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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
게시물ID : lovestory_950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1
조회수 : 16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3/07 1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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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에게 드리는 꿈 

    9. 귀향(3) 
 보름이 가까웠다. 달이 있어 집에 다녀오는 길이 조금은 쉬울 터였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경주역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중절모를 더 깊숙이 눌러썼다. 콧수염을 붙였다고는 해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다. 경주고보에서 4년 남짓 영어를 가르치면서 학생조직을 지도했던 것이다. 
 삼십 리라지만 인적이 없는 산을 골라 타야 하는 길은 멀었다. 주위를 살피면서 걷는 산길인지라 단련될 대로 단련된 그의 걸음으로도 한 나절이 걸렸다. 어디에서나 조심해야 했지만 고향 근처에서는 누구의 눈에 띄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내북 뒷산에 당도했을 때는 아직 해가 좀 남아 있었다. 그 산은 그의 집안 선산이기도 했다. 동네 고샅길을 마을 사람들 몇이 오가는 게 보였다. 거기에서 그의 집은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곧장 조상들과 할머니,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잡았다. 그런데 할머니의 무덤 왼편과, 아버지의 무덤 오른편이 비어 있었다. 그곳은 할아버지, 어머니가 묻힐 자리였다. 그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는 뜻이었다. 무사하리라 애써 믿고 싶은 마음에 집안의 안위를 알아보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서대로 조상들의 무덤에 절을 하고,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추웠다. 칼바람이 수시로 옷을 뚫고 들어왔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고 생각하니까 그깟 추위와 배고픔쯤은 견딜 만했다.
 그는 택견을 포함한 격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다위와 골리아' 이야기를 하면서 돌팔매질도 연마하도록 했다. 대구에서 고보를 다니던 시절에는 내내 친척집에서 이십 리가 넘는 학교까지 뛰어서 다녔고, 열심을 다해 유도와 검도와 권투도 배우고 익혔다. 야구부에서는 투수였다. 그런 것들이 탁월한 체력을 만들어 준 밑거름이 되었다. 
 독립군 장교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왜놈 군대를 쓸어버리는 상상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몸 자체를 무기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전투란 것이 어떻게 전개될 지 어떻게 알겠는가. 백병전을 치르지 말라는 법이 어딨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을 제거・제압하고 전투에서 승리해야 유능한 군인이 아닌가. 
 실전과 연습은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힘없는 애들을 괴롭히는 놈들과는 일부러 시비를 걸어 싸웠다. 싸움이 거듭될수록 요령도 생기고 더욱 강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는 그의 적수가 없었다. 선배라도 불량한 놈은 그에게 안 맞은 놈이 없었다.
 3학년이 돼서는 왜놈 불량배들과 붙어보고 싶어 시내로 진출했다. 기모노를 입은 세 놈이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덩치도 그 보다 훨씬 크고, 싸움깨나 해봤을 놈들이었다.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는 버거울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 공깃돌 보다 조금 굵은 돌 다섯 개를 공깃돌마냥 항상 가지고 다녔었다. 열 걸음 안쪽이라면 눈・코・입 어디라도 정확하게 맞힐 자신이 있었다. 총을 가진 놈과도 붙어 보고 싶던 때였다. 돌 두 개에 두 놈이 거의 동시에 코와 입을 싸쥐고 나뒹굴었다. 덩치가 제일 큰 나머지 한 놈이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덤벼들었다. 날아오는 주먹을 피해 무릎으로 낭심을 찍어 버렸다. 그놈은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그놈들은 그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고, 왜놈 불량배들이 왠지 시내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부터 '속전속결'은 싸울 때의 원칙이 되었다. 동경 유학 시절에도 몇 번 야쿠자들을 상대로 싸워봤지만 모두 적수가 아니었다. 밤에만 모자를 눌러쓰고 움직였으므로 그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한인애국단과 OSS활동 중에는 적과 적의 무리들은 무조건 죽여야 했고,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싸움은 더 쉬웠다. 애매한 경우에도 두 팔은 반드시 부러뜨렸다.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이나 칼을 맞을 수는 없었다. 
 한 집 두 집 불이 꺼지고 마침내 온 마을이 잠잠해지자 그는 마지막으로 새들이 앉은 나뭇가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일부러 새들을 맞히지 않은 것이었다. 
 여러번 목숨을 구해 줬던 돌팔매 솜씨가 녹슬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여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가만히 대문을 밀었다. 이 대문을 다시 미는데 7년 여가 걸린 것이었다. 대문은 잠기지 않은 채여서 쉽게 열렸다. 손자가, 아들이, 남편이 언제라도 쉽게 들어올 수 있게 열어놓은 것이라 생각하니 콧날이 시큰했다.
 발소리를 죽여 마당으로 들어섰다. 사랑채의 할아버지 방 툇마루 아래에는 신발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실 가셨을 리도 없고, 마을에 불이 켜진 집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각에 안채에 가셨을 리도 없었다. 방에서 나오는 온기는 분명 느껴졌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지우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누고?”
 나직한 할아버지의 음성이었다. 목이 잠겨왔다.
 “할배요, 지 왔니더.”
 “그래, 니 왔나?” 
 할아버지의 음성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마치 놀러갔다 돌아오는 손주를 맞는 음성이었다. 꼭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문을 열어 놓은 채 마당에서 큰절을 올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받내는 방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할아버지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신발이 없었던 이유는 기동을 못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뼈만 남아 앙상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도 그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소이 얼음이구나.”
 “개않니더.”
 “고상했제? 장부가 나라 찾는 일이까네 개않니라.” 
 한 손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더듬었다. 주름투성이 눈가에는 물기가 축축했다. 그는 흑, 하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고 할아버지를 끌어안았다. 할아버지가 낮게 꾸짖었다.
 “장부가 웬 눈물고?”
 “할배요, 걱정마시소. 인자 곧 독립될 끼시더.”
 “암, 그래야지러. 그래야고 마고.”
 “어디가 편찮으신기요?”
 “모다 나이 탓 아이가. 신경씰 거 없니라.”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바뿔 낀데 인자 안으로 가 보그라.” 
 할아버지의 손을 한 번 더 꼭 쥐어보고 사랑방을 나와 안채로 갔다. 툇마루 아래에는 여러 개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청으로 올라가 안방의 문고리를 가만히 잡아당겼다. 문은 안으로 걸려 있어 열리지 않았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 침착을 가장한 나직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눈기요?”
 “어무이요, 저시더.”
 “뭐라꼬?”
 급하게 문고리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그는 대청에서 큰절을 올렸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제지하고 어머니가 문을 나서려고 했다.
 “할배인테 먼저 가야지.” 
 “뵙고 왔니더.”
 “오야, 그래, 잘했다.” 
 “산소도 들러가 다 뵙고 왔니더.” 
 “그래, 잘했다.”
 어머니는 벌써 차분해져 있었다. 기뻐도, 슬퍼도, 언짢아도 안으로 안으로만 삭여내는 전형적인 조선의 여인, 그런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꼬옥 쥐었다. 어머니도 그의 손을 더 세게 쥐었다. 할아버지 방에서 좀 녹았다고는 해도 아직은 얼음장 같은 그의 손을 어머니는 자꾸만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어머니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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