마다 우리의 골문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유니스 마흐무드는 2007 아시안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 중, 유일하게 팀에 남아있는 선수로 이라크 팬들의 존경을 받는 팀의 주장이다. 어린 선수들을 리드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그는 존재만으로 이라크 축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 나이로 33인 마흐무드는 이란과의 경기에서 연장 전반에 골을 기록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팀이 어려운 상황마다 노련함을 살려 영웅 같은 활약을 펼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
(△ "우승을 위해선 이라크부터 넘는 것이 우선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다. /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우리의 라이벌인 이란과 일본은 8강전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대회 조기 탈락이 확정됐다. 우리 역시도 이변의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라크는 이란보다 쉬운 상대고, 이라크를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일 수 있지만, 결코 상대를 얕봐선 안 된다. 한국은 1988년 이후 6회 연속으로 아시안컵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결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인 이라크와의 경기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다. 쉬워 보이는 상대일수록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 더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신중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1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그리고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이라크전부터 승리를 거둬야 한다. 이라크전의 승리로 아시아 정상을 향할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길 기원한다. (임형철 칼럼 / 페이스북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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