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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페이스북 - 국회의원에 대한 ‘항의 문자 폭주’ 사태
게시물ID : sisa_9464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25
조회수 : 1501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7/05/26 14:00:15
전우용

1시간 · 서울  ·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은 자당 청문위원들이 현 정권 지지자들로부터 수백 개씩의 비난, 항의 문자를 받았다며 이를 ‘문자폭탄 테러’라고 규정했습니다. 지금 SNS에서는 이런 행태가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이냐, ‘파시즘적 테러’냐를 두고 논란이 뜨거운데, 제 경험에 비춰 그 ‘시대적 의미’를 짚어 볼까 합니다.

트위터를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칼로 낯짝을 그어버리겠다”는 살벌한 멘션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연히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익명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이버공간에서는 이토록 내면의 악마성을 쉽게 표출할 수 있구나 싶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는 ‘실명’을 알 수 없는 사람은 팔로우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협박, 조롱, 저주, 모욕 등의 의미를 담은 멘션은 수시로 받았으나, 모두 개별적인 단발 멘션이라 차단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제가 일일이 차단하기도 버거울 정도의 ‘집단적 공격’을 처음 받은 건 이른바 ‘강남역 혐오범죄와 메갈 논란’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메갈 편을 들었다고 집중 공격을 받았고, 조금 뒤에는 메갈을 비판했다고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 논란에서 제가 취한 태도는 제 타임라인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뒤져 보시면 될 겁니다.

무식한 놈, 한남 꼰대, 트윗질 그만 둬라. 너 같은 게 무슨 역사학자냐, 심지어 “제2의 성재기가 되라”까지. 대략 봐도 제 자식 또래 밖에 안 돼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욕을 먹고도 기분이 안 나쁘면 사람이 아니겠죠. 게다가 상대는 “한남충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건 절대로 잘못이 아니다”라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몇 개 읽다가 그냥 건너뛰는 것 말고는 다른 대처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부 '대화가 가능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멘션을 주고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고 반성한 지점도 있었습니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좌표를 찍어 화력을 집중하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집중공격’의 시대적, 사회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조리돌림’이라는 집단적 조롱과 모욕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회적 실천'이자 '놀이'였습니다. 조리돌림의 대상이 인터넷 언론 기사냐 특정인이 SNS에 올린 글이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언론사든 개별 기자든 SNS 유저든 조리돌림 당하는 당사자를 모욕하고 위축시키는 것이거나, 자기 감정을 제약 없이 배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국회의원 휴대전화 번호에 항의, 비난, 모욕 등의 의미를 담은 문자를 ‘집단적으로’ 보내는 행위는 현재의 인터넷 문화에 비추어 보면 결코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문자를 보내는 ‘집단’은 서로 간에 일면식도 없이 그저 정서와 취향만으로 연대한 특이한 공동체입니다. 인류가 여태 만들어보지 못했던 ‘집단’인 거죠.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국회의원에 대한 ‘항의 문자 폭주’ 사태가 대중이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난 탄핵 국면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익명성’ 뒤에 숨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뉴스 기사에 댓글 달던 수준을 넘어 국회의원 개개인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만든 거죠. 그러니 민주주의가 다시 후퇴하지 않는 한 이 ‘집단’이 훈계나 계도로 느슨해지거나 해체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단들’의 행위를 일탈이나 ‘테러’로 인식할 게 아니라, ‘정치적 담론 공간’의 불가역적 변화로 이해하는 편이 옳을 겁니다.

‘신기술과 결합한 놀이’는 가장 빠르게 산업화할 뿐 아니라 가장 쉽게 ‘문화’로 정착합니다. 작금의 ‘항의 문자 폭주’ 사태는 ‘댓글놀이’의 영역이 개별 정치인들의 휴대전화로 확장된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야당 의원들이 집중공격을 받지만, 나중에는 여당 의원들도 집중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사이버 공간의 확장에 따른 담론구조의 변화가 현실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조리돌림’ 문화가 ‘직접 민주주의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으리란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니, 국회의원들도 이에 대한 대처법을 찾아내고 적응하게 되겠죠.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욕하는 문자뿐 아니라 때로 칭찬하는 문자도 ‘폭탄’ 처럼 보내는 문화가 생기는 겁니다. ‘휴대전화 문자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문화’가 정치를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그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요.

국회의원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고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나 "비판의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같은 답을 받는 게 '흔한 일'이 되는 시대가, 지금보다 나쁜 시대는 아닐 겁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1515891175149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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