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생이다!” “우리는 공부하고 싶다!” “우리를 학교로 돌아가게 하라!” “근로동원이 무슨 공부냐?” 12월 하순, 경성은 학생들의 구호 소리에 술렁이고 있었다. 경기중학교의 학생들이 계속되는 노력동원에 항의하며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은 우발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시위였다. 총독부는 10월 중순, 근로동원본부를 만들어 노동 동원을 통해 더 많은 전시물자를 더 빨리 생산하고자 했다. ‘근로가 곧 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붙인 ‘학도근로령’을 칙령으로 공포하고 재학 중인 학생들도 대거 노동현장에 동원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강제노역장이 되고 있었다. 첫날의 시위는 왜경들의 진압에 별 저항없이 끝나고 말았으나 건국연맹 지도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장하기는 한데...... 우리 계획에 영향은 없겠소?” 여운형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모인 사람들을 둘러봤다. 선뜻 나서서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은 학생대중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철저히 방관하자는 것이었다. 건국연맹에도 학생조직인 학도대가 있었으나, 섣불리 지원에 나섰다가 자칫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생대중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부터 경성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시위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오직 공부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시위는 며칠간 계속됐다. 경무국은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학생들의 전국적인 시위를 맞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아직 주동한 놈들도 못 찾아냈단 말이야, 이런 멍청한 새끼들!”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경무국장 와다나베가 책상을 내려쳤다. 죄인처럼 서 있던 과장들이 진짜 맞은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워낙 자연발생적이어서......” 과장 하나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와다나베가 다시 책상을 내려쳤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술에 절은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어딨어,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손을 먼저 든 놈이라도 있을 것 아니야? 그런 놈들을 찾아내란 말이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데모를 해? 감옥에 처넣을 놈들!” “......” 와다나베가 길길이 날뛰는 데 반해 과장들은 머리를 숙인 채 꿀먹은 벙어리였다.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리자는 심산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설쳐대던 와다나베가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았는지 한숨을 ‘후유!’ 내뿜었다. 그리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소나기가 멎은 것이었다. “공부하게 해달라는 놈들을 전부 감옥에 처넣을 수도 없고...... 누구 의견 있으면 말해 봐!” “이렇게 동시다발로 데모가 일어나는 데는 우리 경찰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각 학교에 통보해서 데모를 하는 학교는 폐교조치시키고 그 학교의 학생들은 전원 징병한다고 하면 어떨런지요. 군에서도 좋아할 것이고요.” 과장 하나가 와다나베를 곁눈질해가며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와다나베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금새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공을 군으로 넘겨버린다? 참 좋은 생각이오.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어차피 총알받이로 써먹을 거니까 문제가 될 것도 아니지. 그 생각을 왜 진작 못했지?” 그렇게 되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그때부터는 군에서 알아서 해야 될 문제였다. 와다나베가 득의만면해서 일어섰다. 지금의 경찰력으로는 학생들의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막기란 불가능했다. 말썽 많은 각종 징집업무 보조도 해야 하고, 불령선인색출에다가 수배자 검거, 독립운동 전력자 동태감시에다 공출업무 보조 등 경무국이 열 개는 더 있어야 될 판이었다. 모든 전선이 힘 없이 무너지면서 최하위 직급인 조선인 순사들을 우선적으로 징병하는 안까지 검토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시위에 언제 어느 곳으로 이동할지 몰라 비상 대기 중인 조선군에 동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경무국의 이 계획은 주효했다. 이 사실이 각급 학교에 통보되자 학생시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끝났지만 오랜만에 보는 학생들의 시위에 사람들은 가슴이 후련해서 속으로 열렬한 박수를 보냈으며, 저항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경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안문덕은 김중의 집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가는 밀정으로 시작해서 정식 고등계 형사가 된 자였다. 안가는 독립투사의 색출, 검거 뿐만이 아니라 김에게서 국방헌금을 모금하는 임무까지 맡고 있었다. 아비가 애초에 김부자네 하인이었다가 면천되고 머슴과 소작인을 지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일을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것이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인데 서장이나 계장 같은 작자들은 자신을 내세우면 김이 호의적으로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김에게서 모금하는 일로 과장에게 불려가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 바가지나 얻어먹고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였다. 안가는 사랑방 문 앞에 서서 공손하게 김을 불렀다. “어런요!” “누고?” “다께다 형사시더.” 안가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을 꼭 ‘다께다 형사’라고 했다. 이젠 하인의 아들이 아닌, 밀정이 아닌, 어엿한 형사로 자신의 신분이 변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었다. 경주에서 안가의 집안 내력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창씨개명은 바로 자신을 위해 생긴 거라는 생각을 하는 안가였다. 김은 문을 열어 안가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후 다시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그 눈길에는 경멸의 빛이 역력했다. 원래부터 방으로 들이는 법이 없었지만 이제 상종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김을 작신작신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안가는 사정을 했다. “어런요, 지 쫌 살레주시소.” “떼꽝시럽게 그기 무신 말이고?” 김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안가는 그만 미칠 지경이었다. 종놈처럼 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흘쯤 전에도 들러서 그만큼 사정을 했건만 이제 또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 어린 소작인들에게도 함부로 하대를 하지 않는 김이었지만 왜놈들에게 붙어먹는 자들에게만은 종 부리듯이 했다. 그래도 그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그만큼 김은 명망있고, 벗바리가 든든했다. 총독부 고관들은 경주에 들르면 김의 집에서 묵어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다. 대인인 김과의 교유도 좋았지만 솔밭 속에 있는 운치와 풍광이 좋은 집 뿐만이 아니라 어떤 요리집에서도 만날 수 없는 맛깔스러운 음식, 또 밀주제조를 금한 이후로도 내놓고 빚는 술도 있었던 것이다. 12대 만석에 9대 진사를 내리 한 이 집에서 전래되는 쌀로 빚은 고유의 술을 맛본 총독부의 어느 고관이 기가 막히는 술맛에 반해서 이 집만은 집에서 술을 만들어도 좋게 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해서 ‘법주‘라는 별칭이 붙은 술이었다. 총독부 관리라도 아무나 김의 집에서 묵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장급 이상이었다. 군수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파면할 수 있는 직급이 총독부 국장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위신을 관리해 온 것이었다. 그러니 왜놈・조선인 가릴 것 없이 신임 군수・경찰서장들은 공식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김에게 부임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었다. 그래서 군수라도 조선인이라면 다짜고짜 하대였다. 김은 각종 부왜단체와도 거의 전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것도 모두 회장이니 고문이니 평의원이니 하는 굵직굵직한 직함들이었다. 그러니 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떤 단체가 생기면 인사치레로라도 직함을 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면 권하는 대로 다 받았다. 또 자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김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적게라도 성금을 내는 법도 없었다. 부왜단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김의 목표였다. 한마디로 경주 관리들의 골치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