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적으로 홍산문명과 우리의 관계를 연결짓는데에는 흔하게 귀걸이와 옥 가공품, 둥그스름하다는 치성이나 비파형 옥 가공품등이 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입증해줄수는 없습니다.
아래는 홍산문화에서 나온 귀걸이 입니다.
이러한 귀걸이를 결상이식(;狀耳飾) 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수직으로 귀에 걸고 다닌 장식품을 통칭하는 것인데 사실 처음에 출토 되었을때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다가 1917년 일본 오사카의 코우 유적지에서 인골이 발굴되었는데 그 때 두개골 양 옆에 위치하였기에 이것이 귀걸이 인것을 처음 알았다는 비화가 있습니다.
다만 결상이식은 우리만의 무언가는 절대로 아닙니다.
한반도와 가까운 큐슈 지역의 경우, 2009년까지 90개 유적 120점 정도의 결상이식이 출토될 정도로 신석기 유적지라면 적게나마 꾸준하게 출토되는 장식품으로서 오히려 상기의 제주도의 유물과 같은 경우를 비릇해서 한반도 동해안 지역과 큐슈 서해안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그것도 일본의 그것이 한국에서 출토되기도 하는등 학계에서는 이러한 유물에서 무역의 흔적을 찾곤 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자면 결상이식은 비단 이렇게 생긴것이나 옥 재질만 있는게 아닙니다.
골무처럼 생긴 것부터 둥구스름하게 생긴 사각형, 가로나 세로의 타원형, 돌칼 같이 생긴것등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재질도 대리석이나 활석까지 다양하며 그 가공 방법 또한 찰절구에 갈거나 가는 실이나 줄에 갈아서 끊어내는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가공 '형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앞서 언급한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때 이러한 가공품만으로는 우리와의 직접적인 관계성을 입증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것입니다.
다음으로 치성에 대한 유래는 사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고구려 중기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고구려 말기에 비로소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이 치성의 경우는 고구려 중기와 같은 시기에 중원에서 모습을 가진 유적물이 없는 것이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레고르님이 제시해주신 논거인 묵자는 읽어보지 못하여서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러하기에 채희국은 고구려가 원조다 라고 하지만 반대로 손인걸은 북방민족 원조론을 들고 나오고 있지만 서인길은 앞서 언급한 하가점하층문화가 고구려 성곽 문화의 원조가 아닌가 하는 학설을 들고 나오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춘추전국시대 원조론 즉 묵자의 기록을 토대로 주장하는 것은 비단 중국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여러가지 학설이 존재한다고 할수 있겠지요,
또 이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홍산문화의 치성이라 주장되는 구조물(첫째 사진)은 각진것이 맞으며 아래의 반월산성에서 볼수있지만 비단 우리나라의 치성이 둥그스름한것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빗살무늬토기를 이야기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초로 발견된 곳도 유럽이고 최초의 학술명이나 연구 성과 역시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폴란드 독일 스웨덴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빗살 무늬 토기의 출토지는 그 만큼 많지만 우리가 이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안에서 우리의 문화권을 한정 짓는것은 그 안에서 우리와의 명백한 관련성을 찾았고 입증할수 있었기 때문일뿐이지 우리의 문화권 내에서만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된게 결코 아닙니다.
비파형 동검의 경우는 비파형동검과 관련지어 볼수 있는 비파형 옥기는 나온적이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관계성을 주장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적으로 옥은 귀금속이지 실생활에 쓰는 도구가 아닙니다.
실생활에서 쓰는 도구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제작된 것이지, 미학적인 측면에서 제작된게 아니지요, 정말 크게 양보해서 만일 나왔다면 정말 만에 하나 그랬다면 홍산문명에서 쓰였을 다른 비파형 석재나 청동기 도구는 왜 안나오는 걸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이러한 유물들로 유사성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어쨌거나 우리와 같은 도구를 쓴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들을 우리 민족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호간의 관계성을 입증하는 것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하가점 상층 문화일때는 산융이나 선비 거란과 같은 유목 민족들의 터전이었고 하가점 하층 문화일때는 정주민족이던 이 들의 터전이었는데 이 들과 한국사를 연계시키기위해서는 한국인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 이 지역에 한때나마 거주하며 활동했음을 입증을 해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일단 문헌 사학쪽으로는 불가능한게 당연한게 문헌이 전무하지요,
그렇다면 고고학계에서 검토를 해야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관계성을 입증하는 문제에서 신석기 단계와 청동기 초기 단계에서 이미 이 들 요서와 요동 및 한반도 사이의 문화적 격차는 상당한 터라 양 지역의 문화가 동일한 문명이 영위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것은 현 단계에서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 인류학 등을 통해 같은 계통의 조상을 두었는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할수 있고, 인구이동과 문화 전파라는 고고학적 난제를 배제할수 있기때문에 이 유전자 인류학과 체질인류학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해볼수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의 조상뻘되는 민족은 요서지역에서 홍산 문화를 건설했던 집단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서지역에서 출토된 인골은 고동북 유형 그리고 고화북 유형 끝으로 고몽고고원유형의 순서로 고동북유형으로 지칭되는 집단중에서 한국인의 선조뻘되는 집단과 연계시켜 볼만한게 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요서의 홍산문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체질인류학 연구를 통해볼때 mtDNA에 따른 지역별 차이보다는 Y염색체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과 연구 표본이 지극히 부족한 점과 유전자 인류학의 유전자 채취 문제 등을 생각해본다면 더 나아갈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우리와 관련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뿐이지 이들이 한국인과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화 문명과의 연관성부터 신러 문화나 자오바오거우 문화등에서 볼수 있듯이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아직까지 연구 성과는 갑론 을박인게 사실입니다, 물론 동북공정을 통한 정부의 이념적 개입이 우세한것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요,
다만 중요한것은 확실하게 고고학적으로나 인류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때 우리와는 관련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영토 중심의 사관 정리 사업인 동북공정에 대하여 홍산문명이 어떻든 현재로서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밖에 볼수 없는 우리가 홍산문명에 대하여 뭐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