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안달리니 게시물이 많아지네요.
가시가 돋혔다라.. 게시판에서 싸움을 건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겠지요.
앞으로 CaptainG님을 통해서 현재의 강단 사학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대화는 순서대로 기록할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저에게 육두문자로 공격해 오는 저 Captain G님께도 저도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CaptainG (2013-05-23 13:22:21) (가입:2012-12-14 방문:262) 추천:0 / 반대:0 IP:119.67.***.58
그저 강단사학만 까면 존나 역사잘알고있는거같죠?
그 분야에서 십여년이상을 그것만 연구하신 교수님들이 그저 식민사학의 영향을받아서 그런 주장하는거 같죠?
그냥 디씨가서 말하세요. 거기서 노실급인데 왜 여기서 반대먹으면서 계시는지.
역사에서 상상력이 중요하다고하지만 당신정도면 소설이예요.
풍림화산> 댓글이 안달려서 그냥 여기다가 적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 보다는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캡틴님이 하실 일은 강단 사학의 연구 성과를 가지고 와서 저를 논파하시는 일만 남았네요 만일에 못하신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강단 사학계가 무능해서인지 친일이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쓰레기라고 하는 증명이 되겠지요
한번 기대해 봅니다 ㅋㅋ
★ CaptainG (2013-05-23 14:18:30) (가입:2012-12-14 방문:262) 추천:0 / 반대:0 IP:119.67.***.58
아래글에서 보면 강단사학가 전방후원분을 마한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셨죠? 학계에서도 일부가 주장하여 비판받는 내용을 가지고 사학계전체를 식민사학이라고 하시네요
전방후원분이 나타날 당시 그지역은 백제의 간접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당시 왜정권은 철수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왜집단이 영산강유역에 자리잡게 하였다, 그리고 왜정권은 이 왜집단을 통하여 백제를 지배하려 했지만 6세기 전반 성왕에 의하여 전라도지역전체를 직접지배하게 되었고, 이에 왜세력이 소멸하여 전방후원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정도가 학계의 주장이겠네요
처음 시작이 CaptainG님이 육두 문자를 써가면서 돌진을 하신건데 육두 문자를 쓰기 전에 CaptainG 님이 해야 하는 행동은
제가 전남 나주 고분군을 백제 동성대왕의 무덤으로 본 근거들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이 먼저였을 겁니다
그것도 없이 우리 강단 사학계는 이렇게 받아들이니까 그런줄 알아 ! 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가 내민 근거는
1. 익산 지역의 고분은 고려사 여지 승람 등에서 末通大王의 능으로 불리웠다고 하는 기록이 있었다.
4.『高麗史』 金宗瑞, 鄭麟趾 等, 1451年
卷第 五十七 地理 二 益山郡條
「……又有後朝鮮武康王及妃陵 俗稱末通大王陵 一云百濟武王小名薯童」
卷一百二十四 列傳 卷三十七 鄭方吉 條
「後拜僉議政丞 時盜金馬郡韓祖 武康王陵 捕繫典法司」
5.『世宗實錄』 鄭麟趾 等, 1454年
卷第 151 地理志 全羅道 全州府 益山郡條
「後朝鮮武康王及妃陵雙陵 在郡西北五里許 俗呼武康王爲稱末通大王」
2. 이 지역에서 발굴된 금동관의 형태는 백제계열로 봐야 하며 단순한 지방 호족이 아닌
최고 통치자로 봐야 한다
3. 만일에 저것이 정말 왜인 무덤이었으면 일제 시대에 저 곳을 발굴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도굴을 방치했겠느냐..등
여러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일단 Captain G 님의 반응이 저것이구요
이 지역 고분은 백제 무왕이냐 혹은 소수설로 주장되는 동성왕 무덤이냐 하는 차이만 있지
백제계열 고분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론이 없어 보이는데
과연 강단 사학계는 무엇을 근거로 고려 시대부터 백제 무덤이라고 알려진 것을 왜인 무덤이라고
주장하는지.. 참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일에 근거없이 고려사나 동국 여지 승람 기록을 부정한거라면..
제가 강단 사학계가 멍청해서 본인이 친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친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진짜 친일파들이거나..
둘중에 하나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CaptainG의 반응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