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후기]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창문도 없는 5평 규모의 원룸에는 작은 전구 하나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을 일으켜 눈을 세번 감았다 떴다
이상하리 만치 쉬웠던 어제 밤이 기억이 이제서야 이상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잘 구슬려서 자취방 까지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팔짱을 끼고 안기는 바람에 닿았던 가슴의 감촉에 그만 넘어가
눈 앞에 보이는 허름한 모텔로 허겁지겁 들어갔던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중간에 그녀 몰래 빼내어 바닥에 던져버린 콘돔이 보였다
빼면 안 된다고 어찌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어짜피 다시는 안 볼 사이인데 임신을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람…
그래도 돈만 잃었지 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마치 문 바깥을 단단한 나무 판자로 못질해 놓은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여유 있던 마음 속이 뜨거운 분노로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 끝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는 저 물체는 마치 문의 형상을 한 벽과 같이도 느껴졌다
어느샌가 몰래 들어와 협박을 하고 나선 무언가를 더 요구할 것이다
놈이 문을 열고 오면 기습을 해 이곳을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속으로 괴한을 습격해 제압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불쾌한 진동은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
천장에서 빛을 발하던 더러운 전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보였다
‘돈이든 뭐든 줄 테니까 여기서 꺼내 미친새끼야!!’
혀가 마비가 된 것 처럼 인간의 말이라고는 나오지 않았다
짐작컨대 10초 뒤면 나는 버려진 음료수 캔 처럼 몸이 눌려
헌팅하러 나가자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새끼 말만 안 들었어도 지금쯤 내 방에 누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터였다
방이 줄어든다는 빌어먹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손 끝에 만져지는 천장과 벽은 지금 이 상황이 절대로 꿈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발바닥은 이미 땅에서 떨어져 문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있다면 그리고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잠시 나를 지옥의 공포로 몰아넣어
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뭐가 됐든 상관 없었다
너무나 눈이 부셔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뒤면 바깥 세상에 눈이 익숙해 질 것이다
매우 지쳐보이고 눈물에 화장이 지워져 못생겨 보였다
여자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는 피와 알 수 없는 액체가 그득했다
나는 저 여자의 몸 속에서 방금 나온 것 같았다
여자는 서너번 숨을 몰아쉬더니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자신의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보는 겉 같은 시선
변기 뚜껑이 닫히고 이내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