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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8-5)
게시물ID : lovestory_949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3
조회수 : 22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1/25 1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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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8. 청년단 그리고 의열대(5)



 “회장님, 호신용으로나 쓰십시오.”

 “서장, 내 말을 그렇게 못 알아듣소? 그래, 내 이것만 가지고 가겠소. 만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장이 책임져야 할 거요?”

 문가는 책상까지 치며 흥분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지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마십시오. 오늘 밤부터 순사들을 보내겠습니다.”

 석가는 문가를 상대하는 것이 짜증스러워 책임지겠다고 내뱉아 버렸다. 문가는 씩씩거리며 경찰서를 나왔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이 권총을 흔들며 활개를 치고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얼른 권총을 품에 숨겼다. 자신에게 총이 있는 게 탄로 나면 공을 세우는 일이 말짱 도루묵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가의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그날 밤 바로 강도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바깥이 심상찮게 소란스러워지자 제 손으로 강도를 잡겠다던 호기는 어디로 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문 밖에서는 순사들이 지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다면 저놈들이 순사들도 다 죽였단 말인가? 

 “분메이(文明:문갑술의 창씨), 총을 버리고 나와라. 그 총으로 우리를 다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네놈이 총이나 쏴봤나?”

 방문 앞에서 김정달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들은 문가가 경찰서에서 총을 갖고온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권총을 꺼내 들기는 했으나 문가는 총알이 들어 있는지 어떤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놈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총이 있는 것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문가는 권총을 손에 든 채 와들와들 떨고만 있었다. 결기를 작작 세우고 서장놈에게 총 쏘는 법이나 차근차근 배워올 것을...... 아니, 진작에 동경으로 뜨고 말 것을...... 때 늦은 후회가 가슴을 후려쳤다. 한편으론 희망도 생겼다. 강도놈의 말투는 의심할 나위 없는 왜국 본토의 발음이었던 것이다.

 “분메이, 우리에게도 총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일본인들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돈이 필요하지 네 목숨은 필요없다. 우리 말을 잘 듣는다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 안 그러면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 빨리 총을 버리고 방문을 열어라!”

 강도놈이 어찌 저리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김의 나직나직한 음성에 문가는 소름이 쫙쫙 끼쳤다. 거기에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숨어 있었다. 더이상 생각하고 말 것이 없었다. 문가는 권총을 버리고 후다닥 방문을 열었다.

 겁을 잔뜩 먹은 문가는 지전 4만여 원과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꺼내놨다.

 의열대 1진의 이번 임무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 보다도 자신들이 경무국이 왜놈 강도단이라 완전히 믿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앞으로도 안전하게 자금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싱겁게(?) 끝낼 수는 없었다.

 “이 새끼야, 너만 잘 처먹고 잘살면 돼? 우리 같은 사람도 먹고 살아야 될 것 아니야, 이 새끼야. 거부라는 새끼가 집에는 이것만 두고 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 먹고 살란 말이야,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잘못했습니다요, 잘못했습니다요. 지금부터는 은행에는 안 맡기고 다 갖고 있겠습니다요.”

 최명원이 칼을 뽑을 듯 말 듯 을러대자 다급해진 문가는 시키지도 않은 말까지 했다.

 “이 새끼는 먼저 물건부터 잘라 버릴까, 그래야 약속을 지키지.”

 최가 문가의 바지를 벗겼다. 기겁을 한 문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쓱쓱 거시기를 잘라버릴 것 같은 강도놈들의 눈빛에 그만 오줌을 싸고 말았다.

 “함마 봐주소, 함마 봐주소!”

 잠꼬대도 왜말로 하노라고 자랑하던 문가도 다급해지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왜말이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였다.

 “이 바가야로 조센징 새끼, 오줌은 싸고 지랄이야? 옷 버렸잖아, 새끼야!”

 잠깐만에 문가는 얼굴을 몰라보게 맞았다. 이빨 여러 개가 부러졌고, 피칠갑이라 눈이 어디고 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또 옷을 버린 최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만 것이었다.

 “근데 이 새끼, 뭐라고 그러는 거야?”

 “모르지. 바가야로 조센징 말이겠지. 물건은 다음번에 약속을 안 지키면 자르기로 하지.”

 최가 문가의 머리를 다시 쥐어박자 김이 눈을 찡긋했다.

 “분메이, 다음에 우리가 오면  안 된다, 알겠나? 안 그러면 너는 물건이 잘리게 될 거다. 우리는 한번 온다면 꼭 오는 사람이야. 우리 사무라이들은 약속을 지킨다는 거 알지?”

 “압니다요, 압니다요!”

 문가는 다급하게 외쳤다. 이빨이 다 부러진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김가에게서 빼앗은 자동차를 타고 온 의열대 1진은 모두를 포박하고 재갈을 물린 다음 문가의 자동차까지 빼앗아서 두 대에 나눠타고 경성으로 향했다.

 다음날 정오 쯤 결박에서 풀려나 병원으로 실려간 이가는 어젯밤에 제 집을 지키러 온 순사가 하나도 없었단 걸 알게 되었다. 석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도들이 여기로는 오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던 데다 문가에게 권총까지 내준 까닭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문가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찾아온 석가의 뺨을 눈알이 빠지라고 후려갈겼다. 석가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회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문가는 이빨을 뽀도독 갈았다. 안 그래도 부러져 있는 이빨을 사정없이 갈아 버리는 바람에 문가는 한참을 통증 때문에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세상에 아프다 해도 이런 고통이 있겠나 싶었다. 마음 같으면 석가를 당장이라도 패죽이고 싶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고, 돈도 아까웠지만 강도놈들에게 당한 굴욕도 뼈에 사무쳤다. 강도놈들을 잡기는커녕 오줌까지 싸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이 새끼야? 그놈 새끼들 온다고 그랬지? 너는 이제 모가지야, 새끼야!”

 “회장임요! 함마 봐주시소! 함마 봐주시소, 예!”

 문가는 바람 새는 소리로 입안에 고여 있던 피까지 튀기면서 발광을 했고, 다급한 석가도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냈다.

 “봐달라고? 이번에 강도당한 내 돈 100만 원 주면 봐주지.”

 “지인테 그런 거금이 어딨능기요. 회장임, 그라지 마시고 함마 봐주시소, 예.”

 문가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석가의 모가지를 날려버려야 속이라도 좀 풀릴 것 같았다.

 석가는 눈물까지 질금거리고 있었다. 문가가 마음먹고 경무국에 쑤신다면 파면은 시간문제였다. 마음을 돌리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상대는 악랄하기로 소문난 문가였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문가가 약점이 잡힌 자신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빌다가 서장은 단념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경찰서로 가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권총을 주면서 갖고 가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총도 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 바람에 그놈들에게 총까지 빼앗겨 버렸지 뭡니까.”

 문가는 경성에서 내려와 병원으로 찾아온 경무국 수사과장 마쓰다에게 서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자신이 가노들까지 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총을 달라고 조르자 서장이 마지못해 권총을 주더라는 말은 당연히 뺐다. 서장의 목을 날려버리기로 작정을 한 이상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총을 줬어요, 민간인에게? 그래서 그 총이 강도놈들에게 넘어갔다? 이건 파면감이로군. 아니지, 구속시켜야 되는 것 아닌가?”

 마쓰다는 과장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독과도 만날 수 있는 문가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지인도 아닌 조선인 서장 정도는 자기 힘으로도 어렵지 않게 파면시킬 수 있기도 했다.

 “회장님, 서장은 제가 바로 파면시킬테니까 노염을 푸십시오.”

 문가는 자신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었다. 내가 누군데 말을 안 들어, 안 듣길! 이제 속이라도 좀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회장님, 근데 그놈들이 내지인이 분명했습니까?”

 “그렇소. 내지인이 분명했소. 왜? 내 말을 못 믿으시오?”

 “그게 아니라 대전 긴조의원 사건 때부터 수사를 해봐도 내지인들 중에는 짚이는 놈들이 없어서 말이죠.”

 마쓰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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