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펠의 힘은 진짜였다. 하지만 난 루시펠과 계약하지 않았다.
내 소원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천명의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시간이 흘러 신년이 밝았다. 부모님은 내가 신학교를 다시 다녀 졸업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나도 이를 흔쾌이 받아들였다. 더는 글도 쓰기 싫었고 옛말에 배운게 도둑질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루시펠이 실존 한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악마있다면 천사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신도 분명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그저 관념적으로 알고 있었던 성경의 내용들도 조금식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루시펠 덕에 나의 신앙은 오히려 한단계 성장했고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신학교에 복학했다.
그리고 난 또 다른, 어떤 의미에서는 최악의 지옥을 경험했다.
복학한 나는 다시 한번 한국의 대학교육 시스템에 절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부분의 내용들은 실제 목회 활동에는 도움이되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신학 뿐만아니라다 한국 교육계의 고질 적인 문제였다.
실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아니라,
구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미 죽어버린 지식을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인 암기교육으로 익혀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신학이라는 학문에 회의를 느꼈고 성적은 날이갈 수록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시간강사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남교수님을 만났다.
남교수님은 자그마한 개척교회를 운영하시는 목사님으로 나와 여러모로 코드가 잘 맞았다.
IT쪽에도 관심이 많았고 타종교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관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마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역시도 기도원에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기에 악마학의 기본은 알고 있었지만, 남교수님은 아주 체계적으로 악마학을 연구하셨다.
남박사님은 악마의 실존을 이미 알고 있었고 나와 만나기 이전부터 꾸준히 구마의식을 진행해,
악령에 빙의된 어려운 사람들을 아무런 댓가도 받지 않고 도와주셨다.
이런 남교수님의 모습은 네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껏 본 목사들은 한결같이 신도들 돈이나 뜯어내는 탐욕스런 놈들 뿐이었다. 하지만 남교수님은 달랐다.
그의 설교는 힘이 있었고, 헌금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것 처럼 희생과 감사로 일관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남교수님에게 매료 되어 그의 교회에 나가 전도사로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전도사란 개신교 목사양성 시스템에서 가장 하위를 차지하는 사람을 일컬는다.
의과대학으로 비교하자면 레지던트 정도랄까? 물론 대우는 레지던트보다 훨씬 열악하다.
최저임금은 애초에 적용되지도 않았고, 월급역시 정해진 봐 없다.
하는일은 교회의 담임목사를 보조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린 학생을 가르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쳤는데 남교수님의 교회는 너무 작은 개척교회라 그 수가 이십명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적은 수의 아이들과 서로 교감하고 또한 가르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 가장 즐거웠던 시기가 아나 이때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행복의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 교회에서 1년여 시간을 보냈을 때였다.
남교수의 교회 바로 앞에 초대형 교회가 들어선 것이다.
남교수님의 교회는 한적한 교외에 위치했고 인근에 인가도 별로 없어서 주변에는 다른 교회가 없었다.
그런 이곳에 뜬금없이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더니 그곳에 교회가 생겨났다.
남교수님의 교회와의 거리는 겨우 30m 남짓.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웃었다.
무슨 음식점 차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조그마한 개척교회가 있는 곳 바로 맞은편에
초대형 교회를 세우다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화가난 나는 그 교회 목사를 찾아가 따지려고 했지만, 남교수님은 그런나를 말렸다.
"이거 건말 도 안됩니다. 교수님! 동네 편의점도 이런식으로 영업하진 않아요. 하물며 교회인데, 어떻게 이런일이!"
"참으세요. 마전도사.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 우린 그 뜻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아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추악한 자리뺐기죠. 당장 교단측에 항의 해야합니다."
나의 말을 들은 남교수님은 힘없이 웃었다. 남교수님 역시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전무했다.
일단 한국의 개신교는 천주교처럼 단일된 교단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개의 크고 작은 중소 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신학생은 졸업했고 갈곳이 없는 신학생들은 교회를 개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무차별적으로 생겨났고 한국의 밤하늘은 시뻘건 십자가로 가득해 진 것이다.
"이 세상이 불합리로 가득하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성도들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그 뜻대로 살아가는게 목회자가 아닐까요?"
남교수님의 말에 나는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남교수님의 교회 운영비는 남교수님이 시간강사로 나가서 번 돈이었기에 딱히 대형교회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초대형 교회는 대대적인 '전도' 활동을 펼쳤고,
3개월 만에 남교수의 교회에 나오는 성도의 90%가 바로 앞 초대형교회로 가버렸던 것이다.
한때 30명이 넘던 남교수님 교회의 교인수는 이제 고작 3명.
그것도 모두 할머니들 뿐이었다. 초중고등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초대형 교회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회에 오면 자전거등의 고가의 선물을 준다고 꼬드겼고,
아무 생각없는 학생들은 이에 낚여서 그 교회로 모두 가버렸던 것이다.
주일 아침 9시. 평소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할 남교수님의 교회 대성전안은 적만만이 감돌았다.
나는 넋을 잃고 대성전 안의 장의자에 앉아있다가 하늘을 향해 울부짓었다.
"신이시여!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어디 말 좀 해 보십시오!!!"
하지만 내가 섬기는 야훼는 대답치 않았다.
나의 울부짓음에 답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루시펠 뿐이었다.
"물론 야훼의 뜻은 아니지. 애초에 야훼의 뜻이 무엇인지 알길이 없으니 말야. 야훼는 언제나 그렇듯 방관자니까."
루시펠은 마치 끈적거리는 안개처럼 내 영혼을 조여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느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놈이, 루시펠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루시펠의 목소리, 루시펠이 남긴 잔영은 보았지만 실제 모습은 본적 없었다.
루시펠은 언제나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나타나 아침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루시펠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루시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난 저 놈,
아니 저 년이 루시펠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칡흑처럼 검은 긴머리칼을 휘날리는 붉은 눈동자의 소녀.
그리고 그녀의 등뒤로는 피빛 보다 더 붉은 열두장의 날개가 음울한 기운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고, 너무나 끔찍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감으려고 했지만 나의 눈은 나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잉,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부끄러운데."
루시펠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자신의 열두장의 날개를 펼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감추었다.
"원래 좀더 있다가 보여 주려고 했는데 말야. 일정이 조금 바꼈어. 어때 내 모습? 네 취향에 맞춰 봤는데..."
제자리에서 한바퀴 휙 돈 루시펠은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기묘한 목소리 였지만, 지금은 소녀의 외모에 걸맞는 가늘고 귀여운 목소리였다.
"아무 말 못하는 거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후훗 역시 인간은 재밌어."
루시펠은 방긋 웃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숨쉬는 것 조차 버거웠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눈 앞이 흐릿해졌다.
호흡을 할 수 없게 되자 뇌에 전달되는 산소량이 급감했던 것이다.
바로 그 때 흐릿한 의식사이로 남교수님의 이야기가 마치 흐릿한 꿈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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