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6-3)
게시물ID : lovestory_946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6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0/19 10:37:31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6. 입국(3)



 “출발할 때까지 저희 헌병대에 가서 계시지요. 1등칸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그의 주문에 헌병은 한껏 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거물이 더럽고 냄새나는 3등칸에 있는 건 1등칸 표를 구하지 못해서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헌병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가 사정없이 헌병의 뺨을 후 려친 것이 었다. 너무나 아픈 나머지 헌병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혔다. 맞은 이유를 몰라 더 아픈 것인지도 몰랐다.

 “진짜 멍청한 놈 아냐, 이거. 너 같은 놈도 황군 헌병이냐? 내가 1등실로 못 가서 안 간 것 같나?”

 표정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직했다. 헌병은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 헌병의 귀를 아프게 잡아당긴 채 그가 속삭였다.

 “너는 조센징인가, 뙤놈인가?”

 “아닙니다. 저는 확실한 1등 국민입니다. 저의 본향은.......”

 헌병은 깜짝 놀라서 손까지 내저으며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아니, 됐어.”

 꺼내지 말라는 손짓을 하면서 그는 속으로 웃었다.

 “우리 내지인들은 거의 전부 1등칸에 타고 있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조센징이나 뙤놈은 어디 타고 있겠나?”

 “예. 거의 3등칸입니다.”

 “그럼 우리 같은 황군은 어디에 타야 하나?”

 “.......”

 헌병은 아직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놈이 있나. 조센징들과 뙤놈들이 3등칸에 타고 있으면 그럼 우리 황군은 누구를 감시해야 하나? 내지인들을 감시해야 하나, 조센징들이나 뙤놈들을 감시해야 하나?”

 “그야......”

 그제서야 헌병은 감을 잡고 있었다.

 “우리 황국신민들은, 특히 황군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천황폐하와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성전을 수행한다는 각오로 성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말이다. 내 말 알아듣겠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의 겨드랑이를 빠져나온 권총이 헌병의 이마를 밀고 있었다. 그 동작이 번개 같았다. 갑자기 돌변한 그의 태도에 헌병은 너무 놀랍고 두려워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나는 너 같이 멍청한 몇 놈의 골통에 바람구멍을 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열차 안이고 조센징들과 뙤놈들 앞이라서 참는다. 앞으로는 정신 똑똑히 차리고 잘하라, 알겠나?”

 헌병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그리고 눈치챘겠지만 나는 지금 천황폐하의 명을 받들어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나를 봤단 말은 꿈속에서도 하지 마라, 알겠나?”

 “옛!”

 “만약에 내 존재가 드러나면 네 놈이 발설한 것으로 알고 조치하겠다, 알겠나?”

 이름을 수첩에 적은 그는 사색이 된 헌병의 경례를 뒤로 하고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역으로 들어선 지 두 시간도 지나서야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그 헌병이 떠나가는 열차를 자꾸만 힐끔거리는 게 차창으로 보였다. 그자는 정말 꿈에서도 자신을 봤단 말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속으로 웃었다. 안뚱에서 탄 사람들로 열차 안이 한참 소란스러웠다.

 3등칸에 탄 이유가 있었다. 물론 1등칸에는 검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승객들이 문제였다. 승객들 중에 누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고등계 형사, 왜군 첩보부대원, 고급 장교 등등 눈치 빠른 누군가와 맞닥뜨리지 말란 보장이 없었다. 장시간의 이동이라 그것도 감안해야 할 문제였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신분증과 왜왕과 찍은 사진만 있으면 차라리 헌병이나 순사들에게 검문을 당하는 쪽이 수월했다. 

 드디어 열차가 압록강을 건넜다. 불과 강 하나 사이인데도 감회는 많이 달랐다. 순사 하나를 죽이고 국경을 넘어 김구를 만나 마지막 한인애국단원이 된 후 7년여 만에 만나는 조국의 산천이었다. 차창으로 비치는 조국의 강산은 떠날 때보다 훨씬 황폐해져 있었다. 낙엽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산들은 속옷만 겨우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을 만큼 인민들은 굶주렸고, 화차・목탄차의 연료로 쓰기 위해 마구잡이 벌목이 자행된 까닭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후부터 강산은 날이 갈수록 더 피투성이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조국 땅이라는 것이 실감나면서 가슴이 아리도록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열차는 새벽에야 평양에 도착했다. 여사에서 한잠 자고 늦은 점심을 먹은 그는 평양의 한 교회를 찾아 나섰다. 교회는 대동강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교회라기보다는 낡을대로 낡아서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창고였다. 여느 창고와 다른 점은 지붕에 십자 첨탑이 있다는 정도라고 할까.

 그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교회로 들어갔다. 알렌 선교사는 풍금을 치고 있다가 그를 맞았다. 얼굴에는 새신도를 맞는 기쁨이 가득했다. 온화하고 너그러운 표정의 50대 백인이었다. 알렌은 20년 넘게 경성과 평양 등지에서 선교를 하면서 첩보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정식훈련을 받은 대원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탈이 없었다는 것은 완전하게 정체를 숨길 능력을 지녔거나 아니면 이미 이중첩자가 됐거나 였다. 전자면 미국에 그만큼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었고, 후자면 말할 것도 없이 적이었다. 둘 다 우군이 될 가능성은 전무였다. 지극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다. 

 서로 확인이 끝났다. 알렌이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오히려 선교사님이 수고가 많으십니다.”

 인사말을 나누고 나서 둘은 예배당에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알렌이 성경 한 권을 책꽂이에서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여기저기를 펼쳐서 손가락으로 밑줄을 치면서 그에게 보여줬다. 그 낱말들을 이으니 현재 평양지구 왜군의 완벽한 동향보고서가 되었다. 베테랑다웠다. 대원들과 정보원들의 보고와 스스로 얻은 정보를 취합・분석해서 본부로 보내는 것이 OSS조선지부장으로서의 그가 할 일이었다. 

 알렌과 헤어진 그는 원산행을 뒤로 미루고 더 시급한 일인 스라소니 최우용 찾기에 나섰다. 만나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양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로 평양에 있다고 뻬이징 박이 일러줬던 것이다. 건국연맹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무장투쟁을 벌이기에는 구성원의 면면이 너무 지식인 위주로 짜여져 있었고, 배짱 좋게 앞으로 나설 사람이 적었다. 전투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령층도 문제였다. 다들 징용・징병으로 끌려가 버려서 젊은 사람이 너무 적었다. 전투에 앞장설 젊은 사람들을 최대한 모아야 했다. 현재 조선에서 전투에 가장 적합한 부류는 협객・무뢰배들이었다. 그들을 거사의 선봉에 세우자는 생각은 그와 여운형이 다르지 않았다.

 최우용과의 만남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무뢰배 하나를 혼내주고 최가 자주 가는 술집 몇 군데를 안내받았다.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독불장군답게 최는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막걸리나 마시는 최였다. 허름한 입성에 오래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텁수룩했다.

 그는 최우용이 앉은 탁자에 마주보고 일부러 우악스럽게 앉았다.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탁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묵묵히 술만 따랐다. 최가 술잔을 집어드는 순간 그가 낚아채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그제야 최는 술기 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니레 뭐이가? 순사가?”

 너무나 조용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옆에서 술을 마시던 둘은 부리나케 자리를 떴고, 주인여자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않고 씨익 웃었다.

 “니레 순사 꼬붕이가?”

 “한 수 배우러 왔소.”

 “기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최우용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사실은 정확하게 노린 게 아니라 일부러 속도도 줄이고 약간 빗나가게 방향을 잡았다. 아무리 천하제일이라 해도 자신의 주먹을 제대로 맞으면 성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거기다 술까지 마신 상태가 아닌가. 최는 먼저 공격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최고강자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