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부터 할 이야긴 재치있는 유머 글도 아니고,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부모님께서 안 계시거나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고민 글도 아닌, 22살짜리 남자의 5년 전부터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야기를 쓴 글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재수에 실패하고, 너무 힘든 맘에 이곳에 글을 남기었고 생각지도 못한 관심에 베오베에까지 제 글이 올라가고, 400개 가까운 댓글을 받으며 정말 과분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분한 관심과 진심이 담긴 충고를 감사할 줄 모르고, 제 눈에 들어오는 건 그저 이 모든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손가락질 하는 사람과 언쟁을 나누며. 화가나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나름 제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글을 끄적였었는데, 다시 달릴 비난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인지 글을 쓴 뒤부터 어찌 된 일인지 오유를 잘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너무 답답한 이 맘 어디 제대로 풀 곳도 없고, 부끄럽게 울었던 기억과 제 내면 속 진심어린 이야기가 난무하기에 남들한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혼자 속 시원히 털어 놓을 곳이 여기 밖에 없기에 이렇게나마 글을 남기지만, 이 자리에 다시 제 얘기를 떠들어 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부끄럽기도하고 또 다시 손가락질 받을 게 아닌 지 겁이 나기도합니다.
어릴 적, 저는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놈이란 말도 안되는 망상에 젖은 채로 끈기도 노력도 해 보지 않은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는 저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은 없으시고 그저 바르고 성실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부모님의 보육 철학이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초,중,고 모두 개근상을 받고 크게 지각 한 번 해본 적 없고, 학교 야자, 보충 안 빼먹고 태어나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께 크게 혼 난 적 없는 것이 제 유일한 자랑입니다.
뭐 나름 성실하게 학교를 다닌다고는 하나 공부라곤 학교 수업이 전부였으니 성적과 학업 수준은 정말 낮았습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머리가 점점 크니 이상 보단 현실에 눈에 가고, 내가 남들과 정말 다른 특별한 놈인 걸 몸소 증명해보이겠다고 맘을 먹게 되었습니다.
인문계 학교에 왔으니 공부를 해야겠고 태어나 앉아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공부라 어려움이 많았었습니다. 그땐 1형식이 뭔지, 자연수, 실수가 뭔지도 모르는 꼴통이었고, 학교는 놀기 소문난 학교에, 수준별 학습 반을 꾸려 수업을 했기에 저랑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정말 학교에서 내놓아라 할 사고뭉치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선생님들은 그저 칠판만 보며 수업만 보며 수업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맨 교탁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도 참여하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교과서를 펴보고 심야자습시간에 남아 복습이란 것도 해 보았지만 워낙 머리가 빈 꼴통이었기에 1학기 중간, 기말 2학기 중간, 기말을 지나도 제 실력은 항상 그 자리여서 항상 꼴통 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습니다. 난생 처음 해본 공부였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아니 진지하지 못했던 공부였고, 그 뒤에 할 공부에 비한다면 그저 장난 같은 공부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별다른 준비 없이 2학년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되니 맘도 촉박해지고, 아무것도 증명해 보인 것 없는 허송세월이 아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후회감 덕분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수업시간 때 간혹 쉬라며 보여주는 영화 한 편, 눈길 한번 주지 않겠단 다짐에 책상을 끌고 맨 뒤로 나가 몸을 돌리고 공부하고, 책가방 속 만날 들고 다니는 책들은 표지가 찢어지고, 나뉘기 일 수였고, 태어나 처음 밤을 새워가며 공부도 해보고, 놀기 좋은 방학 때도 제대로 놀러 한번 가지 못한 채 어두운 독서실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성적 따윈 오르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간 진도 잡기도 만날 전전긍긍할 뿐이고, 항상 찾아오는 모의고사 날, 풀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었기에 만날 시간이 남아 평소에 부족했던 수면 시간을 채울 수 있었던 시간 뿐 이었습니다.
나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곤 하지만 저에게는 뭔가 특별한 재능 따윈 보이지 않았고, 성적도 오르지 않았으니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릴 적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었습니다.
어릴 적 자주 보던 영화나 TV 만화에 나오던 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모두 독종에 악바리 기질이 타고 절대 쓰러지지 않는 그런 놈들이었고 그런 것들을 보며 경외심을 느끼곤 했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한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었습니다.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손에 쥐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내어 아래와 같은 글을 빽빽이 써내려갔습니다.
1.한계를 뛰어넘자. 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결심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포기하지말자
2.바보같고 우직하게 노력하되 진짜 바보가 되지 말자
3.비록 내가 겁쟁이이지만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4.힘들고 지칠때 '이정도면 되어다'라는 생각할때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을 잊지 말고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끈기/인내/악바리/우직/오기/불굴/정신력/근성/노력/정신력/깡다구"
저걸 빽빽이 쓴 종이를 테이프로 돌돌 감아놓고선 신념이랍 시며 항상 손에서 놓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공부를 하니 제 자신이 정말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멋져보이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언젠간 tv 만화 속 주인공처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3이 되어선 정말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맘이 약해 질 때 쯤 종이에 새겨진 글귀를 보며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공부 했었습니다.
등교 시간 귀에 이어폰 꼽으며 영어 듣기를 하고, 수업 때도 공부,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점심시간, 청소 시간, 저녁 시간 때도 자습실에 찾아가 공부를 했었고, 자습실에서 교실로 올라올 때도 제가 만든 단어장을 외우며 올라갔었습니다. 그렇게 야자를 소화하고, 도서관에 가 12시 가까이 심야 자습을 하고 집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 조는 한이 있더라도 새벽 2시까지 의자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신념이란 놈은 공부뿐만 아니라 제 행동 양식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나 웃자고 치는 배드민턴이나 뭐든 한 번 하면 정말 폐가 끊어질 것 같아도 악바리, 정신력. 끈기, 이 종이 뒤에 적힌 단어를 가슴속에 곱씹으며 뛰고, 자정이 넘어 자전거 타고 하교하는 길 정말 높은 오르막길을 무거운 가방까지 메고 단번에 올라가는데 다 올라가니 정말 다리가 털썩 풀려 집 계단을 올라가지 못했던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고, 한여름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공부를 하다가 흩뜨려지는 제 자세를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며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는 붙이고, 가만히 있어도 푹 찌고 답답한 열대야 밤에 그렇게 목석마냥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앉아 공부하겠다고 결심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푹푹 찌는 밤공기와 답답함에 폐소 공포증이 밀려들어 왔고, 식은땀과 막혀오는 질식감에 숨은 헐떡거리고 정신도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가 되어 공부는 뒷전이고 그저 괜한 오기에 손 에 쥐었던 제 신념이라는 종이를 미친 듯이 쥐어 짜며 참았던 미친 짓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내가 갇혀있거나 엄청나게 답답한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만 알았지, 폐소 공포증에 공황장애가 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이게 뭔 일인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하고 절대 자세를 풀지 않겠다는 결심은 공황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녹다운되어 태어나 겪어본 적 없던 멘붕 뭔지 제대로 겪어보고 다시 참아보겠다며 이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미친 짓을 반복해보다 보니 체력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1점대가 넘었던 시력도 0.1로 떨어지고 만날 앞이 흐린 상태에서 앞에 선 친구 얼굴도 제대로 못 볼 정도였건만 책만 본답시며 안경 한 번 낀 적이 없었습니다. 또 항상 요통으로 허리가 아파, 수업시간이 끝나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 바닥에 털썩 누워 아픈 허리를 달래고,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이 되면 다시 앉아 허리 통증과 싸우기 일 수였어요. 어느 날은 학교를 마치고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너무 졸려 잠을 깨운답시고 화장실에 가 소변을 봤는데 시꺼먼 피가 섞인 오줌을 눴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죽을 병들이 수 없이 나오니, 정말 그날은 죽은 날 받아놓은 시한부 느낌이 뭔지 제대로 실감했었는데 죽어도 좋다며 공부를 계속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공부로 들어 찬 것 같았지만 문제는 항상 풀리지 않았고, 성적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0월이 되고 어느덧 수능을 바로 한 달 앞으로 두고 마지막 모의고사라며 쳤던 10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는 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보나 마나 낮은 성적일 걸 직감하고 성적은 보지도 않은 채 성적표를 숨기고 그저 책상머리에 머리를 박고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친한 친구놈이 자습 시간 때 옆에 앉아 서랍 속 성적표를 뺏어 보며 장난 섞인 말을 던지는데,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뭔가 가슴에서 응어리진 것 같은 무언가가 나오더니 그대로 눈에서 눈물이 맺혀 흘러 넘치고, 친구들 다 공부하는 자습시간, 책상에 머리를 박고 꺼이꺼이 울음이 터졌었습니다.
여태껏 학교 한 번 빠지지 않고 만날 제 자리에 있던 것이 제 유일한 자랑이었는데 그 날 그렇게 우니 너무 부끄럽고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단 맘이 간절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학교를 뛰쳐나가면 너무 불쌍해 보일 것 같은 터라 그렇게 울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생님께 찾아가 허락을 맡으로 갔습니다.
덩치도 큰 사내놈이 꺼이꺼이 울면서 교무실을 찾아오니 선생님은 집에 초상이라도 난줄 알고 기겁하시며 뭔 일이냐며 물으시는데 너무 부끄럽고 너무 꺼이 꺼이 울먹거려 제대로 발음도 안되는 목소리로 성적이 너무 낮아서 눈물이 난다는 걸 제 입으로 말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성적이 안나와 운다곤 하지만 정확히 무슨 감정 때문에 우는 지 이유도 할 수 없었는데, 나중엔 하염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과 울음에 처량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계속 울게 되어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울면서도 공부는 포기하지 않았었습니다. 손에 쥔 신념이란 종이를 더욱 더 쎄게 쥐며 더 굳게 맘을 먹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수능을 쳤었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망했었는데 10월 달에 실컷 울었던 것 덕분인지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치고 학교를 빠져나오고 모두 기뻐 날 뛰는 와중 혼자 다른 세상 사람처럼 동 떨어져 걷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수를 시작했었습니다. 축제와 같은 수능 뒤 교실 속에서 책상을 벽에 맞대어 공부하고, 같이 놀자는 친구들의 장난에도 꿋꿋이 공부하였고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보일러가 고장나버린 옛 집에서 손, 발이 정말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밤을 새고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 제 고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보내게 되고 그 사이에 공부를 할 거처를 옴겨 본격적으로 재수를 시작하게 됩니다.
고3 때나 재수 때나 남들이 못 할 짓을 참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손가락 물어 뜯어 혈서 쓸 각오 없으면 절대 하지 말란 말에 자존심이 상해 혈서를 쓴다고 손가락을 몇 십 분 동안 씹어 뜯어 피를 보기도 했고, 재수 생활 접어 들고 태어나 처음 안경을 사서, 밤이 되면 안경을 끼고 벗으며 밤 하늘에 별이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해서 공부를 하다가 문뜩 별을 보러 옥상 위에 올라가곤 했으니깐요. 그 중에 제일 가관은 또 폐소 공포증을 극복한다며 밧줄로 몸을 묶은 듯 고정 시켜 다 여섯 시간을 정말 꼼짝도 못한 채 앉아있다 폐소 공포증으로 인한 공황 장애와 다리에 혈전이 쌓인다는 이코노미 증후군으로 정말 개죽음 아닌 개죽음을 겪어볼 뻔 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이전까지만 하여도 재수 생활이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더 이상 학교 수업시간에 숨어서 자습 하지 않아도 되고, 성적도 안나오는 놈이 만날 공부 한답시며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부끄러웠는데 더 이상 남에 시선이 없으니 편안했었습니다.
아침 9시 독서실 문 열기 전에 도착하여, 점심은 대충 독서실 앞 편의점에서 빵과 바나나 우유로 버티며, 저녁이 되어서 밥을 먹으로 집으로 다시 가 1시간 내로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러 가러가며 하루 16~17시간을 책상 머리 위로 고개를 쳐 박고 있었고 사당오락을 맹신하며 4시간 씩 자가며 머리를 꾸벅이며 졸더라도 절대로 책상머리에 누워 잠을 자지 않겠다며 나른한 점심만 되면 외투를 하나 걸치며 독서실 옥상에가 빵을 먹으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졸음을 쫓던 기억도 생생하고 거기엔 항상 오른 손에 제 신념이 쓰인 종이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졸업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길 줄 알던 식이 단번에 끝나고 집에 걸어오는 길 참 기분이 묘했었습니다. 당장 눈을 감고 앞을 바라보면 초등학교를 입학한 내 모습이 아른거리고, 중학교를 입학한 모습, 고등학교를 입학한 것이 내 눈 앞에 생생한 데 눈을 뜨고 지금 내 눈 앞을 바라보니 내 소중한 학창시절이 끝이 난 것이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고, 돌아가는 시게 바늘이 제게 공포로 다가 왔었습니다.
이 공포감이 공부를 하는 종일 머릿속을 맴돌고 잠을 잘 때조차도 아른거려 하루 4시간도 제대로 못자는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렇게 맘이 복잡한데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새벽 1시가 넘은 독서실 끝 혼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도저히 답지없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없는 내 한심함이 저를 막막하게 눈물이 핑 돌았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맘도 복잡하고 재수를 일찍 시작했으니 이때다 싶어 3주 동안 만 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안하니 정말 별에 별 생각이 다 들면서 불안함과 시간이 흐른다는 공포감이 저를 미치게 만들더군요. 답답함과 불안함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밤이되면 갑자기 혼자 발작이라도하듯 가슴을 잡고 숨을 헐떡거렸습니다.
정말로 다행히 시간이 약이 되어 다 나았지만, 여전히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그 끔찍한 공포감과 감정은 절대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겨우 다시 펜을 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습니다. 쉬었던 시간이 많았으니 다시 공부를 미친 듯이 해야 한다고 결심했었습니다.다시 하루 16~17시간 공부하며 밥도 제 때 못 먹어가고, 피곤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잠을 자지 않아 그때 소원이 정말 째지게 낮잠 한 번 자는 게 소원이 될 이경이었습니다. 긴장을 풀며 공부 할 수 있는 인터넷 강의 시청시간이 거진 유일한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우연히 아프리카tv에서 같은 처지의 재수 공부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친구도 정말 미친 듯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하겠단 제 결심이 땅으로 무너지는 심정이고 제 재수생활 첫 번째 열등감이었습니다.
겨우 한 시간 씩 자며 벌떡 일어나 하는 짓은 인강을 보는 짓이었고 밥도 거러가며 하루 19시간 20시간 씩 며칠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아침밥을 먹으려 라면을 끓이다. 수면 부족에 정신을 잃고 책상 위에 앉은 체 잠을 자는 바람에 집을 홀랑 태워 먹을 뻔 한 뒤 20시간 공부 하는 건 포기했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슬럼프라는 놈이 찾아오더군요.
하지만 나란 놈한테 슬럼프 따윈 그저 게으른 태도에서 나타난 불성실함이라 생각했을 뿐 나한텐 절대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머릿속은 공허감으로 가득 차 암만 집중한다고 눈에 힘을 가득 줘도, 손에 쥔 종이를 암만 쥐어짜도 머린 항상 멍 할 뿐이었습니다. 항상 풀리지 않은 문제에 끝까지 붙 잡고있는 터라 공부에 대한 흥미는 항상 느낄 수 없었고, 만성피로에 항상 무거운 몸을 이끌고다니기도 힘들었는데 슬럼프란 것도 겹치니 결국엔 슬럼프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슬럼프도 슬럼프지만 어느덧 여름이 되고 대학방학 시즌이 되어 친구들이 속속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내 반쪽 같은 친구들과 저녁 한 끼 먹고 바로 공부하려 맘 먹었는데 밥을 다 먹고도 쉽게 놓아 주지않는 친구들과 나도 너무 너무 같이 있고 싶은데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는 제 현실이 겹치니 눈물이 맺히고 친구들 앞에서 입술 물어 울음을 삼키고 있었던 적도 있었죠.
또 한 놈은 같은 처지의 재수생으로 서울서 엄청 이름 있고 비싼 기숙 재수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휴가랍시며 내려와 저녁을 한 끼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녁을 먹으며 하는 얘기의 주제는 재수 이야기이며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까지 뒤 섞여 저녁을 먹는데 친구놈이 자기 학원 얘기를 늘어놓더군요.
“자기네 학원 식당 뷔페식에 저녁에 간식이 나온다.”
“공부하다가 툭툭 쓰러저 응급실에 실려가는 놈들 투성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밥 먹을 때도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공부하다 잠이 오면 허벅지에 샤프를 찌르거나, 손등에 피가 나고 흉터가 질 때까지 깨문다”
“나날히 발전하는 것이 느껴진다”며 자기 재수 생활을 모두 털어 놓더군요."
그에 반해 나란 놈은 부모님 모두 일을 나가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 뭘 먹을지 걱정하고, 20살이나 된 다 큰놈이 부모님께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반찬 투정이나 하고, 주변 같이 공부 하는 놈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환경도 아니고 내가 저 친구들만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고, 더구나 성적도 오르지 않으니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친구와 비교대상이 되고 그저 그 친구 말을 들으며 참 열심히 한다며 대꾸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 머쓱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과 열등감 때문에, 다음 날 하루 종일 손등을 깨물어가고 손등에 침 냄세가 진동을 하고, 피가 나도 흉터가 질 정도로 깨물었지만 잠은 깨지도 않고. 허벅지에 칼이라도 박아야한다는 이 상하 자존심이 다시 회복 될 것 같단 들었지만 도저히 무서워 그것만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몇 일 세 친구 녀석은 계속 꿈에 나타나고 친구 덕분에 공부는 더 고집을 부려가며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머리는 하루 종일 멍할 뿐 이고, 끼니도 거르거나 빵이나 우유, 인스턴트로 때웠지만 체중이 빠지고 공부하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하며 더 이상 아집도 못 부려갈 정도로 정신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냥 다 놓고 싶었습니다. 신념도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냥 다 놓고 싶었습니다. 만성피로로 만날 몸은 천근만근이고, 성적이 안 나와도 그저 한 길만 바라보며 공부하는 자체가 그저 멋져보이고 신념이라는 놈 때문에 낮은 성적에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 모습이 않고 그냥 바보 같고 신념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재수를 포기했었습니다.
그렇게 포기한 뒤 만날 하는 짓이라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이나 재밌는 걸 찾아다니는 것이었고 배가 조금이라도 고프면 참지 않고 밥을 찾아 먹거나 시켜 먹고 잠이 오면 자는 것 뿐 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께서 공부하란 잔소리를 늘어놨지만 더 이상 할 것도, 할 수 있는 없단 말에 그때부터 부모님은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이 말을 듣고 나서 포기했던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컸지만, 의자에 앉아있어도 성적은 오르지않을 것이고, 신념이랍시며 참아 내고 힘든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만날 밤만 되면 방바닥에 누워 발작이라도 난 것처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끙끙거리다 결국 밖을 나서 울 곳을 찾아 뒷 산으로 가거나 인적이 드문 도로 위에서 실컷 울음을 터뜨리고 왔었습니다.
너무 힘든 맘과 이 피하고 싶은 현실을 뜨려 원양어선을 타보려 찾아보기도하고, 군대로 도피하려고까지 했지만 너무 불안한 제 정신상태와 부모님 생각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없더군요.
막장을 치닫는 생활을 하니 그 지옥 같은 시간들도 허무하게 지나가 수능 날이 다가 왔고
흐지부지 수능도 치고 나왔었습니다. 학교 밖을 나오니 1년 전과 똑같은 주변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혼자 이질감을 느끼며 혼자 집으로 걸어왔는데 집에 오니 부모님께 너무 죄스러웠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적표를 받기 바로 전. 정말 염치없고 뻔뻔한 생각이었지만 여태껏 울었던 눈물 값이라도 신이 보답해주지 않을까란 어처구니없는 기대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평균 6등급이란 성적을 확인하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울고 싶어 뛰쳐나가고 싶었습니다. 우산도 없이 만날 울었던 산에 올라가 비를 맞으며 울다가 죽고 싶다 생각이 들더니 그 처량한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해 더 눈물 흘리더군요.
그렇게 그 뒤 부턴 아무 생각도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무슨 대학,학과란 글자만 봐도 컴퓨터를 끄고, 성적이란 소릴 들어도 자릴 피하며 말이죠.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노력과 열정에 대한 명언들이 다 헛소리에 거짓말처럼 보여 헛웃음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치만 아무 생각도 안하겠단 각오와 달리 제 머릿속엔 답답함이 가득 차 있고 답답한 걸 푼답시며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가닥에 눈물 흘리기 일 수 였습니다. 다음부터 울지 않겠다며 정말 인생 다 놓은 듯이 잠만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시간을 보내고 보니 정시 원서 마지막 날이 왔었습니다.
떨어지면 별 미련 없이 군대 가려 4월 달 중으로 입영 신청을 해놓고선 내가 가고팠던 학과만 겨우 맞춰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평소 때 같으면 밀려오는 불안과 걱정에 또 방바닥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 잠을 자지 못했었는데 마치 폭풍전야를 만끽하려는 듯, 혹은 이 이후의 일을 몸이 먼저 예감하였는지 그 날은 일찍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뜬금없이 새벽에 눈이 뜨이게 되더군요. 갑자기 밀려오는 낭떨어지 끝에 밀려있는 제 현실은 공포감이 되었고, 너무 무서워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과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절박감은 다 나았던 공황장애까지 불러오고. 우울증이 걸린 그때의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저를 미쳐버릴 것 같이 만들어버리더군요.
새벽 뜬금없이 터진 울음에 가족들이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입을 부여 잡으며 울며 책상 위 거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우는 모습이 처량할 것이라곤 느꼈지만 우는 내 모습을 책상 위에 있는 거울에 스쳐 직접 그 모습을 보게 되니 불쌍함이 아닌 이 상황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습니다. 결국 아침이 돼서야 잠이 들었지만 참 무서웠습니다.
노후 자금조차 없는 부모님께서 제게 사립대에 들어가 등록금감당은 어찌하냐는 한탄에 그깟 알량한 자존심이 뭔지 짐이 되어 미안하단 소리대신 절대 손 안 벌린다고, 이름도 있고 학비도 싼 국립대로 편입 할 꺼라고 큰 소리 쳤지만 이런 상태에서 대학가서 공부를 한 다는 건 솔직히 말도 안되는 억지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입학 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그저 잠만 자고 대학을 가면 청춘을 제대로 즐겨보겠다는 고등학생 때 계획했던 목표와 달리 항상 너줄근한 츄리링차림에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밥 만 먹는 식충으로 생활했고 편입을 한다며 큰 소리 떵떵 쳤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세월아 내월아 그냥 시간만 흘려보냈었습니다.
항상 울던 그때 내 모습이 너무 불쌍했는데, 살은 20kg 넘께 찌며 취미도 흥미도 없이 그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잠이나 자는 한량 같은 이 미련하고 무뎌진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합니다.
1년 전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은 제게 마음을 추스르고 많은 휴식이 필요하다며 저를 걱정해주셨지만 하지만 저는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울고, 겁에 질려 현실에서 도망다닌 것 뿐 이었습니다.
이렇게 항상 널부러져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싫고 답답해 가슴이 미어 터질 것 같은 날
정말 다 털고 일어나겠단 결심을 하기도 합니다, 결심의 증표로 하는 것이라고 만날 ‘불가항력적으로 쓰러져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 다시 진짜 미친 듯 노력하며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며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날 추워서인지 겁에 쩔어서 인지 손은 부들부들 떨고, 넓직한 운동장에 위에 서있었는데 어딘가 꽁꽁 묶여 갇혀있는 것처럼 질식감이 올라오고 공황장애가 오고있는데, 겁에 질려 운동장을 뛰겠단 생각 따윈 하지 않고 그저 땅만 바라보며 누가 쫒아오기라도 하는 듯 집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가고
어떤 날은 이전처럼 겁에 질려 도망치기 전에 얼른 운동장을 뛰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폐가 찢어 질 듯 아픈 고통에 왠지 모를 억울함에 저를 다시 겁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기를 반복했었습니다.
남들이 보나 제가 보나 이 때 늦은 사춘기를. 이 손가락 오그라드는 중2병을 잘 넘기지 못하고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제겐 더 이상 이 상황을 질질 끌 정신적인 여유도, 그렇다고 시간적인 여유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전 2번이나 간답시며 호들갑을 떨던 군 입대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군대를 가서 2년 동안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다곤 하지만 제겐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재수 이전 까지만 해도 특전병을 지원해서 진정한 대한의 건아로 다시 태어나 제대 후에도 진짜 열심히 살 것이라 계획했었는데 20kg 넘께 찐 지금의 이 비대한 몸뚱아리와 운동도 하지 않아 체력 남들에 비해 매우 부족하고 그리고 악에 바쳐 군 생활을 할 자신도 이젠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1월 달 전까지 결단을 내지 못하면 정말 미련 없이 3월 달 중으로 일반병으로 입대하고 이제 신념이고 뭐고 이제 모든 잊고 살 것 입니다.
하지만 모든 걸 잊고 살자니 제 자신을 잃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 도무지 감도 안잡히고 먼 훗날 지금의 신념이란 걸 포기하여 나에게 끝없는 후회와 절망을 앉겨주는 것이 아닐지 너무 무섭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나 같은 놈이 개과천선 하겠다며 공부를 한 것도 후회 되고, 죽도력 노력한답시며 열심히 살았는 데 정작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무능함이 한심스럽고,이제 와선 이런 시답지도 않은 신념이네, 꿈이네 하는 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