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밑에 고드프루아님이 올려준신 '1910년에 찍힌 컬러사진'을 보고 관심이 가서 조금 찾아 보았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9329&s_no=19329&page=2그랬더니 여기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군요.
http://en.wikipedia.org/wiki/Sergey_Prokudin-Gorsky저 사진을 찍은 세르게이 프로쿠딘-고르스키는 러시아 제국 기술협회의 회원인 화학자며 사진가인데, 짜르 니콜라스 2세의 지원하에 러시아 제국의 곳곳을 10년동안 돌아 다니면서 칼라 사진 10,000 장을 찍기로한 계획을 진행했다는군요. 황실의 지원하에 현상실을 갖춘 열차를 이용하고 군사지역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수출입증도 받았다는군요. 실제로 찍은 것은 3,500 장 정도이고 남아있는 것은 1,900 장 정도랍니다.
사진을 찍는 방식은 삼원색을 분리하는 필터를 사용하여 동일한 피사체에 대해 세 개의 원판을 만드는 것인데 여러 조건에 따라 사진 한 장 찍는데 10초에서 1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는군요. 이렇게 삼원색 분리하여 칼라사진을 찍는 방벙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고드프루아님의 글에 나온 랜즈 세 개 달린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고, 프리즘을 이용해 빛을 세개로 분리해 각각 필터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세개의 원판을 동시에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위키에 의하면 프로쿠딘-고르스키가 어떤 사진기를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원판을 보고 판단하건데, 긴 원판을 단계적으로 사진기에 밀어 넣으면서 필터를 바꿔가면서 연속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하는군요. 그가 사용한 사진기는 이런 과정이 태엽장치에 의해 자동화된 물건이었을 거라고 하고요.
이렇게 각각 삼원색으로 원판 세장을 만든 다음 이걸 다시 합쳐 칼라사진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방법은 환등기를 이용하여 세 장의 원판에 각각 해당하는 삼원색 광원을 비추어 영사한 이미지를 겹치게 하거나, 또 스테레오 스코프 비슷한 눈을 대고 보는 장치가 있었다는군요.
지금과 같은 인화지에 인화된 사진은 저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고, 대신 인쇄는 가능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라 원판의 일부만 인쇄가 되었답니다.
고르스키는 러시아 혁명후 망명하여 빠리에 살다가 1944년에 죽었고, 그의 유족들이 그가 가지고 있던 원판을 미국 의회도서관에 매각했는데, 모두 1,901 개의 원판과 710 개의 인쇄된 사진이 있었다는군요.
그 동안 미국 의회도서관에서는 원판중에 일부를 인쇄하여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최근에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탈 이미지 기술의 발달로 이 원판들로부터 칼라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 쉬워졌다고 하는군요.
고드프루아님 글에서 두번째 사진이 사진가 자신인 프로쿠딘-고르스키의 사진이군요.
사람 부분만 확대한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톨스토이의 칼라사진도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