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 석봉.
이 인물의 행적을, 여러분은 얼마만큼 알고 계십니까?
일단 한석봉 하면 유명한 일화가 있죠.
어머니와의 일전, '다크 블레이드 나이트'(Dark Blade Night, 어둠 속의 떡 썰기).
[자료 1. 떡.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우리 전통 음식. 호랑이 설화도 그렇고, 우리 민족과 아주 친숙하... 어? 사진 잘못 올렸네.]
[자료 1(수정). 떡.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우리 전통 음식. 호랑이 설화도 그렇고, 우리 민족과 아주 친숙한 음식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자료 2. 밝고 고운 미소.]
"이게 글씨냐 지렁이냐."
"크흑 죄송합니다. 정진하겠습니다"
하는 한호의 버로우로 끝나게 되죠.
하지만 이 이후의 한호는 어떻게 될까요.
과연 한 관리의, 또 한 서예가의 일생이 이 일화 하나만으로 요약될 만큼 보잘것 없었을까요?
물론 그다지 역사적으로는 큰 행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물의 관점으로 보면 한호는 꽤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호를 약간 색다른 관점에서, 그러니까 어렸을 적의 떡 배틀 이후 이야기를,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 의거하여 썰을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네다.
1. 낙하산줄에 묻은 잉크 Ink On Risers
한호
[韓濩]
본관 삼화(三和). 자 경홍(景洪). 호 석봉(石峯) ·청사(淸沙). 개성 출생.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혀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1599년 사어(司禦)가 되었으며, 가평군수를 거쳐 1604년(선조 37) 흡곡현령(歙谷縣令) ·존숭도감 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을 지냈다. 그 동안 명나라에 가는 사신을 수행하거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 연석(宴席)에 나가 정묘한 필치로 명성을 떨쳤으며, 한국 서예계에서 김정희(金正喜)와 쌍벽을 이룬다.
그의 필적으로 《석봉서법》 《석봉천자문》 등이 모간(模刊)되었고, 친필은 별로 남은 것이 없으나 그가 쓴 비문(碑文)은 많이 남아 있다. 글씨로는 《허엽신도비(許曄神道碑)》(용인) 《서경덕신도비(徐敬德神道碑)》(개성) 《기자묘비(箕子廟碑)》(평양) 《김광계비(金光啓碑)》(양주) 《행주승전비(幸州勝戰碑)》 《선죽교비(善竹橋碑)》 《좌상유홍묘표(左相兪弘墓表)》 등이 있다.
두산백과의 '한호' 관련 부분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장이 있죠.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1599년 사어(司禦)가 되었으며, 가평군수를 거쳐 1604년(선조 37) 흡곡현령(歙谷縣令) ·존숭도감 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을 지냈다.
진사시에 합격했다는군요.
과거에 합격했다는 말은 없네요.
네? 진사시가 과거 아니냐고요?
조선의 과거시험은 약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과와 대과.
이 두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호는 이 중 진사시, 즉 소과만을 합격한 후 바로 관직으로 나아갔습니다.
고시로 치면 1차만 패스하고 바로 취업이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까지는 문제가 그다지 없습니다.
사자관 같은 프린팅 직이야 과거 통과 하지 않아도 뭐. ⑴
글만 잘 쓰면 할 수도 있져.
이른바 특채라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명종 이후, 선조가 왕위에 등극하면서 발생합니다.
"이야 글씨 보소 글씨! 딱 각이 잡혀있으요. 이거 쓴 사람이 누구냐?"
선조가 한호의 글씨에 뿅 간 거죠.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된 한호는 중앙직에 진출합니다.
네. 낙하산이죠.
[자료 3.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걸 관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와 우리는 죽을동살동 고시쳐서 여기 왔는데 저 놈은 뭐냐?"
"글씨 잘 써서 여기 왔다 안카요."
"우리는 호구지 그냥? 공부한 놈만 바보되는 거 아냐."
예나 지금이나, 낙하산 인사가 따돌림당하는 건 마찬가지였나봅니다.
당시 관리들의 한호에 대한 좋지 못한 시선들은 사헌부의 다음 상소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한호 쟤 성격 드럽고 꼬질꼬질해서 같이 일하기 부끄러워요! 쟤 짤라요!"
"...기각. 무슨 초딩싸움이냐."
무능하다는 것도 아니고, 패악질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꼬질꼬질하다는 이유의 탄핵을 '사헌부'가 한 겁니다.ⓑ
참... 한호 입장에서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2. 우짜노 석봉아... 여까지 왔는데...
그래도 글씨는 잘 썼던 한호.
그 명성은 중국에까지 미칩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인기는 임진왜란에서 그 빛을 발합니다.
"여봐라 해. 부탁이 하나 있다 해."
"응? 아, 마 제독 왔구나. 그래, 무슨 부탁?"
"조선 책 몇 권만 구해달라 해."
"아. 조선 책 찾으시는구나. 그러면 일단 책을 배낄 사람이 필요하겠지? 어디보자... 아, 이우(李瑀)가 있구나."
1598년, 명의 제독 마귀(麻貴)가 조선의 서책 몇 권을 구합니다.
그리고 당시 선조는 이런 말을 남기죠.
"야. 이 인간들이 뭘 모르는구만. 이우 글씨는 부끄러워서 안돼. 야! 석봉이 불러라!"
별 돈 들일 필요도 없이 그저 뚝딱하고 나오는 석봉 프린터를, 조정은 열심히 이용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군요.ⓓ
3.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그런데 너무 쉬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너는 그걸 몰랐고...
[자료 4. 가평.]
약 7년간 열심히 고생한 한호.
선조는 그가 안쓰러웠던지, 한호를 가평 군수로 임명합니다.
가평.
물 좋고 산세 좋고 공기 좋은 곳.
거기에 경기도 지역이라, 서울에서 필요할 때 재깍재깍 달려올 수 있는 곳이기까지 합니다.
그냥 공기 됴흔 곳에서 놀면서 글이나 쓰라는 의도였을 겁니다.
그야말로 천혜의, 한호 전용 요충지라는 거죠.
하지만 선조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전하! 가평 군수 한호는 그냥 띵가띵가 놀기만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가평은 잔읍이였는데, 전쟁 후에는 100읍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호 이 인간은 씐나게 놀기만 놀고 일은 모두 간리들에게 맡겨두는 통에 가평이 지도 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옥림 부수 계윤은 창기와 놀고다니며 패악질을 일삼으니, 이 둘을 당장 파직하십시오!"
"말한 대로 하라. 그런데 한호는 좀 재고해봐야겠는걸?"ⓔ
"가평 망하겠다니까요! 파직해요 좀!"
"다시 생각해봐라 응?"ⓕ
"파직파직파직!"
"아오, 찌릿찌릿에 이은 새로운 레벨 5냐? 다시 생각해보라고 몇 번을 말해?!"ⓖ
한호, 너무 놀았습니다.
일은 모두 간리에게 맡겨두고, 말 그대로 손 놓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에 대한 당연한 귀결으로, 사헌부의 극딜을 받게 됩니다.
결국 선조는 이러한 요구에 이기지 못해,
"석봉아, 가평은 안된단다. 흡곡으로 좀 내려가 있거라."
한호를 흡곡 현령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호, 이때 마음에 상처 많이 받았을 겁니다 아마.
그리고 그 결과는...
4. 석봉의 역습!
[자료 5. Fu*kers. 어쩌면 이 아자씨 소울이 빙의된 걸까...]
이전의 한호는 '모범생'?
글 쓰라는 데로 순순히 쓰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료의 귀감이였습니다.
하지만 흡곡 현령 시절의 한호는... 뭔가 달라졌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黑. 化
라는 모습이 맞겠군요.
흡곡.
물 좋고 산세 좋고 공기 좋은 곳(표현 재탕으로 보인다면 착각입니다).
관동팔경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하는 곳입니다.
이때까지도 선조는 한호를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전하. 왜국에 진서를 보내야 하는데, 서울 안에는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흡곡 현령 한호를 쓰는 건 어떻습니까?"
"야. 아까워서 안돼.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는 것도 아니고, 아직 강화도 제대로 안 한 쪽바리 놈들한테 석봉이 글씨를 주냐? 그냥 아무나 잡아서 써."ⓗ
이상의 일화에서, 선조의 석봉앓이를 엿볼 수 있죠.
그런데 석봉은 뭔가 배알이 꼬였던 모양입니다.
전쟁 이후, 선조는 공신도감을 만드는데 한호를 부릅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에엣─? 공신도감을 쓰라고? 랄까 좀 하기 싫은데..."
"방금 왜놈이랑 싸웠는데 왜놈 말투 쓰지말죠. 그리고 좀 하십쇼. 네? 님밖에 없다니까요."
"니예니예 합니다 해요. 그런데 이 글자가 이거 맞지? 임금 왕."
"맞겠지요. 일평생 글만 써오신 분이 뭘 그런걸ㄹ... 어? 이건 옥玉자 잖아효?!"
"아 님도 나이 먹어보쇼. 그게 다 그거지."
이를 놓칠 사헌부가 아니죠.
사헌부의 딜링이 들어옵니다.
"전하아아! 저 기어오르는 것 보십쇼! 아주 오냐오냐하니까 하기 싫은 기색을 뿜뿜 뿜으며 억지로 오자를 쓰니, 이제 진짜 깜놀할 지경입니다! 파직하십시오!"
"에이. 그게 몇 폭 된다고 그걸 하기 싫어하겠냐? 니들이 잘못 알았겠지. 참 나."
이렇게 1차 딜링은 선조의 실드에 의해 그럭저럭 넘어갑니다.ⓘ
BUT!!
이대로 넘어가면 됴흘텐데. 한호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던 듯 합니다.
선조는 다시 한번, 녹권(일종의 공신 자격증)을 배끼는 일에 한호를 임명합니다.
"야. 이 인간들이 참. 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이번에는 잘 해라. 응?"
"......"
그리고 그 결과는...
"저언하아아아아!!"
"이번에는 또 뭐?!"
"한호가 이번에도 고의로 오탈자를 내며, 싫어하는 기색을 명백히 보였다고 합니다! 이거 진짜 기어오르는 거 맞다니까요! 저거 그냥 짤라요!"
사헌부의 상소에 잘 나타나 있네요.
거기에, 또 하나의 과제. 옥책을 배끼는 데에 있어서는...
"저어어어언 하아아아아아!!!"
"또 한호냐? 이번에도 뭐 오탈자 냈다냐?"
"이번에는 아예 잠적했습니다!!!!"
네. 임소로 되돌아가서 아예 올라오지를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트러블이 생기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거죠.
"어휴 그래 짤라라 짤라."
결국 선조는 1604년, 한호의 파직을 명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05년, 한호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어쩌면 이 반항이 그 일생의 마지막 반항기였던지도 모르지요.
[자료 6. 왼쪽부터 차례로 아서스 메네실(워크래프트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옥타비아 폰 제켄도르프(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 탄밥(Fate/Stay Night). 크큭, 흐.콰.한.다.]
5. 결론
우리에게는 단지 명필로만 기억되고 있는 한호 석봉.
하지만 그도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꽤 파란만장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낙하산에 왕따, 혹사 이후 찾아온 휴식에서는 관리 미숙으로 극딜당하고,
마지막은 프린터기(?)의 이유있는 반항...
여기서는 그의 파란만장 행적을 한번 다루어 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韓濩 石峯
1543~1605
PS.
문익점에 이어 글을 한번 더 쓰려고 했는데,
누구를 쓸까 하다가
'한석봉'은 아직 역게에서는 안 다뤄진 것 같아 한번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