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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람이 문제다
게시물ID : panic_94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icsa
추천 : 16
조회수 : 114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8/19 09: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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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사람이 문제다

 

 

 

 

 
머리카락까지 무거워 지는 덥고 습한 평일 오후 퇴근길

희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엔 의지가 없다

적막한 공기에 갈증이 난 운전 기사가 살며시 라디오를 켠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인해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관련 당국은 이번 사태를 통하여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도록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달걀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농가의 수입 저하 뿐만 아니라 유통업, 요식업 등 연관된 다른 산업의 매출에도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요한 버스 안의 공기가 불쾌하게 일렁인다

 

 

 
맨 앞자리에 앉은 중년의 한 남자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하여간 먹는거 가지고 장난 치는 새끼들은 다 뒤져야되. 죽어서 지옥에서 다 쳐먹으라 그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던 백발의 할머니가 건너편 옆자리를 바라보며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 노인네들이야 뭐 하루 이틀 하는 마당에 그거 벌레약 좀 먹는다고 뭐 별 일 있겠나애들이 걱정이지…. ‘

 

 
노인의 반대편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다.

옆구리에 자식으로 보이는 딸아이를 품고 있다

아이는 막대사탕을 물고 창문 밖을 보고있다

 

정말 믿을 거 하나 없는거 같아요.. 우리 애가 계란을 좋아해서 하루에도 5개씩 삶아서 간식으로 주고 그랬는데.. 지난번에 가습기 살균제도 그렇고 일 터지면 정부에서 감추려고만 하는거 같고.. 대통령 새로 뽑았다고 기대 좀 했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진짜

 

중년의 남자와 백발의 노인은 여자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뒷자리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듯한 젊은 남자가 앉아있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말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버스 안에는 다시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

라디오에서는 이내 느릿느릿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윽고 버스는 정류장에 섰다

약속이나 한 듯이 남자와 노인이 버스에서 내린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것을 안다는 눈 인사를 했다

잠시나마 사회의 문제에 분노한 그들은 모범 시민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버스는 검은 연기를 만들며 정류장을 떠났다

 

 

 

 

 

 

 
중년의 남자는 한의사이다

요즘 매출이 떨어지자 그는 고심 끝에 한약재를 값싼 중국산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약간의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극소량 이므로 인체에는 무해할 것이다

 

 

백발의 할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음식 솜씨가 있는 탓에 돈은 제법 벌고 있지만

나라에서 해주는 것 없이 가져가는 세금이 너무나 아까웠다

할머니의 소득 신고서는 항상 가난하다

 

 

젊은 아이 엄마는 장난감 제조 회사에 다니고 있다

최근 원가 절감을 위하여 제품 도료를 저렴한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직장을 잃으면 갈 곳이 없기에 침묵하기로 했다

 

 

젊은 남자는 취업 준비생이다

수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그는 자신의 스펙이 남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가방 속에는 그가 하지 않은 일들로 빼곡한 자기소개서가 들어있다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이가 입에서 막대사탕을 꺼냈다

엄마는 눈을 감고 깜박 졸고 있다

창문을 열고 쓰레기를 그대로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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